지방 소도시에서 성적이 좋은 편 이래 봤자, 수도권이나 대한민국 혹은 세계 곳곳에 있는 영재 수재들의 발끝도 못 쫓아갈 수준의 지능에 노력하는 '척'을 해서 얻어낸 사소한 성과지만
어렸을 땐 내 보잘것없는 나의 성취에 꽤나 심취해 있었다.
그때 내가 지독히도 평범한 인간임을 깨달았으면 좋았으련만.
불행하게도 내게는 나에 대한 메타인지가 너무나 부족했고 내가 어떤 노력이든 하면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착각에 꽤나 오랫동안 빠져있었다. (아마 아직도 그 착각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스물아홉, 죽기로 결심하다"란 소설에서도 나오는 구절인데
중고등학교 시절 성적이 좋은 '편'인 아이들(최상위권 말고)은 대체적으로 머리가 좋다기보다는 꿈도 없고, 어른들에게 반항할 용기도 없이, 시키는 걸 잘하는 애들이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그랬다.
10대 때 사춘기를 앓지 않는 사람은 20대 30대 때 앓는다. 더 지독히.
그리고 그렇게 늦게 사춘기를 앓다가는 인생 망하는 지름길로 빠질 수 있으니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데,
난 또 안타깝게도 늦은 사춘기를 사춘기라 인식도 못하고
자아를 찾는답시며 별 GR을 다 했고
당연히 내게 철저히 무관심한 주변과 세상을 원망하기만 바빴다.
그리고 공무원 시험이 내 20대, 30대를 삼켜버렸다. 한 종류의 시험만 팠으면 뭐라도 됐을 수도 있는데 종목 바꿔가며 5년~6년씩 준비하고 또 무엇보다 몰두를 하지 않았으니(늘 일단 이것만 합격하면 내가 진짜 원하는 걸 해야지, 란 망상에 빠져서) 인강비 교재비 다 날리고 내 청춘도 날아갔다.
다행히 빚은 없었다. 부모님 집에서 얹혀살아서이기도 하지만 틈틈이 알바하면서 모아놓은 돈도 있고, 운이 좋아 과외교사 자리를 구하려 할 때마다 바로 구할 수 있었다.
그 당시는 노동대비 수익이 좋은 과외교사를 할 수 있는 감사한 일에 감사한 줄도 모르고 그저 내가 잘나서인 줄 착각하며 살았다.
감사할 줄 모르면 돈도 안 붙는다.
합쳐보면 한 달에 400 가까이 벌면서도 학생마다 40, 70씩 들어오는 날짜가 다르다 보니 목돈이란 생각도 못하고, 이 돈은 그저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한 준비자금' 쯤으로 깔아봤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본인이 두 번이나 언급한 '내가 진짜 원하는 일'은 무엇이었냐, 하면
나도 몰랐다.
아주 원초적인 그냥 돈 걱정 안 하고 먹고 자고 웃을 수 있는 일상이라던가
신데렐라에 나오는 요정 아줌마가 날 변신시켜주듯 외모도 화려하게 변하고, 사람들이 칭송해줄 만한 성과를 내서 스팟라이트를 받으며 화려하게 사는,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셀럽이 되는 일 수도 있고
흔하디 흔한 전 세계를 여행하는 것 등을 지껄일 수 있지만
확실한 실체는 없었다.
난 인생을 '살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살지 못하고
나 혼자 막연히 상상하는 '제대로 된 인생'을 살기 위한 준비라고만 격하하며
내 소중한 시간들을 낭비해버렸다.
그 수많은 시간들을.
어떤 사람들은 돈으로, 명예로, 오롯이 자기 자신을 위한 무언가로 "생산"하고 있을 때,
난 너무 무료하게 "소비"만 하고 있었다.
요즘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 유튜브 보고 따라 하려고 하고 하는데,
지금의 아무것도 아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좋은 엄마" 뿐이기에 이것마저도 실패하면 내 존재가치가 없을까 봐 노력하는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