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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치아 Apr 19. 2021

나의 자존감 도둑들에게

니가 ㅈㅂ이란 걸 이제야 알겠다

 "자존감"이란 단어는 "우울"과 함께 세트로 책과 인터넷과 유튜브에 어마어마하게 쏟아지기에 좀 지겨워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자아존중감"이란 말의 준말이자, 굳이 풀어쓰자면 "내가 가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마음" 정도일까.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자존감"을 되찾기(우리 모두 어렸을 땐 자존감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잃어버린 걸 다시 찾는 것이다. 원래 없었던 걸 발견하는 게 아니라!) 위해 발버둥 친다는 건 스스로 가치없이 느끼는 사람이 그토록 많다는 증거겠지.

그리하여 그들에게 '힐링'을 해줄 책과 강의가 쏟아지는 사업 또한 나날이 번창하는 거겠지.


나 또한 자존감을 되찾으려 노력한 결과 사실 '프로실패러'답게 자존감을 갖추는데 완벽한 성공을 하진 못한 상태지만 그나마 예전보다 나아졌기에 오늘은 한발 더 나아가는 노력의 일환으로 이 글을 쓰게 됐다.

 마흔 넘어 살면서 수많은 자존감 도둑들을 만났지만 지금까지 기억나는 top 3에게 편지를 날려주려 한다.


1. 고딩 때 친한 척하면서 수시로 날 업신여기던 X에게


난 아버지 외벌이 집안에 딸 넷의 장녀다.

아버지는 평범한 월급쟁이였기에 6 식구가 먹고 살기엔 늘 빠듯했다.

그래도 빨대 꽂는 친척들만 없으면 그 정도까지 가난에 허덕이진 않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엄마가 알뜰살뜰 적금 부어 목돈 만들면

일찍 혼자된 큰어머니가 장손을 앞세우고,

평생 제대로 된 직업 없이 사업을 무던히도 말아먹던 작은 아버지가 귀신같이 알고 자기들이 진 빚을 갚아야 한다며 가져갔다.


 엄마가 적금통장을 부여잡고 우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여하튼 이런 환경 속에서 난 뭐 옷, 신발 이딴 것에 불평할 수 없었다. 엄마가 사주시는 대로 입고 두어 벌 돌려 입고 그랬다. 중고등학교 땐 교복을 입으니 깔끔하게 씻고 다니기만 하면 가난을 어느 정도는 숨길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 넌, 꼭 그렇게나 내가 신고 있던 신발과 매고 다니던 가방이 "아식스"인 걸 반 애들 다 듣게  큰소리로  말하며 "얘 나름 브랜드만 입더라"라고 비꼬더라.

그 외에도 왜 그리 나한테 관심이 많았는지.

내가 숨기고 싶은 가난을 왜 그리 큰소리로 떠들고 내 앞에서 깔깔 웃었는지.


그래 너도 공부하느라 스트레스 많으니 날 놀리는 게 네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딱이었는지 모르겠으나

그 당시 인기 있던 "이스트백"(90년대 후반입니다) 매던 너에게 난 놀림받아 마땅한 거였니?

그건 아니잖아.

 너도 백수 아버지 때문에 엄마 혼자 식당  나가 힘들게 버신 돈으로 너네 날라리 오빠의 연애비용도 대고, 니가 지랄해서 유행하는 가방 사는 등 너한테도 부끄러운 철없는 짓이었었지.


가난은 부끄러운 거긴 하지만, 그 부끄러움을 나에게 강요하면 안 되는 거였어.


 그리고 10여 년이 흘러지나 너 초등학교 교사고, ㅅ ㅑ 대 나온 신랑 만나 27살 예쁜 나이에 결혼한다고 인생 완벽히 성공한 척했지만

그래 봤자 월급쟁이 살림이 고만고만하고.

니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던 니 신랑 너한테 말도 안 하고 회사 때려치우고 변리사 공부한다고 지금 몇 년째 집에 있다며.


 대체 넌 나를 비웃어서 뭘 얻었고, 늬 결혼을 자랑해서 뭘 얻었니.

난 놀림받고, 니가 무시하는 말들 속에서 좀 아팠단다.

너 나한테 청첩장 주며

 "너 좋다는 놈 있으면 나이라도 한 살 어릴 때 빨리 결혼해. 남자가 없어? 하긴, 그럼 어디 아무 데라도 취직을 해라. 요즘에 가게 한다고 하는 애한테 누가 장가 오겠니. 너 진짜 철이 안 든다. 현실을 좀 직시해야지."

라고 했던 말이 아직도 조각조각 깨진 병조각처럼 내 가슴 한 구석에서 버스럭거리다 살짝 베이기도 한단다.


니가 못 살길 바란 적은 한번도 없었단다.

하지만 니가 신랑 욕하고, 돈 없다고 징징대고 니 휑한 정수리에 흰머리가 수북히 보이니까 좀 마음이 놓이긴 하더라.

자고로 나이 먹을 수록 남는 건 돈과 머리숱일 뿐인디. 너나나나 돈없는 건 똑같고 난 아직 머리털은 보존하고 있지롱 ㅋㅋ

너도 그저 ㅈㅂ이었음을 이제야 깨달았달까.


그래서 24살부터 공무원이었고 27살에 결혼한 너나

20대 내내 알바 전전하고 공무원 시험 준비하다 찔찔대다 가게 하다 33살에 결혼한 나나

40 넘어서 보니 그냥 둘 다 소시민일 뿐이잖아.


여하튼 이제 볼 일 없지만 너 쌍꺼풀 수술 진짜 안검하수같이 됐더라.

늙으면서 더 흉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


 top 2,3에겐 내일 써야겠구먼.

하나 썼는데도 벌써 기운 빠지네...


... 어쩌면 자존감을 찾는 제일 좋은 방법은

나처럼 과거에 함몰되어 있지 말고

제발 좀 저런 기억들 싹 다 잊어버리고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여 땀 흘려 일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과거 곱씹어봤자 또 불쾌해지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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