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가 나에게 수치스러워하라고 말한다.
너무 어린 나이부터 나이의 숫자에 애통해하는 문화에 대하여
딸아이가 TV로 유튜브 영상을 보는데
예전 음악 프로그램이었다.
노홍철과 양 옆에 내가 모르는 아이돌로 추정되는 남자애, 여자애까지 총 셋이 MC였는데
집안일하며 왔다 갔다 하다 화면에 노홍철이 보이기에 잠깐 멈춰 서서
"와 저때가 언제야. 노홍철 젊었네."라고 생각하던 차에 노홍철이 "저도 내년이면 서른... 살이고요"(잘 안 들렸다.) 하니까
옆에 있던 MC들이 동시에 애통해하는 표정을 짓거나 한숨을 쉬고 노홍철을 위로하는 장면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생각해보면 저런 장면을 주변에서 아주 많이 보아왔다.
"나 내년이면 오십이야"라는 말씀 하시며 한껏 비극의 주인공인 된 표정인 팀장님 앞에서
주위에 있던 아래 직원들은 슬퍼해주는 척한다.
25살밖에 안된 젊다고 하기에도 어린~ 아주 구상유취의 나이의 젊은이들이
"나 반오십이야 ㅠ.ㅠ"라고 일부러 2배의 나이를 끌어다가 자기의 나이 듦을 한탄하면
그보다 더 어린, 주민등록증 나온 지 몇 년 안된 앳된 후배들이 따흙 거려준다.
서른 살은 "계란 한 판"이 되었다고 비통해하고
마흔은 "불혹"이니 이제 급사에 준비해야 하네~ 벌써 초상 치르기 일보직전이고
고딩들이 이제 곧 성인이 된다며 인생 다 산 것처럼 말하거나
중딩들이 초딩 때 놀아둘걸, 중딩되니 인생 ㅈ같다고 씨부리는 건 그냥 사춘기 때 흑역사 한참 만들 시기지, 하고 귀엽게 봐주자.
여하튼 나이 듦엔 다 함께 슬퍼해주는 게 규칙이 된 듯하다.
실제 생활에서도, 여러 방송에서도 흔히 보이는 모습들 아닌가.
그런데, 대체 다들 왜 이러는 걸까?
그들에게 묻고 싶다.
진짜 예전이 더 좋아서 그런 거야?
물론 나이 듦이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다.
체력이 떨어지는 게 느껴지고
피부의 탄력과 촉촉함도 사라지고
여자들은 특히 애 낳는 순간 기억력의 반감기에 들어간다.
하지만, 그렇다고 청춘이 마냥 좋기만 했느냐,
우울하고, 불안하고, 흔들리고, 춥고 배고프지 않았느냔 말이다.
그리고 노홍철을 안타까워해주던 그 어린 아이돌들에게 늬들도 그 나이 금방 된다고.
그리고 그 나이가 되면 지금보다 더 성숙해져 있을 거라고.
나이가 가르쳐주는 지혜도 있다고.
그러니 무슨 못 들을 걸 들은 듯이 30대의 숫자 앞에서 그렇게 진저리 칠 필요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꼰대인가.
난 어벤저스 시리즈를 본 적 없다.
가끔 티브이에서 나오는 거 신랑이 채널 돌려가며 보는 거 옆에서 슬쩍슬쩍 본 게 전부라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지만
아이언 맨이 스파이더 맨을 만나는 장면에서
스파이더맨이 스물몇 살이라고 하니까(이 또한 잘 안 들렸다 -_- 나이 들면 귀도 잘 안 들린다...)
아이언맨이 "man 이 아니라 boy네"라고 말하는 장면을 봤다.
나도 같은 의견이다.
20대 여. 나이를 세지 말고 그냥 살라.
법적으론 성인일지 몰라도 여전히 배울 것도 많고 어른들의 지도도 필요한 나이다.
한껏 기대고 이 우울과 불안이 끝이 있을 거라 희망을 가져라.
당신의 우울과 불안은 당신이 젊기 때문이다.
당신이 젊음으로 인해 선택의 폭이 너무 넓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게 많은데 뭘 해야 할지 모르고, 해야만 하는 일은 점점 늘어나기에.
하지만 나이 들면서 점점 삶이 심플해진다.
해야만 하는 일도 정해지고, 할 수 있는 건 줄어들면서 뭘 할지가 나름 정해지게 된다.
그러면 불안과 우울은 자연스레 줄어든다.
장담한다.
30,40대도 한탄할 필요 있을까.
당신의 20대가 얼마나 찬란했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또 삶의 노하우가 쌓여 덜 흔들리지 않는가 말이다.
50,60대 그 위 선배님들도 젊었을 때보다 지금 더 좋아지신 분 많지 않나요?
아니 젊었을 때가 낫나, 나이 들었을 때가 낫나를 떠나서
굳이 내 나이가 되었음에 부끄러워하고 주위 사람들의 위로를 받아야 하는가 말이다.
가뜩이나 비극이 넘쳐나는 세상에.
당신이 지금 어떤 나이든
당신을 나타내는 건 그 숫자가 전부가 아니다.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박범신 소설 "은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