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역사를 대하는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
'죽고 싶다'를 습관적으로 말하면 정신도 병든다
누구나 흑역사가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다들 흑역사를 떠올리면 그때의 나를 죽이고 싶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흑역사를 잘 잊기도 하던데
난 아주 오래전 일도 문득문득 떠올라 그렇게나 날 부끄러워할 수가 없다.
25년이 다 되어가는 고딩 때 흑역사도 아직 생생하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남녀공학이긴 했지만 남자반, 여자반이 나뉘어 있었다.
체육대회 때 남자반이 여자반을 응원해주는 문화가 있었는데
내가 핸드볼 할 때 실수해서 야유를 받던 일이며, 줄다리기하다가 꽈당 넘어져서 뒹굴러 흙먼지가 돼서 비웃음을 산 일이
지금 25년 가까이 흘렀는데도 문득 떠올라 혼자 발을 구르며 소리를 지른다.
대학생 때 스스로를 세상과 단절하고,
사회에 나와서도 스스로 우울을 쥐어짜며 흑역사를 생성해냈는데
그러면서 20대에 이어 30대 초반까지 나도 모르게 "죽어야지"가 입버릇이 되어 있었다.
처음엔 부끄러운 기억이 떠오르거나
전남친의 만행과 미련스럽게 굴던 내 모습이 떠올라 가볍게 시작하던 것이 습관이 되니
책 귀퉁이에 무의식적으로 글을 적는데 '죽고 싶다'라고 쓸 정도였다.
내 모든 것이 마음에 들지 않고,
정말 내가 죽어도 마땅한 사람이 되는 듯하여 한동안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늘 우울했고, 무기력했고, 내가 뭘 잘할 수 있으리란 생각을 못하기에 이르렀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단순이 늙어가는 것이 아니다.
이대로 생을 마감하는 선택을 하지 않는 이상 살 궁리를 하게 되고,
내가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지에 대한 인사이트도 생긴다.
난 어쩌면 정말 죽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과수원을 하는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가
이제는 판매금지가 된 ㄱㄹㅁㅅ 이란 제초제를 한 병 훔쳐올까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느샌가 살려고 노력했다.
나도 모르게 "죽고 싶다"라는 말을 하려고 "ㅈ"정도만 소리가 나와도 안 되지, 이런 말 하면 안되지 다짐하고,
그런 말을 의식적으로 안 하다 보니 몸도 움직이게 되었다.
그리고 내 흑역사들에도 관대해졌다.
하지만 어제
요즘 지역 화폐로 결제하는 곳이 많이 있는데,
이젠 편의점에서도 결제가 되기에 사탕 4개 사고 천 원 결제하는데도
알바생이 현금영수증 연계된 거 끊고 결제해달라고, 안 그러면 매출이 두 번 잡혀서 안된다는 걸 흘려듣고 그냥 결제했다.
알바생이 방금 얘기했는데도 맘대로 행동한 나를 떨떠름하게 쳐다보니 부끄러워져 결제 취소할까 물어봤더니
괜찮다 하는데도 그의 표정과 말투에서 경멸이 느껴졌다.
그 별거 아닌 일이 뭐 그리 큰 흑역사라고 걸어가는 내내 중얼대다가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하지 마"라고 말하는데
어떤 아주머니께서 아이와 함께 나오다 깜짝 놀랬다.
.... 사람이 이렇게 안 바뀐다.
아마 내가 정신병자로 보였겠지 ㅜㅜ
흑역사에 관대하긴 이번 생에선 다 틀렸다.
하지만 '죽고 싶다'란 말은 이제 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것만으로도 날 칭찬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