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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치아 Apr 30. 2021

우울은 수용성 비타민 같은 것

우울은 물로 씻겨지고, 햇빛 쐬면 변질된다.


우울이 수용성인 이유는

샤워를 하면 우울은 대부분 씻겨 내려가기 때문이다.


우울하고 무기력한 사람은 지금 몸에서 냄새가 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욕실로 씻으러 갈 힘도 의욕도 없으니까 계속 누워있었겠지. 머리가 기름으로 떡지고

겨드랑이에서 쉰내가 나고

몸 곳곳에서 호르몬과 땀 때문에 썪은내가 나고 있다면

 당신은 진통제를 먹기보다

샤워를 해야 한다.


진통제를 다섯 알씩 때려 부어도 당신 위가 헐고 간만 상할 뿐 우울과 무기력은 당신 몸에서 나는 냄새만큼  달라붙어 있다.

샴푸로 머릴 감고 비누로 몸을 닦고 물로 씻고 나면 당신의 고통이 반드시 줄어들 것이다. 반드시.


나의 친정어머니께서 자주 하시던 말씀이 있는데

"손에 똥이 묻어있으면 물로 비누로 박박 씻어야지

거기다 백날 향수 뿌려봤자 구린내 사라지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할 땐 근본적인 방법을 써서 해결해야 한다.

빨리 해결하려고 서두르면 돈만 버리고 문제는 그대로일 때가 많다."


당신에게 너무 귀찮다고 욕을 씨부리며 욕실로 향할 힘이 남아있길 바란다.

욕을 하면 힘이 좀 더 나니까 아는 욕 중 가장 심한 욕을 내뱉으며 조금만 힘을 내서 샤워기로 머리털부터 적시자.


또 우울이 비타민 같은 이유는

햇빛을 쐬면 쉽게 변질되기 때문이다.

햇빛 속으로 나아갈 용기조차 없는 당신이 샤워를 한 뒤 밖으로 나갈 힘까지 남아있길 기원한다.

그러면 자기 파괴적인 감정인 우울은 남 탓으로 변질되기도 하고.

분노라던가 슬픔 등으로 변질되어 눈물이 왈칵 나올 수도 있고.

햇빛 속에서 땀이 삐질 나기라도 하면 신체의 고단함에 생각이 없어지며 우울마저 순간 사라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다 내 얘기다.


어젯밤 천둥번개가 치고 바람이 나뭇가지가 부러질 만큼 세게 불어 새벽에 자다 깨다 했는데

 오늘 오전엔 또 날이 화창하게 개었다.


치과 가서 스케일링받고.

마트 들러 상추만 산다는 게 5만 원 넘게 이것저것 고. 햇빛 속에서 땀내며 걸어오고.

샤워까지 했더니 문득 왜 우울할 땐 이렇게 살지 못했나. 이랬다면 우울할 틈도 없었을 텐데 란 생각이 들다

아. 그땐 누워있을 때도 기운이 없었는데 이럴 힘이 없었구나. 란 생각이 떠올랐다.


한꺼번에 변하고 좋아질 순 없는 노릇이다.

조금씩 조금씩 햇볕을 쐬고 샤워를 자주 하다 보면 나아질 것이다.


오후가 되니 또 흐려졌다.

우울하고 누워만 있던 청춘의 시간이 떠오르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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