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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치아 May 14. 2021

모두의 사정이 이해는 되지만, 모두 틀렸다.

소멸된 공동체 의식.대역병의 시대로 인한 소통의 단절 때문일까요?

며칠 전 첫째 아이 엄마들 단톡방이 난리가 한번 풀썩 났다.


이유인즉슨 그 반 반장 아이와 남자 부회장 아이 둘이 말썽을 피워 선생님이 그 아이들을 혼내시느라 종례시간이 길어졌고,

수업 끝나자마자 학원차를 타러 한 여자아이가 뛰어가다가 넘어져 다쳤는데,

맞벌이인 부모님은 딸아이가 다쳤어도 당장 데려갈 수 없는 상황인지라

학원 선생님께 응급조치를 부탁했지만 집에 와서 보니 발목이 퉁퉁 부어있어 응급실을 갔었단다.

삔 발목에 부목까지 대는 조치를 취하고 보니 그 집 엄마가 화나서

담임선생님께 전화해 종례시간을 지켜달라고도 항의하고,

그 남자아이들 부모님께 우리 딸이 댁의 아들들 때문에 다치게 되었기도 하고,

딸아이 얘기 들어보니 그 남자애들이 자기 딸을 놀려서 울린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니

애들더러 좀 말썽 안 피우게 지도도 해달라 한 마디 하고 싶으셔서 그 남자아이들 부모님 연락처를 말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요즘 개인정보를 함부로 드릴 수 없다는 선생님 말씀에

단톡 방에다 구구절절 상황을 써놓은 장문의 카톡을 올리셨다.


딸아이 반 반장과 남자 부회장 둘은 이전에도 늘 수업 분위기를 흐리는 활달한(?) 아이들이었고,

그 아이들 혼내느라 종례시간이 길어진 적이 이전에도 여러번 있었다.

그로 인해 학원차량 시간이 빠듯한 아이들이 헐레벌떡 뛰어가도

학원차를 놓치는 경우도 있거나,

학원차량 운전자분께 빨리 나오라고 한소리를 들어 기분이 상해

부모님께 다 그 말썽꾸러기들 때문에 자기만 혼났다며 볼멘소리를 해서

켜켜이 원망이 쌓여있던 엄마들이 한둘이 아니었나 보다.


엄마들 몇몇 분이 조심스러운 말투지만 아주 명확히 원망하는 마음을 담아

"저희도 이런 사정이 있으니 00에게 얘기 좀 잘해주세요."

"저희 아이도 학원차 놓친 적 있어서 담임선생님께 송구함 무릅쓰고 종례시간 좀 줄여달라 말씀드렸네요. 얘기 들어보니 아이들 인성지도 때문이라고 하시던데. 학원 기사님께 좀 더 기다려달라 해도 학원 수업 시간이 정해져 있고, 다른 학교 아이들도 데려와야 하니 어쩔 수 없단 말만 하시고. 여러모로 답답하네요."

등등의 댓글이 달렸는데


남자 부회장 엄마는 바로 "죄송합니다. 주의시키겠습니다 ㅠ.ㅠ"로 답변하셔서

사건이 마무리될까~ 하는 순간,

반장 엄마가 "카톡창 다 캡처해서 모욕죄, 명예훼손죄로 고소하겠습니다. 우리 아이가 그쪽 따님을 다치게 한 것도 아닌데 왜 우리 아이 탓을 하시는 거죠?"라고 나오면서

사건은 진흙탕이 되었다.


다친 아이 엄마의 울분도 이해가 되고.

말썽꾸러기들 지도해야 하는 선생님의 고충도 이해되고,

학원 수업 시간도 정해져 있고, 다른 학교에서 타는 애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마냥 한 아이만 기다릴 수 없어 차를 돌린 학원차량 기사님도 이해되고,

자기 아들이 직접적으로 위력을 가해 여자아이 발목을 삐게 만든 것도 아닌데 모든 원흉으로 자기 아들을 몰아가는 데 기분이 나빠진 반장 아이 엄마의 마음도 다 이해되지만,

모두 다 해결 방법에 잘못 접근한 것이 아닐까.


다친 아이 엄마도 속상한 마음이야 어쩔 수 없지만,

아이에게는 학원 안 빠지려고 노력한 모습에 칭찬해주고,

담임선생님께도 학원차량 시간이 이러저러하니 종례시간을 줄여주십사 부탁을 이미 한두 번 드렸으면, 굳이 또 항의할 필요까지 있을까. 

선생님의 수업 지도를 존중해주어야하지 않을까.

반장과 남자 부회장 엄마들 연락처를 몰라도 카톡으로 쉽게 갠톡과 보이스톡마저 할 수 있는 세상에 

굳이 단톡방에 공개적으로 그 남자아이 둘을 망신시켜야 하냔 말이다.


선생님도 이런 일이 몇 번이나 반복된 일이라면

다른 아이들은 일찍 내보내고 지도가 필요한 둘만 남겨놓는 방법은 안되었을까.


학원차량도 가장 짧은 동선으로 이동해야 기름값과 시간 아낄 수 있어 운행시간을 정해놓는 것 알지만,

맞벌이 부부가 아이 맡길 데 없어서 학원 보내는 사정을 알면

매일 있는 일도 아니고, 좀 양해해서 하루 이틀은 좀 돌아가든, 아니면 다른 학교 애들 다 데려다 놓고 다시 돌아와서라도 애를 데려가야지, 그 아이를 그냥  버려두고 가면 어쩌란 말인가.


그리고 그 문제의 반장 엄마.

반장의 아버지가 변호사라던데, 남편과 상의해 제일 강경한 방법을 선택한다는 것이 최악의 악수를 둔 건 아닐까.

내 아이 귀한 만큼 남의 아이도 귀하니, 남자 부회장 엄마처럼 미안하다고 넘어가면 안 되는 문제였나.

공개적으로 망신당했다는 기분이 들면, 본인도 공개적으로 속상한 마음 솔직한 마음을 쓰고 이런 일은 갠톡을 하거나, 개인적으로 만나자거나 하는 보다 어른스러운 방법이 있지 않았겠냐는 말이다.


대역병의 시대가 오기 전

학기 초 담임선생님들과 어머니들이 다 같이 모여 저녁도 먹고, 술 한잔도 하고,

의욕적인 어머니 한 분이 나서시면, 매달 생일인 애들 생일파티도 모여서 하며 교류도 했었다.

지금과 같은 '격리가 대세'인 시대가 아닌 그런 '평범한 것이 당연한 시대'였다면 이런 사태까진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공동체 의식의 부재'는 이런 작은 사건만으로도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이게 다 그 왕관 모양을 닮아서 '코로나'라고 이름 붙여지고 19년에 생겼다 해서 뒤에 '19'까지 붙여진

그 "COVID-19" 때문이다.


그리고 어제 극적으로 모든 어머님들이 서로 사과하며 이 사건은 흐지부지 마무리되었다.

카톡에 쓰인 글자들의 배열들로는 서로 어투나 표정을 읽을 수 없기에 진정성이 떨어져 보이는 건 나만의 편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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