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찬은 17살 되던 해, 먼 친척 어르신이 광산에 가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에 황해도로 무작정 갔다.
처음엔 황해도에 있는 금광에서 일했는데, 일이 너무 고되어
조금 아랫 지방으로 내려와 석탄 광산으로 가서 착실히 돈을 모으며
그곳에서 아내도 만나 첫 딸을 낳고, 둘째로 아들까지 얻었다.
몇년 후, 광산 소유주였던 일본인 사장이 일본으로 돌아가며 조선인에게 인수했는데,
일본 놈보다 같은 동포인 조선인 사장이 얼마나 악독하던지
광찬은 그 당시 광산에서 십장으로 나름 일꾼들을 이끌던 위치였는데
임금을 줄이려는 사장과 대판 싸우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실로 금의환향이었다.
궤짝 한 가득을 돈과 금괴와 온갖 패물들로 채워 가져왔단다.
그때 그의 나이 겨우 서른이었다.
조선 후기부터 서산은 여기저기 간척사업을 해서 농토를 늘렸고,
일제 강점기 때 간척 사업은 더더욱 활성화되어 지주들의 땅은 점점 넓어지던 터였는데
광찬의 형은 사업수완은 없었던 모양이다.
그저 가지고 있던 땅을 지키기 급급해하며 어째 가세가 기울고 있었는데
광찬은 배포 좋게 배를 한 척 사서 어민들에게 빌려주는 형식의 사업도 하고,
간척 사업까지 뛰어들어
돈으로 가득 찬 궤짝을 두 개나 더 만들었단다.
6.25 전쟁 때 인민군에게 마을이 쑥대밭이 되고,
광찬의 집 또한 북한군이 식량창고인 '광'을 다 비우고
얼마 후엔 또 국군이 와서 베이스캠프로 삼으며 엉망이 되었지만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배 사업이 잘 되어 배를 3척으로 늘리고,
간척 사업으로 농토는 더 넓어졌다.
하지만 안면도까지 간척을 하여 염전을 만들도록 사업을 확장하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염전 사업에서 자금 흐름이 막혀
그때부터 가세가 기울더니
배도 한 척 태풍으로 뒤집혀 배에 실린 물품들이 사라지며 피해액이 커진 데다,
그 배에 타서 실종된 선원들의 가족에게 줄 보상금 문제까지 걸리며
그 많던 재산이 소금 녹듯이 사라졌단다.
그래서 서산의 땅은 거의 다 팔리거나 채권자와 은행으로 넘어갔고
남은 건 안면도 산지와 거친 농지, 그리고 염전으로 만들려다 실패한 '구역 밭'이라 불리는 소금기 있는 땅 뿐이었다.
김광현, 광찬 형제는 이렇듯 안면도로 쫓기듯 와서
집을 짓고 아이들 학교를 보내며 안면도에 자리를 잡으면서
'안면 김씨'로서 다시 시작했다.
광찬의 형은 아들 둘을 두었는데
농사를 지을만한 땅들은 이 장남의 자손 둘에게 나뉘었고,
도저히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만이
광찬이 황해도에서 낳아 온 딸 "향자" , 아들 "준환"에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뒤 낳은 아들 둘 "진환" "상환", 딸 하나 "미자",
1956년 51세의 나이에 늦둥이 막내아들, "대환"에게 조금씩 나누어졌다.
그 막내아들 "대환"이 내 시아버지시다.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금세 일상으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내가 알던 사람의 사망은 날 생각보다 크게 흔들어놓았다.
'김대환'이란 사람의 존재가 완전히 잊히는 것이 왠지 두려웠다.
내가 듣고 아는 바대로라도 정리하고자 글을 남긴다.
故 김광찬 (1906년생) - 황해도 광산에서 돈을 벌고 고향인 서산으로 내려와 간척 사업과 배 사업을 하시다가 안면도로 들어와 바지락 농사를 지으셨다. 1983년에 소천.
故 향자(30년생) 첫째 딸 - 안면도에서 고추 농사하며 2남 2녀를 기르셨고, 2013년에 돌아가셨다.
故 준환(33년생) 첫째 아들 - 안면도에서 아버지를 도와 바지락 농사를 열심히 지었으나, 막내아들을 사고로 잃고 술만 마시다 1982년에 돌아가셨다. 1남 3녀.
진환(38년생) 둘째 아들 - 16살 때부터 서울로 올라가 공장에서 일하며 가정을 꾸렸는데, 형님이 돌아가시자 안면도로 돌아와 바지락 농사를 지으시고 현재도 안면도에서 사신다. 슬하에 1남 4녀.
故 상환(43년생) 셋째 아들 - 배 사업을 해보겠다고 하다가 온 집안 식구들 돈 다 끌어다 쓰고 명의까지 빌려 다들 빚쟁이 만들어놓고는 1986년에 바다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었다 한다. 슬하에 1남 1녀.
미자(48년생) 둘째 딸 - 포항 부잣집으로 시집가 아들만 셋을 낳았다. 시장에서 이불과 의류업을 크게 해서 엄청 부유하게 사셨다가 IMF 때 사업이 기울어져, 우리 시아버지 근무하시던 천안으로 와서 식당을 하시며 다시 재기하시곤, 지금은 서울에서 미혼인 둘째 아들과 함께 사신다.
故 대환(56년생) 막내아들 - 우리 시아버지. 안면도에서 수재 났다고 해서 충남 공주 사대부고라는 명문고로 유학을 보냈는데, 이미 시아버지께서 고등학교 다닐 땐 가세가 기울 대로 기운 참이라 학비를 형들과 누나가 겨우 대주고 있는 터라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바로 체신국 공무원으로 근무하시다가 20년 근속 후 공인중개업을 운영하시다 2021년 영면하시다. 슬하에 2남 1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