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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에세이

문형배, <호의에 대하여>

by durante

다들 마찬가지겠지만 2025. 12. 3 밤의 "계엄 선포"와 4.4 헌법재판으로 나는 문형배 헌법재판관 권한대행을 알게 되었다. 이후 그의 블로그 "착한 사람들을 위한 법 이야기"에서 '자작나무의 숲'이란 필명의 글도 접하게 되어 몇 편의 그의 글을 미리 읽을 수 있는 영광을 가졌는데 나와 다른 환경과 삶을 살고 있는 그 "고귀한" 분의 생각이 내 생각과 일부 비슷한 점을 느끼면서 약간 이상의 희열을 갖게 되었다.

그의 글은 읽을수록 가슴이 뭉클해진다. 나와 생각이 같다며 관심이 늘어가기도 하고, 그 글 속에 묘사된 행동에 살포시 웃음 짓게 하면서 감히 아무도 못하는 작지만 큰 일을 실천하는 분이라 생각한다.

그의 책 <호의에 대하여>에 언급된 사연마다 그 따뜻함이 묻어 나온다.




오래간만에 쉬면서 편안한 일요일 아침을 시작한다.

평소 큰 기대를 가지고 구매했으나 다른 책과 업무에 밀려 못 보던 책인데, 어제 이동 중 관련 동영상을 계속 접하게 되어 읽을 순서가 된 책을 잠시 밀어 두고 읽기 시작한다.

여는 말 중...

"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미망에 빠지기 쉽고, 생각하고 배우지 않으면 독단에 빠지기 쉽다"


공자 論語爲政篇 원문은 이렇다.

"学而不思则罔 思而不学则殆"

직역하면;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얻음이 없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일상은 소중하다]

19, 착한 사람을 위한 법

이런 법이 따로 있을 리 없다. 저자는 착한 사람이 법을 아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한다고 말한다.

나는 법을 알고 있는가? 그럼 착한 사람인가?


22, 무죄 판결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에서 ;

"이성은 두 사람의 증인을 요구한다"


<법의 정신>을 읽지 않고 이 말의 의미를 알 정신이 있겠는가?


48, 화이트 칼라 범죄 양형 기준

화이트 칼라에 대한 창원지법의 양형 기준으로 공금 횡령에 대한 합의가 되었더라도 징역과 배상 명령을 내리게 되었다고 한다.

리비히 법칙(최소율의 법칙).

식물의 생산량은 식물에 최소량 존재하는 무기 성분에 의해 지배받는다는 법칙으로 충분 이상을 원할 것이 아니라 부족한 부분을 빨리 채워야 성장 발전한다고 볼 수도 있다.

동의가 가는 부분이다. 그런데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이 동일한 원칙의 지배를 받는다고 볼 수 있을까? 아니라면 어떤 경우에만 가능할지 더 알아볼 일이다.


56, 판사 한기택

"목숨 걸고 재판하는 판사"

저자가 일독을 추천한 <판사 한기택>의 주인공이 좋아했다는 시.


기다리는 사람에게 시간은 너무 더디고

두려워하는 사람에게 시간은 너무 빠르고

슬픈 사람에게 시간은 너무 길고

기쁜 사람에게 시간은 너무 짧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 시는 Henry Van Dyke(헨리 반 다이크, 1852–1933)의 명언으로 알려져 있어 원문을 찾아 다시 느껴본다.


Time is too slow for those who wait,

too swift for those who fear,

too long for those who grieve,

too short for those who rejoice,

but for those who love, time is eternity.


사랑하는 사람에게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다'다는 '영원'하다는 뜻이겠다.


127, 추도식에 다녀와서

"내가 목숨 걸고 악착같이 붙들고 있어야 할 것은 그 무엇이 아니라, 법정에 있고 기록에 있는 다른 무엇임"


69, 조정과 우산

본인 우산을 피고에 주고 조정에 성공한 문판사.

집에 돌아와 아내가 아끼는 우산을 줬다고 핀잔받는 문판사.

나는 오히려 그 아내를 위트가 넘치는 좋은 분으로 생각한다.

그게 예쁜 사연이 더 아름다워지니까...


84, 조삼모사


개혁 추진과정에서 그 과도기에는 늘 손해 보는 사람, 집단이 있기 마련이다. 이 경우 신영복 교수의 '양심적 신뢰 집단'이 그 주체로 상정해 볼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역사의 진보를 믿는 자가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회의 신영복의 옥중서간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읽어야겠다.

유시민은 <청춘의 독서> 14편인 E.H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진보하는지를 물었다.

"인간의 자유와 평등, 정의와 평화와 같은 가치들이 같이 성장해야만 진보라 할 수 있다."


87, 선순환의 공동체

어른 김장하는 7천 원 해물탕 값을 받고 헌법재판관 문형배를 통해 대통령 파면을 이끌다.

김장하 님은 생각할수록 이제 어른이 아니라 성인대열에 올라야 하지 않겠는가?


88, 작은 세상이 대안이다.

루소의 견해에 따르면 작은 국가가 더욱 바람직하다.

루소의 인용에 반갑다.


91, 이삭의 집에서 만난 소년

저자는 '호의'가 준 사람에게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사회에 환원해야 하는 것이라 정의한다. 그가 어른 김장하로부터 받은 호의는 이삭의 집에까지 뻗친다.

이삭의 집에서 성장한 소년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들의 아름다운 사연이 이어지기를 고대한다.


99, 자작나무

자작나무는 한자말이 아니라 태우면 '자작자작' 소리가 크게 나서 붙여진 말이라 한다. 꽃말은 '당신을 기다립니다'.

나무의 질이 좋고 썩지 않으며 벌레가 먹지 않아서 건축재 · 세공재 · 조각재 등에 좋다고 하며 흔히 사람들이 결혼식을 올리는 것을 ‘화촉을 밝힌다’라고 하는데, 이때 화촉이 바로 자작나무의 껍질로 만든 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문형배 님은 그 닉네임을 그냥 정했다지만 자작의 특성을 가졌거나 가지고 싶었을 것이다. 화촉 같은 사람이 되려는 것 아니었을까?

참고로, 주목(朱木) 나무는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간다 하여 천년장수, 신목이라 하기도 한다.

자작나무처럼 우리말이 아니라 붉은 열매가 열린다 하여 붙여졌다.


101, 하모니

사형수는 교도소가 아니라 구치소에 수용한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사형이 집행될 때까지 구치소에 있어야 한다는 것인가? 그렇다. 찾아보니 사형 집행 시설도 구치소에만 있다!


108, 책을 읽는 이유 세 가지

1) 무지를 극복하기 위해

2) 무경험을 극복하기 위해

3) 무소신을 극복하기 위해

나는 여기에 하나를 더한다. 무인을 극복하기 위해(이야기할 사람이 없을 때)

그런데 요즘은 AI가 대화도 하니 책의 가장 막강한 경쟁자가 생겼다.


124, 책을 고르는 기준

1) 저자

2) 주제어

추가적으로, 나는 여기에 그 시점에 나에게 울림을 주는 단어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책을 선택한다.


저자는 블로그에 독후감을 쓴 이유로 나와 100% 일치하는 의견을 말한다.

"책의 내용을 정리하고, 글쓰기 훈련이 되며, 다른 글을 쓸 때 인용하기 쉽기 때문"

142, 망진산을 오르며

"나의 행복이 남의 불행에 관계한다면, 나는 기다릴 것이다. 그가 행복할 때까지. 나의 행복이 남의 행복과 무관하다면 나는 기다릴 것이다. 우리가 연결될 때까지. 나의 행복이 남의 행복으로 이어진다면 나는 맘껏 누릴 것이다."


146, 우포늪 반딧불

내 성의 본은 창녕이다. 한국에 30여만 명 정도 있는 소수성씨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살면서 창녕이란 곳을 한 번도 가보지 못했는데, 저자의 글로 인해 창녕에 우포늪이라는 곳을 소개받았다. 왕버들과 석양이 아름다운 모양이다. 우포늪은 우리나라에서 인제군 대암산용늪에 이어 2번째로 람사르협약에 등록된 세계적으로 중요한 습지라 한다.

우포늪.jpeg


한국으로 복귀하면 우선적으로 가볼 장소가 생겼다.


168, 배롱나무

배롱나무는 목백일홍이라고도 한다. 백일홍(百日紅)은 100일 이나 붉은색 꽃이 핀다는 것이니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 아름다음을 오래 지속하기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가는 것이겠다.

책 덕분에 꽃 사진을 찾아보고 꽃말도 찾아보게 되었다.


백일홍.jpg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꽃말은 '떠나간 사랑을 그리워하다. 인연, 그리고 행복'이란다. 그래서 백일기도를 하던 처녀의 넋이 꽃으로 피어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나 보다.

매년 9월이면 강원도 평창에서는 백일홍축제가 열린다고 한다. 이미 올해는 다 지나갔으니 내년에는 꼭 평창을 가보리라 다짐한다.




224, 박태기나무

저자는 우정을 이야기하며 중국 사상가인 왕멍(王蒙)의 문장을 인용한다.

"우정은 반드시 잔을 부딪칠 필요가 없다. 우정은 의가 좋을 필요가 없다"


무슨 뜻일까?

인터넷에서 아무리 찾아봐도 출처와 의미를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ChatGPT로 확인해 보니 왕멍의 자서전 『불번뇌: 나의 인생철학(不烦恼:我的人生哲学)』에 언급된 내용으로 나오는데 한국에 번역서가 있는지는 잘 알기 어렵다.

"友谊不必碰杯,

友谊不必友谊,

友谊只不过是,

我们不会忘记。"


잔을 부딪친다고 우정이 있는 게 아니라, 진짜 우정은 그런 형식도 필요 없다는 것으로 나름 정리해 본다.


그의 자전적 소설 <변신인형>을 소개하는 교보문고 저자 소개 글을 본다.

"중국을 대표하는 현대 작가 왕멍(王蒙)은 1934년 베이징에서 태어났다. 1950년대에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장편소설『청춘만세』와 단편소설「조직부에 온 청년」등을 썼다. 1957년 반우파 투쟁에서 우파분자로 낙인찍힌 뒤 오랫동안 소설 쓰기를 중단했다가 문화대혁명(1966-76)의 급류가 다소 잠잠해진 1970년대 중반 신장에서 집필을 재개, 장편소설 『이곳 풍경』(미완)과 몇 편의 단편소설을 썼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베이징으로 돌아온 뒤 본격적인 집필 활동을 전개, 「볼셰비키의 경례」「나비」를 비롯한 수십 편의 중단편소설과 장편소설 『변신 인형』(1987), 『연애의 계절』(1993), 『실태의 계절』(1994), 『암살-3322』(1994) 등을 발표하는 한편, 1989년 천안문사건 직전까지 중국 작가협회 부주석,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 국무원 문화부 부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작품의 내용과 그 사상이 심오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그는 2000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일독을 권한다]

누군가는 훌륭한 원전을 집필하고, 누군가는 그 원전을 읽고 생각한 바를 훌륭하게 표현하더니 나는 그 원전에 누군가의 생각한 바를 읽고 다시 내 생각을 덧칠하고 있다.


265, 루소 <에밀>

루소가 본인의 자녀를 고아원에 보낸 것을 두고 이 책을 폄하하는 것에 대해 루소를 배려하는 표현을 한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지 않았겠는가?"

이 부분에 대해 루소의 상황을 더 살펴보고 내 생각을 정리해 본다.


* 사실 관계

1. 루소는 1740년대 후반부터 테레즈 르바쇠르(Thérèse Levasseur)와 동거하였고, 1746년부터 1752년 사이에 다섯 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는 이 아이들을 모두 파리의 국립 고아원(Enfants-Trouvés)에 맡겼으며, 당시 고아원의 영아 생존율은 10% 미만이었다.

2. 상기 사실은 그의 『고백록』(Confessions, 1782)에서 직접 언급되고 있다.

"아이들이 나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자랄 것이라 믿었다"

3. 루소는 <에밀>을 1762년에 발표한다.


* <에밀>의 교육 사상 요약

1. 성선설 :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선하며, 교육은 그 본성을 보존하는 것이어야 한다.

2. 부의 역할 강조 : 아버지가 자녀의 정신적 성장의 인도자가 되어야 하며, 가정은 아이의 ‘자연스러운 사회’로 기능해야 한다

3. 교육의 목적 : 사회적 유용성이 아니라 자율적 인격 형성을 목적으로 하며, 당시의 귀족적 교양교육이나 종교적 권위교육에 대한 급진적 반발이었다.


* 평가

1. 위선론적 해석 : 볼테르와 디드로 등 동시대 계몽사상가들은 루소를 “가장 감상적인 위선자”로 비판했다.

2. 이론·현실 괴리론 : 일부 현대 연구자들은 루소의 이론과 행위를 동일선상에서 평가할 수 없다고 본다. 루소의 『에밀』은 실재하는 자녀를 위한 지침서가 아니라, 가상의 인간 실험을 통해 인간 본성을 탐구하려는 철학적 텍스트이다. 즉 그는 자신의 현실을 반성적으로 초월하기 위한 이론적 모색을 했다고 볼 수 있다.

3. 실존적 고백론 : 루소는 <고백록>에서 자신의 비행을 숨기지 않고 “나는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라고 선언하며, 인간의 불완전함을 솔직히 기록했다. 이러한 태도는 도덕적 완벽주의보다는 실존적 진실성(authenticité)의 추구로 평가된다.


* 개인 의견

1. 아이들을 고아원에 맡긴 것이 <에밀>(1762)을 저술한 것보다 선행하고, <고백록>(1782)에서 솔직히 밝히고 있으므로 그가 본인의 교육사상과 다르게 행동한 것을 숨기거나 거짓을 표명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2. 그렇다고 해서 표리부동한 인물을 칭찬할 수야 없겠지만, 만일 그 사상이 본인 행동에 대한 반성이 담긴 것이라면 약간의 위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3. 특정 사상이 그 자체의 탁월성을 제쳐두고 그 사상의 주체의 행동만으로 그 사상이 잘못되었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자녀 교육에 대한 '최소간섭과 성선설'을 주장하는 저자는 루소의 견해에 대해 동의하는 것으로 보이고, 비판만 할 게 아니라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실천'할 것을 강조한다.


267, 손자병법

저자의 인용문에 나오는 말 ;

"너희들은 비둘기처럼 순수하고 뱀처럼 교활하여라"

"뱀처럼 교활하지 못하면 비둘기처럼 순수할 필요는 없다"

무슨 말일까? 여학생에게 한 말이라 하니 뱀처럼 교활하지 못하고 비둘기처럼 순수하기만 하면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의미로 들린다.


성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마 10:16)


이 말은 성경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당시 유대인 사이의 격언으로 사용되는 문구라 한다. 즉 유대인들에게 전승되는 미드랏이란 것을 보게 되면 하나님이 유대인들에게 말씀하기를 "너희는 내게 대해서는 비둘기 같이 순결하지만 이교도에 대해서는 뱀같이 지혜로워"라 했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 아군에게는 순결하게 대하고 적군에게는 지혜를 발휘하여 조심하라는 의미인가?

성경 해석을 더 찾아보자 않을 수 없다. Youtube에는 이에 대한 설명이 있는 영상이 여럿 나온다. 이 중 하나를 보자.([질의응답]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의 의미는?)

이분의 해석은 창세기 3장에 나오는 뱀이 하와를 설득하여 선악과를 먹도록 한 것을 배우라는 의미라 설교한다. 즉 세상으로 나가 전도를 명 받는 12제자들에게 뱀처럼 지혜를 활용하여 많은 사람들을 인도하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비유'를 통한 성경의 말씀은 많은 경우 탄복을 하게 하지만, 명확한 의미를 알고자 하는 경우에는 답답하기 그지없다.


답답한 김에 CBS 성서학당 송태근 목사의 강의를 더 들어보기로 한다.(성서학당 송태근 마태복음 33강 슬기로운 성도의 생활 1)

송목사는 비둘기의 순결은 그리스도만을 집중하는 삶의 태도를 말하고, 뱀의 지혜는 민첩하고 민감하게 반응해야 함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272, 마담 보바리

최근 완독한 알랭 드 보통의 <불안>에서 불안의 해법 중 하나로 인용된 보바리 부인([독서] 철학)을 저자의 시각으로 독후감을 만난다. 역시 판사로서 그의 맺음말은 직업적으로 명확하다.


"선정적이고 음란하다는 이유로 기소된 사건에서 무죄 판결이 선고된 것은 지극히 정당하다"


284, 여자의 일생

나는 세계 문학 소설을 접하면서 소설의 첫 문장을 주의 깊게 보는 습관이 생겨서 마음에 다가오는 첫 문장만 따로 적어두기도 하는데, 저자는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 마지막 문장이 기억에 남았는가 보다.

"인생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좋은 것도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닙니다."


286, 재판관의 고민

저자가 소개한 유병진 판사에 대한 KBS 다큐멘터리를 시청한다.(KBS 다큐멘터리극장 – 재판관의 고민, 유병진 판사 / KBS 19940130 방송)

유병진 판사는 1958년 진보당 조봉암에 대한 간첩죄 무죄(국가보안법 위반은 5년)로 판결한 것에 대해 반공 청년회의 서울지방 법원 난입사건이 일어난다. 마치 2025년 1월 19일, 윤석열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되었을 때 윤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을 습격, 점거한 것과 유사한 일이 발생한 것.


이 판결 관련하여 친구인 신도환 국회의원(무소속)과 대화하는 중, 지금 같은 판국에 사형 구형을 무죄로 판결할 수 있냐는 질문에 답한다.

"법관이 시대 분위기에 맞게 판결해야 하나?"


"정의는 법 위에 두어야 한다."


이 기회에 죽산 조봉암과 관련된 영상을 덤으로 시청한다.(KBS 역사스페셜 – 반세기 만의 무죄판결, 조봉암 죽음의 진실 / KBS 20110421 방송)


300, 문학 속의 재판

유명한 세계 문학 소설 중에 명 재판 장면이 포함된 것이 이렇게 많았나?

빅토르 위고, <레 미제라블>

도스토예프스키, <좌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톨스토이, <부활>

셰익스피어, <베니스의 상인>

톨스토이, <이방 일리치의 죽음>

스탕달, <적과 흙>


모두 세계문학 걸작선 상위에 올라있는 책들이다. <유토피아>를 쓴 토머스 모어가 영국의 대법관이었다는 것도 새로 알게 되었다.


322, 죄와 벌

저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세 번 읽고 독후감을 쓰고, 나는 3년째 이 필독 소설을 옆에 두고 읽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327, 레 미제라블

장 발장이 은식기 절도죄로 체포되었을 때 밀리에르 주교의 도움으로 풀려나는데, 저자는 이 밀리에르 주교의 생활은 정약용의 이 말에 대응한다고 한다.

"청송지본 재어성의(聽訟之本 在於誠意)
성의지본 재어신독(誠意之本 在於愼獨)"
- 정약용, <목민심서> -


"소송(재판)을 공정하게 처리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심 어린 마음가짐(誠意)이고

성의의 근본은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 스스로 삼가고 조심하는 태도(愼獨)에 있음"이란 뜻일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복도에도 정약용의 이 글이 걸려 있다고 한다.




[사회에 바란다]


347, 공판 중심주의와 그 적들

오늘(25/11/8)은 이용훈 전 대법관이 별세(25/8/25)한 지 두 달이 조금 넘어간다. 그의 진보적 성향은 잘 알려져 있지만 수사기관 조서보다 법정 진술과 증거를 우선하는 공판중심주의를 강조한 원칙주의자로 알려져 있다.

저자 역시 이용훈 전 대법관의 공판중심주의에 동의하며, 그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 보다 그 한계가 있다면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강조한다.

찾아보니, 2007년 형사소송법이 개정되어 공판중심주의를 확립하기 위한 여러 제도가 명문화되기도 했고, 최근 사법정책연구원은 '공판중심주의의 적정한 운영방안'이란 제목으로 공판중심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연구 결과를 제시하고 있다.(남승민 등, 2025)

저자의 2006년 목소리에 대한 회답일지는 모르나 최근의 연구 결과라 반갑게 참고할만하다.(나는 법조인이 아닌 관계로 지금 살피는 것보다는 향후 이슈가 나올 때 일독하기로 타협한다)


중요한 점은 저자의 공판중심주의에 대한 이런 노력이 씨앗이 되어 법 개정 및 그 한계를 연구하하면서 치밀해졌을 것이라는 내 자의적인 믿음이 사실이길 희망할 뿐이다.


'내가 다 할 필요는 없다. 나의 작은 움직임으로 인해 누군가 큰 일을 해 내는 단초라도 된다면 긍정적인 역사에 조금이라도 기여하면 될 뿐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351, 변화의 시대에 판사로 사는 방법

2006년 한국개발연구원에 의한 <사회적 자본 실대 종합 조사> 결과, 법원의 신뢰도는 10점 만점에 4.3점(모르는 사람에 대한 신뢰도는 4.0)에 불과하다며 저자는 매우 안타까워하고 있다.

그런데, 해당 조사 결과를 좀 더 찾아보니 그렇게 낙담할 것까지는 없어 보였다.

이 조사 결과는 한국 사회가 ‘낯선 타인’이나 제도적 기관에 대한 신뢰가 낮고, 반대로 연고·친분 관계에 기반한 신뢰는 상대적으로 높다는 결과를 냈는데, 제도적 기관의 결과를 보면 국회 2.95점, 정당 3.31점, 정부 3.35점, 법원 4.3점, 교육기관과 시민단체 5.4점이었으니 법원의 신뢰도는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공적 기관 중 교육기관을 제외하고는 그래도 가장 높은 점수니 안타까워하지 마시길...(그런데 보통 6~7점 아래 이면 과락 아니었던가...)


381, 부산가정법원 취임사

이 글에서 내가 배운 점과 나와 특별한 유사점은 3가지이다.

1) 가정법원 특별법원으로서 별도 존재 이유를 잘 몰랐던 나를 부끄럽게 한다.

"사건이 접수되어야 관여를 할 수 있는 일반법원과는 달리 사건이 접수되기 전에 사건 발생을 예방하고 후견적 기능을 본연의 사명으로 하는 특별한 법원"


가정법원은 이성과 감성이 조화를 이룬 법원이라는 것이다. “가정의 해체를 막고, 인간적 회복을 돕는 복합 사법행정기관”으로서 '사법의 인간화'가 만나는 곳, 가정법원.

2) 칸트의 인간학

‘너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인격에서 인간성을 항상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대하지 말라’


다만, 저자는 "어떠한 사람도 수단이나 목적이 될 수 없다"라고 인용을 하였는데 칸트는 '목적'으로 대하라는 의미였으므로 저자의 오기가 아닌가 한다.

3) 증가하기 전에 감소할 것을 살펴라

오래전 경영현장에서 유행한 블루오션전략(Blue Ocean Strategy)은 한국인인 김위찬 교수가 주 저자여서 뿐만 아니라 그가 제시한 4가지 액션 프레임워크가 내 평소 생각과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이다.

ERRC라고 불리는 그것은 제거(Eliminate), 축소(Reduce), 증대(Raise), 창출(Create)인데 Create를 위해서 우선 한 것은 제거와 축소였다.


칼 포퍼(Karl Raimund Popper, 1902~1994)의 말.

"추상적 선을 실현하지 말고 구체적 악을 제거하라"
- 칼 포퍼 , <열린사회와 그 적들> -


393, 헌법재판관 후보자 인사 말씀

김장하 선생의 깨우침. 자유 평등 박애

"자유에 기초하여 부를 쌓고, 평등을 추구하여 불합리한 차별을 없애며, 박애로 공동체를 튼튼히 연결시키는 것"


반구저기(反求諸己)

맹자 공손추 편에 나오는 말.

"仁者如射 正己而後發 發而不中 不怨勝己者 反求諸己"


직역하면,

어진 사람은 활 쏘는 것과 같다.

자신을 바르게 한 뒤에 쏜다.

쏘아도 적중하지 못하면 자신을 이긴 사람을 원망하지 않는다.

적중하지 못한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다.


말이 글에 대한 우의를 가진다는 저자의 표현을 확인하고자 '문형배 헌법재판관후보자 청문회(2019.4.19) 관련 짧은 동영상을 시청한다.("청문회를 하는 저희들이 오히려 죄송한 느낌입니다"ㅣ문형배 헌법재판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2019년 4월 9일])

당시 헌법 재판관 평균 재산이 20억 이상인데 본인 재산은 6.7억 수준이고 순수 본인 재산은 4억 수준이었는데 그 이유를 묻는 국회위원에게 답한다.

"평균인의 삶에서 벗어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한국 가구당 평균 재산이 약 3억 정도인데 본인이 평균 재산을 넘은 것을 반성하고 있다"


이런 분이었기에 우리는 그 유명한 2025.4.4 <대통령 윤석열 탄핵 사건> 파면 결정을 누리게 된 것이다.("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 '주문' 풀버전 [이슈클립] / 더팩트)




감히 내가 저자를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지만, 저자는 작가로서의 화려한 수사나 현학적 표현을 보이지 않고 삶의 실천자로서, 독자로서의 생각을 솔직하게 적은 것이 오히려 정겹게 다가온다.


또 하나의 정겨운 저자의 행동.

저자는 판사로서 단지 선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변화시킬 방법을 제시 또는 실행하고 마지막에는 그에 적합한 '책'을 선물한다.

생모와 헤어진 후 직무집행 방해 피고인에게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을, 자살 방화사건 피고인에게 <살아있는 동안 해야 할 49가지>를, 본드 흡입 피고에겐 <마시멜로 이야기> 등을 선물하듯이 말이다. 아마 저자는 그보다 더 많은 훌륭하고 적절한 책을 선물해 주었을 것이다. 내가 재판에 나가는 것을 상상하기는 싫지만, 만약 내가 '중소기업 임원으로서 성과를 내도록 직원을 잘 독려하지 못한 죄'로 판결을 받는다면 그는 나에게 무슨 책을 선물해 줄까?

나도 2002년 리더가 된 이후부터는 직원들과의 면담 또는 근무 과정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정보가 있겠다고 생각될 경우에는 내 생각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적합한 책을 선물하는 습관을 갖고 있는데, 이제 나도 받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문형배 님이 나와 좀 더 친근해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되어 매우 즐겁다.




[더 읽을 도서]


1.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2. 김훈, <칼의 노래>

3. 모파상, <여자의 일생>

4. 빅토르 위고, <레 미제라블>

5.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6. 류시화,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7. 최창일, <살아있는 동안 꼭 해야 할 101가지>

8. 토마스 모어, <유토피아>

9. 알베르 카뮈, <페스트>

10. 톨스토이, <부활>

11. 정약용, <목민심서>

12.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2025. 11. 2 ~ 11. 8 上海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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