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이즘은 1920년대 벌어진 아방가르드 예술 운동으로, 1차 세계대전 이후라는 시대적 배경과도 연관이 있다. 다다이스트들 대부분은 전쟁으로 스위스에 도피해 온 젊은 예술가들이었다. 이들의 정서에는 전쟁과 살육에 대한 증오와 냉소 및 문화적 가치, 형식, 전통에 대한 부정, 허무함이 기본적으로 깔려있었다.
다다(dada)의 기원에 대해선 여러 의견이 분분하지만, '아무런 의미 없음'이라는 뜻에는 대체로 일치한다. 서구에서는 아이들의 옹알이를 "다다다"라고 듣는데(강아지 울음소리를 "바우와우"로 듣는 것처럼), 다다이스트들은 마치 아이가 된 것처럼 기존의 질서와 작품을 마음껏 뒤집고 붙이고 흩뜨려놓으며 가지고 노는 예술 운동가들이었다. dada라는 단어를 무의미하게 카모플라쥬(위장, 패턴화, 군복)하거나 무의식, 허무주의를 작품에 담았다.
마르셸 뒤샹이라는 이름은 <샘>(1917)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이 작품이 그토록 위대한 까닭은 '현대미술'라는 새 시대의 대문을 연 작품이기 때문이다.
<샘>의 원본은 쓰레기로 취급되어 버려졌다. 우리가 알고있는 것은 다 복제품이다.
'예술은 반드시 예술가의 손을 거쳐야 하는가?' 레디메이드는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이미 만들어져(ready-made) 존재하는 기성품에 작가가 새로운 프리즘을 덧대어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 것 또한 예술이다,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대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개념을 만드는 것이다, 라고 주장한다. <샘>은 레디메이드 개념을 적용한 최초의 작품으로 평가된다.
신진 미국 독립미술가 협회에 선보여진 이 작품은, 실은 당시 심사위원장이었던 뒤샹이 몰래 출품한 것이었다. 자신의 신분을 속인 그는 유쾌한 다다이스트답게 "이게 무슨 예술이냐"며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을 옆에서 거들며 상황 자체를 즐겼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타깝게도 당시 전시회에 나왔던 작품은 '쓰레기'로 취급되어 버려졌다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작품은 이런 뒷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져 한바탕 파문을 일으킨 뒤 뒤샹이 다시 만든 복제품이다. 그는 살면서 총 17개의 남성소변기에 자신의 서명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는데, 레디메이드의 진정한 위력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서명에서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마르셸 뒤샹은 어찌보면 다다이즘의 역설을 가장 잘 설명하는 인물인 것 같다. 기존 질서와 예술 사조를 해체하려 기획된 다다이즘은 스스로가 하나의 예술 사조가 되어버렸다는 모순적 현실을 끝내 극복하지 못한 채 퇴장하고 만다. 한때 쓰레기로 취급되던 <샘>이 수십억원에 달하는 것처럼, 무의미가 더 이상 무의미하지 않아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