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실무 쪽에서는 위 사진과 같이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차이는 방향에 있다. 즉, 마케팅은 제품 생산자가 소비자에게 "나 이런 사람이고, 이런 일들을 했어" 하고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것이라면, 브랜딩은 소비자가 먼저 제품에 대해 "나는 네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 너는 이런 일을 했고, 이런 사람이지" 떠올리게 만드는 것이다.
<모나리자>는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예술품이자 세상에서 가장 비싼 작품으로 평가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1519)의 대표작인 이 작품은 현재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데, 매년 1000만명에 육박하는 관광객들이 이 작품을 보기 위해 루브르 앞에 줄을 선다. 이 때문에 프랑스 정부는 <모나리자>의 경제적 가치를 적게는 2조원에서 많게는 40조원쯤 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
<모나리자>의 예상 가격은 1조원으로 알려져 있다. 역대 경매가 1위(6000억원)인 <살바토르 문디>의 갑절쯤 되는 것이다. <모나리자>는 어떻게, 이 엄청난 지위를 누리게 되었을까? 작가가 역사상 가장 위대하기 때문에? 작품의 완성도가 남달라서? 물론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위대한 작가이지만 동시대, 그리고 그 이후 그에 못지 않은 작가와 작품들이 없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핵심은 작품을 둘러싼 내러티브, 즉 브랜딩에 있다. 사람들에게 <모나리자>에 대해 아는 대로 다 얘기해보라고 하면 예술에 아무리 문외한이라도 눈썹이 없는, 다소곳이 앉아 있는 미소 띤 여성의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조금 더 관심이 있다면 유부녀에게 붙이는 이탈리아어 경칭인 모나(Mona)를 들어 '모나리자(Mona Lisa)'가 리자(Lisa)라는 이름의 여성이라는 뜻임을, 나아가 일부에서는 "모나리자"가 아닌 "라 조콘다"(조콘다 부인)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루브르 외에도 다빈치가 그린 또 다른 <모나리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꺼낼 지도 모른다.
예술에 관심이 많다면 분명 1911년에 있었던 도난 사건을 떠올릴 것이다. 1911년 8월 어느날 항상 같은 곳에 있던 <모나리자>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누군가에게 도난된 것이다. 줄곧 루브르를 비판해 온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가 용의자로 지목되어 체포되었고, 그가 경찰에 친구인 파블로 피카소가 범인일지도 모르겠다고 말하는 바람에 피카소도 조사를 받는 처지가 됐다.
당시 신문들은 <모나리자>의 사진을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재생산했다.
언론들은 일제히 쌍심지를 켰다. 지지부진한 수사에 답답했던 기자들은 연일 신문 1면에 <모나리자> 사진을 대문짝만하게 내걸며 이 사건 경과를 전하고 프랑스 경찰의 무능함을 비판했다. 이 작품을 생판 모르던 사람들조차 귀에 딱지가 앉도록 관련한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2년 뒤 밝혀진 범인은 빈첸초 페루자. 루브르 직원이었던 그는 청소도구실에 숨어 있다가 박물관 문이 닫히자 <모나리자>를 외투 속에 숨겨 유유히 사라졌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이탈리아인이었던 그는범행 이유로 '애국심' 카드를 꺼냈다. 일종의 치트키를 쓴 셈. 예상대로 이탈리아 전역이 들끓었고, 빈첸조는 이 엄청난 범죄 행각에도 불구하고 6개월만에 풀려나게 된다.
해프닝에 가까운 이 사건들은 <모나리자>의 강력한 내러티브로 작동했다. 컴퓨터는커녕 라디오도 없던 시절 프랑스를 넘어 유럽 전체가주목한 작품이, 터무니없이 허술한 방법으로 도난 당했다가 허무하게 돌아온 작품이, 예술품을 둘러싼 프랑스-이탈리아 신경전을 촉발시킨 작품이 된 것이다. 몇 달 동안 신문 1면을 도배한 덕분에 당시 프랑스 사람이라면 누구나 <모나리자>에 대해 한마디쯤 얹을 수있었다. 도난 사건 전까지 루브르의 여느 위대한 작품과 다를 바 없이 취급되던 <모나리자>가 '특별히 위대한' 작품이 된 것은 바로 이때였다.
아마 이 사건이 없었다면 <모나리자>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현재 누리고 있는 영광을결코 얻지 못했을 것이다. <모나리자>의 위상 변화는 내러티브(스토리)의 위력과 브랜딩의 작동 원리를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