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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 May 10. 2023

<송유관>(2023)

fleeting notes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32/0003222514?sid=102


지면의 세계에서 기사의 분량은 기사의 가치와 완벽하게 정비례한다. 200자 원고지 4매를 채 넘지 않는, 기자들의 눈에 그저 그런 정도로 평가된 이 사건에 유독 눈길이 가는 까닭은 제목이 일러주듯 영화적 요소가 군데군데 갖춰져 있어서다.


석유재벌로의 길


지난해 1월 58세 A씨 등 8명의 남성들이 충북 청주시의 모텔을 통째로 빌린다. 땅굴을 파 국가 소유의 기름을 빼돌리기 위해서였다. A씨는 풍운의 꿈을 안고 자금책, 시설설치, 땅굴파기, 운반책 등을 모은 뒤 스스로 '총책'에 올랐다. 평범한 하남자였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터무니 없는 상상쯤 치부될 법한 일을 현실에서 구현해 낸 추진력으로 보아 A씨는 주변으로부터 종종 "상남자"로 불렸을 가능성이 높다.


A씨의 큰그림은 구치소에서부터 시작됐을 것이다. 기사에 나오듯 이 중 한 명은 동종전과로 복역한 바 있는, 전직 대한송유관공사 직원이었다. 추측건데 그가 이 팀의 지능캐, '설계자'였을 것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종이의 집>(2017)처럼 "교수"라 불렸을지도 모르겠다. 


초기비용은 A가 전부 댔을 것이다. '총책'이란 대개 그런 것이기도 하고 범행 전 내놓는 게 가장 많아야 총책에 오를 수 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통장에 돈이 넉넉했다면 이런 범행 자체를 상상하지 않았을 터. 모텔 임대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때까지 A씨의 심장은 마구 나댔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모텔을 몇 달 동안 통으로 빌린다는 건 한두 푼으로는 어림 없는 일이다. 높은 확률로 개인 명의 대출도 땡겼을 것이다. 요즘 같은 고금리 시대에 보기 드문 상남자식 투자법을 선보인 셈이. 입은 또 몇개인가. 기계값에 밥값, 술값, 담뱃값까지.. 부대비용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고 거기다 몫을 8로 나누고 경찰에 발각될 위험 비용까지 더하면 A씨와 일당이 세운 목표치는 일반인의 상상 그 이상이었음이 분명하다. 어쩌면 유수의 석유 재벌들처럼 프리미어리그 구단주가 되는 것이 교도소 시절부터 A씨가 남몰래 키워온 꿈이었을지 모른다.


아무튼 이 모텔이 A씨 인생 마지막 승부처였던 건 분명하다. 우려와 달리 작업은 순조로웠고 그들이 두 달 동안 파 내려간 땅굴의 깊이는 10m에 달했다. 건물 3층에 해당하는 높이로, 1~2m 정도만 더 가면 고지였다. 고지가 멀지 않았던 바로 그 순간 경찰이 들이닥쳤다. 정보가 새나간 것이다. 경찰이 범행을 알고도 지켜볼 까닭이 없으니 아마 경찰이 들이닥친 시점과 정보가 샌 시점은 넉넉히 잡아봐야 몇 시간 차이일 것이다. 영화든 현실이든 경찰은 꼭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재를 뿌리기 마련이다.


이들이 땅굴을 파내던 지점하루 평균 6만6000대의 차량이 오가는 4차로 국도 주변. 도로 붕괴로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었던 대형 테러범죄가 간발의 차로 막을 내린 것이다. 알고보니 이들의 범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 전에는 충북 옥천의 한 주유소를 빌려 동일한 방법으로 땅굴을 파내려갔지만 범행 중 물이 너무 많이 나오는 바람에 실패했다고 한다. 이들의 이런 집요함으로 보건데 충북은 필시 석유의 고장일 것이다. 석유 재벌의 길이란 멀고도 험하다.


updated : 2023-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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