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면의 세계에서 기사의 분량은 기사의 가치와 완벽하게 정비례한다. 200자 원고지 4매를 채 넘지 않는, 기자들의 눈에 그저 그런 정도로 평가된 이 사건에 유독 눈길이 가는 까닭은 제목이 일러주듯 영화적 요소가 군데군데 갖춰져 있어서다.
석유재벌로의 길
지난해 1월 58세 A씨 등 8명의 남성들이충북 청주시의 한 모텔을 통째로 빌린다. 땅굴을 파국가 소유의 기름을 빼돌리기 위해서였다. A씨는 풍운의 꿈을 안고 자금책, 시설설치, 땅굴파기, 운반책 등을 모은 뒤 스스로 '총책'에 올랐다. 평범한 하남자였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터무니 없는 상상쯤 치부될 법한 일을 현실에서 구현해 낸 추진력으로 보아 A씨는 주변으로부터 종종 "상남자"로 불렸을 가능성이 높다.
A씨의 큰그림은 구치소에서부터 시작됐을 것이다. 기사에 나오듯 이 중 한 명은 동종전과로 복역한 바 있는, 전직 대한송유관공사 직원이었다. 추측건데 그가 이 팀의 지능캐, '설계자'였을 것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종이의 집>(2017)처럼 "교수"라 불렸을지도 모르겠다.
초기비용은 A가 전부 댔을 것이다. '총책'이란 대개 그런 것이기도 하고 범행 전 내놓는 게 가장 많아야 총책에 오를 수 있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통장에 돈이 넉넉했다면 이런 범행 자체를 상상하지 않았을 터.모텔 임대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때까지 A씨의 심장은 마구 나댔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모텔을 몇 달 동안 통으로 빌린다는 건한두 푼으로는 어림 없는 일이다. 높은 확률로 개인 명의 대출도 땡겼을 것이다. 요즘 같은 고금리 시대에 보기 드문 상남자식 투자법을 선보인 셈이다.입은 또 몇개인가.기계값에 밥값, 술값, 담뱃값까지.. 부대비용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고 거기다 몫을 8로 나누고 경찰에 발각될 위험 비용까지 더하면 A씨와 일당이 세운 목표치는 일반인의 상상 그 이상이었음이 분명하다. 어쩌면 유수의 석유 재벌들처럼 프리미어리그 구단주가 되는 것이 교도소 시절부터 A씨가 남몰래 키워온 꿈이었을지 모른다.
아무튼 이 모텔이 A씨 인생 마지막 승부처였던 건 분명하다. 우려와 달리 작업은 순조로웠고 그들이 두 달 동안 파 내려간 땅굴의 깊이는 10m에 달했다. 건물 3층에 해당하는 높이로, 1~2m 정도만 더 가면 고지였다. 고지가 멀지 않았던 바로 그 순간 경찰이 들이닥쳤다. 정보가 새나간 것이다. 경찰이 범행을 알고도 지켜볼 까닭이 없으니 아마 경찰이 들이닥친 시점과 정보가 샌 시점은 넉넉히 잡아봐야 몇 시간 차이일 것이다. 영화든 현실이든 경찰은 꼭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재를 뿌리기 마련이다.
이들이 땅굴을 파내던 지점은 하루 평균 6만6000대의 차량이 오가는 4차로 국도 주변. 도로 붕괴로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있었던 대형 테러범죄가 간발의 차로 막을 내린 것이다. 알고보니 이들의 범행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 전에는 충북 옥천의 한 주유소를 빌려 동일한 방법으로 땅굴을 파내려갔지만 범행 중 물이 너무 많이 나오는 바람에 실패했다고 한다. 이들의 이런 집요함으로 보건데 충북은 필시 석유의 고장일 것이다. 석유 재벌의 길이란 멀고도 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