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다닌 스타트업에서 나란히 퇴사한 개발자 A가 "개발자를 그만두고 다른 진로로 갈까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커피를 마시려다 잠시 멈칫했다. 의외로 느껴졌다. A는 아직 대학생이지만 몹시 유능한 백엔드 개발자였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스타트업을 공동창업해 수억원의 시드 투자를 받은 경험도 있었다. 제갈량에 구애하는 유비에 빙의해 어렵사리 팀에 모신 인물이기도 했다.
허황된 얘기 같진 않았다. 아니,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어린 나이에 명석한 두뇌도 갖췄으니 충분히 해봄직한 상상이었다. 그럼에도 그의 개발 커리어와 실력이 아깝게 느껴졌다. 개발리드로 성공한 프로덕트를 직접 지휘하는 경험은 흔치 않다. 그가 평범한 천재가 돼버리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법조 출입 경험으로 미루어 그가 법조계에서 개발 세계에서만큼의 존재감을 드러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았다. 법조계 쪽도 개발자들 세계 못지 않게 정글 같으니.
그에게 이렇게 말해줬다. "로스쿨도 물론 좋은 선택지겠지만 '왜 굳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개발이란 이제 '지배의 언어'가 된 것처럼 느껴져요. 조선시대 한자, 일제시대 일본어 같은 것이죠. 해방 이후라면 영어? 일제시대 일본어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은 어땠을까요? 70~80년대 영어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은 어땠을까요?
그들 사이 격차는 하늘과 땅보다 더 컸어요. 시대에 따라 모습은 조금 달라졌지만 이것들은 다 지배의 언어였어요. 부와 명예를 무조건적으로 보장하진 않지만 남들이 가질 수 없는 기회를 얻게 해줬죠. 반면 법이라는 언어는 늘 있어온 것입니다. 아마 그 가치는 점점 더 떨어질 거예요. 그래서 저한테는 A씨가 하신 말씀이 스스로 기회를 차버리겠다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 이후 별다른 소식을 전해듣지 못했으나 A는 법조계에 대한 미련을 버린 듯 했다. AI 관련 기사를 보는데 문득 그와 나눈 이야기를 딥러닝에 적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를 보장하진 않지만 기회는 잡을 수 있는. 딥러닝 관련 뉴스들이 매일 같이 쏟아지지만 역전파 알고리즘이 뭔지, Chat GPT가 돌아가는 원리가 뭔지 대강이라도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다. 직업 로스터를 목표로 직접 볶은 커피를 내리며 지금이라도 다시 책을 펴봐야 하나, 하는 생각을 4.2초쯤 해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