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현 중앙홀딩스(중앙일보, jtbc 등등) 회장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45분쯤 이야기를 나눈 사실이 중앙일보를 통해 대서특필 됐다. 총력전이었다. 유력 언론사의 최고 수장이 몸소 출격했으니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화려하기 그지 없는 에이스들(특별취재팀)이 총출동하고 '언론 최초', '단독' 등 간판을 내세우며, 지면을 무한 할애한 기사-칼럼-사설로 가공할 만한 화력을 집중했다. 온몸을 쥐어짜는 듯한 그들의 노력이란, 땀방울이 지면을 비집고흘러나오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대통령마저 어렵사리 만나는 인물이니 중앙 입장에서는 충분히 의미부여할 만한 사건이었다.
안타까우면서 흥미로운 사실은 이 두 사람의 만남을 아는 국민이 정말 몇 없을 것이란 점이다. 방송이든 신문이든 유력 언론사 그 어느 곳도 이 사실을 기사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받아쓰지 않은 것이다.(중소매체 두 곳 정도가 짧게 받았다) 조만간 G7 정상회담을 개최하는 일본 수장이 국내 언론인과 만났다는 점에서 한 줄정도 받아줄 법도 한데, 동료 기자들의 애끓는 노력이 무색하게'해프닝'쯤으로 정리되는 모양새다.
물론 '둘이 만났다'라는 사실을 제외하면 기사로 쓸 야마가 마땅히 없었던 게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대담자가 직업 기자가 아니길 망정이지 기자가 이런 절호의 기회에 그런 쭉정이 질문들만 늘어놓았다면 분명 불호령이 떨어졌을 것이다. 그도 그렇지만 아마 '불문율'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언론사들은 기본적으로 자기 지면에 다른 회사를 언급하는 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며 더구나 다른 회사 총수의 이름을 언급하는 일은 그것이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금기시된다. '이 악물고 외면'하는 모습이 흥미로우면서 애처롭다.
모른 척
한편 해프닝으로 정리된, 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이 대담이 어떻게 성사될 수 있었는지도 호기심을 자아내는 지점이다. 일국의 정상이란 무릇 그러할 것이고 기본적으로 정치란 서로의 이해와 필요가 정확히 맞아떨어져야 성립되는 것이다. 이 대담을 매개로 두 사람은 과연 무엇을 교환했을까. 무엇이 필요했을까. 중앙 쪽은 언론계 내 존재감 과시와 위력 행사라는 목적이 분명히 보이는데, 일본 쪽 목적이 분명치 않다. 두 사람 만남이 보도된 날 공교롭게도 양국에서 삼성전자가 일본에 반도체 거점을 짓는다는 보도가 쏟아진 점, 삼성과 중앙은 뗄려야 뗄 수 없는 혈연관계라는 점 등으로 넘겨짚어 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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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못지 않은 유력 언론사에 다니는 기자 4명과 만나 얘기해보니 중앙과 명시적인 라이벌1명(조선)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두는 이런 기사가 나온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조차 별 의미를 두지 않았다. 언론계에서는 그런 정도의 해프닝인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