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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 May 20. 2023

예술성이란, 막춤을 추는 것이다.

fleeting notes

이게 좋은 작품..이라고요?


2017년 부커상을 수상한 미국 작가 조지 손더스(1958-)는 저서 <작가는 어떻게 읽는가>(2023)에서 19세기 러시아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1818-1883)가 쓴 <가수들>(1852)이란 단편을 소개하고 비평한다. 손더스는 '작가들의 작가'라 불리는 미국의 대표 작가다.


조지 손더스. 첫 장편 '링컨 인 더 바르도'로 부커상을 수상했다.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가수들>은, 적어도 처음 읽었을 때는 따분하고, 장황하며, 산만하다는 느낌을 준다. 나도 그랬고, 책에 나오듯 손더스의 수많은 제자들(그는 대학에서 수십년 동안 러시아 문학을 강의하고 있다)도 매번 비슷한 평가를 내린다. '교수님..? 이게 좋은 작품..이라고..요?'


네..?


하지만 손더스는 채근하거나 닦달하지 않는다. 이 투박하고 오묘한 단편이 왜 훌륭한 작품인지, 왜 자기가 매번 감동하게 되는지를 수십 페이지에 걸쳐 차근차근 설명한다. 그러면, 이해가 된다. 놀랍게도. 압권은 '춤'에 대한 비유다.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 춤을 추는 동안 에너지 출력을 측정하는 계측기를 손목에 차고 있고 목표는 '1000단위의 에너지 발산하는 것'이라고 해보자. 달성하지 못하면 누군가 당신을 (가령) 죽인다. 당신에게는 춤을 추고 싶은 방식에 대한 어떤 생각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추면 에너지가 50 정도에 머문다. 마침내 간신히 에너지를 1000 이상으로 올리고 거울을 흘끗 보니(당신이 죽어라 춤을 추는 곳이면 어디든 거울이 있다) 세상에, 이게 춤인가? 춤을 추고 있는 게 나인가? 하지만 당신의 에너지는 1200이며 계속 올라가고 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까?


계속 그렇게 춤을 출 것이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당신을 보고 비웃을 때는 이런 기분일 거다. '그래, 좋다, 마음대로 웃어라. 내 춤이 완벽하지 않지만 적어도 내가 죽지는 않는다.'


작가는 어떤 방식이든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써야 한다. 투르게네프는 자신의 에너지를 1000 이상으로 올리기 위해 등장인물의 서류 일체를 만들어야 했다. 자신이 묘사와 사건을 통합하는데 능숙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앞으로 몸을 내던져 자기 방식대로 하거나 아니면 죽어야 했다. 자신을 정직하게 보면서 결론을 내려야 했다. '그래, 나보코프 씨*가 평소와 마찬가지로 옳아, 아직 그 사람은 태어나지도 않기는 했지만. 나의 문학적 천재성은 정말이지 나의 묘사적 예술의 독창성에 맞먹을 만큼 이야기를 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발견하는 쪽으로는 부족해. 하지만 내가 어떻게 해야할까?'


이야기에 아름다움을 조금이라도 집어넣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해낸다 해도 우리가 늘 만들려고 꿈꾸어 왔던 유형의 아름다움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얻을 수 있는 아름다움이면 어떤 방법으로든 얻어야 한다.


나는 학생들에게 결국 어떤 부류의 작가가 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우리에게는 거의 선택권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가수들>을 가르친다. 젊은 작가일 때 우리는 모두 어떤 부류의 작가가 되겠다는, 어떤 계보에 들어가겠다는 로맨틱한 꿈을 꾼다. 예를 들어 공을 들이는 리얼리스트, 나보코프 같은 스타일리스트, 메릴린 로빈슨 같은 심오하게 영적인 작가, 그 무엇이든. 하지만 가끔 세상은 우리가 꿈꾸는 방식으로 쓴 산문에 미지근하게 반응함으로써 우리가 사실은 그런 부류의 작가가 아니라고 말해준다. 따라서 다른 접근법, 필요한 1000 단위 이상으로 우리를 올려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는 어떤 작가든 필요한 에너지를 낼 수 있는 작가가 되어야 한다.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1899-1977). 러시아계 미국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1818-1883)에 대해 "투르게네프의 문학적 천재성은 문학적 상상력, 그러니까 그의 묘사적 예술의 독창성에 맞먹는 이야기 방법을 자연스럽게 발견하는 상상력이라는 면에서는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예술성이란, 막춤을 추는 것.


두 가지 시사점이 나온다.


첫째, 손더스 같은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위대한 작가마저도 '예술성'을 자기 마음대로 컨트롤 할 수 없다. 예술성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둘째, 작품의 예술성이란 어떤 방식으로든 필요한 에너지 1000을 넘기는 것이다. 넘기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그렇기에 손더스가 이 투박하고 산만한 단편, <가수들>에 매번 감동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손더스가 보기에 이반 투르게네프는 남들 시선에 아랑곳 않고 막춤을 추며 끝끝내 에너지 1000을 넘기고 마는 작가인 것이다. 예술의 에너지란 그런 것이다.



updated: 2023-05-20


관련문서(브런치 링크)

- 제텔카스텐 인덱스

- 예술 인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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