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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 Jun 01. 2023

어쩐지 익숙한, 기이한 평온

fleeting notes

사이렌과 패닉


어제 아침, 느닷없는 경계 경보로 혼란이 있었던 모양이다. 전날 진탕 마신 술 덕분에(?) 아무런 기척도 느끼지 못했지만, 일어나보니 여기저기 난리도 아니었다. "자고 있었다고? 와, 진짜 전쟁나는 줄 알았다니까?!" 말하는 사람마다 약간의 호들갑이 가미돼 있었다.



기사를 찾아보니 '출근길', '시민', '패닉'이 키워드였다. 서울시와 행안부는 여지껏 해프닝의 발단을 놓고 서로 공방 중인 듯 하다.


흔히 이런 사이렌은 인간의 심리, 구체적으로 '패닉'과 연관되어 설명되는 경우가 많다. 전쟁 중 공습 경보가 대표적이다. 20세기 초 프랑스의 대표적인 학자 귀스타브 르봉(1841-1931)은 저서 <군중심리>(1895)에서 이런 위기 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사람들은 이성을 잃게 되며 자의식과 독자성을 거의 유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히틀러, 무솔리니, 스탈린, 처칠, 루스벨트 같은 당대의 권력자들이 이 책을 열심히 읽었다고 한다. 르봉은 이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문명은 한순간에 여러 단계 아래로 퇴화한다." 공황과 폭력이 분출하고 인간은 진정한 본성을 드러낸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건 너의 상상일 뿐이야. 실제로는 전혀 안 그래"란 주장도 있다. 인류가 쌓아올린 이성과 도덕의 벽이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 요즘 읽고 있는 책, <휴먼카인드>(2023)에 따르면 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일 때 영국 국민들은 4만명 이상 목숨을 잃은 무차별 폭격 속에서도 어떠한 패닉이나 히스테리 없이 질서와 평화를 유지했다고 한다.


캐나다의 한 정신분석학자는 당시 영국 거리를 이렇게 묘사했다. "도로에서는 어린 소년들이 여전히 놀고 있었고, 쇼핑객들은 값을 흥정하느라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경찰 한 명이 당당하고도 지루한 모습으로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으며,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은 죽음과 교통법규에 맞서고 있었다. 아무도, 내 눈에 보이는 어느 누구도 하늘 한 번 쳐다보지 않았다."


이런 평온함은 독일 역시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전쟁 뒤 많은 사람들이 '대공습 시대'를 그리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때는 서로 도우며 아무도 정치적 입장이나 빈부 여부에 상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이번 해프닝이 빠른 시간 안에 일단락된 데에는 사실 오래된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하긴, 북한이 ICBM을 쏴도 평화로운 나라이니. 인간 사회에는 사이렌 정도로는 훼손되지 않는 기이한 평온이 숨겨져 있다.


updated : 2023-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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