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리스 Apr 08. 2024

자영업은 차갑다 + 파나마 에스메랄다 게이샤 리뷰2

커피플랜트 4차 커피 체험단

혹독한 신고식(?)을 하다


4월 8일, 그러니까 유락yoorak의 가오픈 날짜를 오늘로 잡은 것은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기왕이면 딱 떨어지는 1일부터 시작하려 했으나, 무려 화장실이 설치되지 않는(!) 등의 문제로 인해 부득이 미뤄진 것이었다.(그외 로스터기 테스트, 배치브루어 테스트 등 사소한(?) 이슈들도 여럿 있었다.)


가오픈 일자를 알리는 브라운관TV


현실은 차가웠다. 아니, 서늘했다. 목덜미에 소름이 바짝 돋았다. 숫자로 드러난 결과는 참혹했다. 바로 어제 자기 전까지 상상했던 오늘의 풍경과는 거리가 멀었다. 손님 러쉬는 고사하고 하루 종일 엄지만한 대왕 파리만 기분 나쁘게 유유히 날렸을 따름이었다.


정신이 바짝 들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곳은 대구 중심지라곤 하지만, 위치만 그럴싸할 뿐 그 흔한 저가커피는커녕 편의점 하나, 담배가게 하나 없는 동네. 아무런 홍보 없이 손님이 오길 바라는 것은 사실상 요행을 바라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럼에도 약간은 서운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아마도 지난 수개월의 공사 과정에서 만난 동네 주민들이 늘 "오픈 언제해요? 오픈하면 커피 마시러 갈게요." 하는 식의 말을 인사처럼 건넸기 때문일 테다. 지난 몇 주 동안 물심양면 곁에서 일을 거들었던 지오가 오늘 나오지 않은 것도 공허함을 키운 요인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아무리 "가오픈"이라도 가만 앉아있을 순 없겠다 싶어서 곧바로 전단지 제작에 들어갔다. 명함처럼 만들어서 횡단보도 건너편 동네 주민들에게 돌려볼 생각이다. 그쪽 동네는 신축 아파트의 영향인지, 대구 중구청의 영향인지 삭막한 느낌의 이쪽 동네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아마 이런 공간이 만들어져 있는지도 모르고 있을 터. 출혈이 크더라도 무료 쿠폰을 살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으려 한다.


공짜 앞에 장사 있을까?!
검증하고 싶은 여러 가설 중 하나. 기여, 공헌이 유저로 하여금 브랜드에 대한 애착을 갖게 한다!


천만다행으로 하루 종일 아예 손님이 없진 않았는데(오후에서야 손님이 몇 테이블 들어왔는데, 아마 손님이 1명도 오지 않았다면 아무리 내가 멘탈이 강하다 해도 쿠크다스처럼 바스라졌을 것 같다), 첫 손님을 받을 땐 생전 처음 겪어보는 묘한 감정이 올라왔다. 그렇게 많은 아르바이트 경험에도 불구하고 처음 느끼는 감정이었다. 긴장감인 것 같기도, 감동인 것 같기도 한, 이상한 떨림이 있었다.


초보 사장이 으레 그렇겠지만.. 와주신 손님들한테 고마운 마음이 너무 커 케이크와 커피 등등... 온갖 서비스를 다 준 것 같다.


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일. 정말정말 뒤가 없는, 막다른 골목에 들어섰기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아쉬움보다는 묘하게 불타오르는 느낌이 든다. 지난 몇주간 지오가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떠올랐다. "문은 언제나 등 뒤에서 닫힌다."



파나마 에스메랄다 게이샤 리뷰2


앞으로 게이샤 리뷰는 꾸준히 해볼 생각이다. 내가 파나마 에스메랄다 농장의 게이샤에 꽂힌 것은 지난번 리뷰(파나마 에스메랄다 게이샤 리뷰1)에서 말한 것처럼 게이샤 특유의 내러티브도 있겠지만, 존재 그 자체로 소구력 있는 아이템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커피플랜트에서 보내준 샘플 원두들


나에게 에스메랄다 게이샤는 샤넬백 클래식이나 롤렉스 데이저스트 같은 인상이랄까? 깊고도 넓은 명품의 세계에서 존재감을 결코 잃지않는, 그런 존재처럼 느껴진다. 사실 이제는 세상이 좋아져서 꼭 에스메랄다 농장이 아니더라도 맛과 향이 탁월한 게이샤는 전 세계에 얼마든지 존재한다. 몸값이 더 비싼 커피도 수두룩 하다.


가방을 딱 하나 고를 수 있다면 이거 아닐까?


그럼에도 이 농장이 존재감을 잃지 않는 것은, 엄청난 커피 마니아가 아닌 이상 그 많은 커피 농장들을 일일이외울 이유가 없으며, 키로당 수백만원짜리 옥션랏들이 자랑하는 미세한 향미 차이를 판별할 수 없기 때문이며, 게이샤를 '처음' 발굴했다는 점에서 이 농장이 게이샤를 언급할 때 결코 빠지지 않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커피(게이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고 딱 이거 하나만 알고 있으면 돼!"가 가능한 농장이란 얘기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런데, 그런 면에서 커피 매니아는 물론 일반 유저들에게 꽤 유효한 마케팅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물론 커피 맛 역시 탁월하다. 지난번 받았던 에스메랄다 게이샤 샘플 6종 중 지금까지 5종을 브루잉으로 먹어본 결과, 하나 빠짐 없이 훌륭한 결과물을 보여줬다. 나에게는 단맛이 뒤에서 "쭉"하고 올라오는 느낌인데(같은 커피를 마신 다른 이는 단맛보다는 산미가 강렬하다고 평가했다).. 5종 모두 공통되게 느껴진다는 게 개인적으로 매우 신기한 지점이었다.


생두 자체의 힘인지, 훌륭한 로스팅 실력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게이샤를 볶는데 어떤 기준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이샤는 이런 맛이구나, 알게 된 느낌



관련문서

제텔카스텐 인덱스

브랜딩log 인덱스

커피log 인덱스

매거진의 이전글 James Hoffmann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