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타>는 미켈란젤로(1475-1564)가 교황청 주재 프랑스 추기경으로부터 의뢰받아 3년 동안 제작해 내놓은 작품이다. 이때 미켈란젤로의 나이는 24살이었다. 피에타는 라틴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라는 뜻이다. 해당 추기경은 미켈란젤로가 17살 때 만든 첫 조각상 <바쿠스>를 눈여겨 본 뒤 자신의 무덤에 장식할 요량으로 그에게 작품을 의뢰했지만, 완성품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떴다.
미켈란젤로는 알프스 최고의 대리석을 사용해 600만번 이상 가죽으로 문지르는 등 심혈을 기울여 이 작품을 만들었다. 하지만 의뢰인이 갑자기 죽는 바람에 지불 대금을 제대로 받지 못해 꽤 오래 가난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상황에 처한 그는 이 작품을 몰래 한 성당에 가져다 놓는데, 이를 계기로 널리 자신의 이름을 알리게 된다. 일종의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미켈란젤로는 이 작품이 다른 작가의 작품으로 잘못 알려지자 몰래 성당으로 들어가자신의 이름('피렌체에서 온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을 작품 뒤 편에 매우 크게 새겨놓았다. 하지만 이후 하느님조차도 그 어떤 창조물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지 않았음을 깨닫고 다시는 작품에 이름을 새기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즉, 피에타는 미켈란젤로의 이름이 새겨진 유일한 작품이다.
피에타는 정면과 위에서 봤을 때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정면에서 봤을 땐 언뜻 예수의 표정이 괴로운 것처럼 보이지만, 위에서 보면 매우 평온한 표정임을 알 수 있다. 일부에서는 (신이 있는) 하늘에서 봤을 때를 염두에 두고 전체적인 조형을 구상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반달리즘의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 1972년 "자신이 예수"라고 주장하는 망상증 환자에 의해 성모 마리아의 얼굴이 심각하게 훼손된 것이다. 파편 중 코 부분을 찾지 못해 등에서 일부를 떼어다 복원했다. 현재 복원된 상은 방탄 유리 안에 전시돼 있는데, 복원된 부분이 확연히 눈에 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