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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트롱 Mar 05. 2017

패닉 - 달팽이(1집, 1995)

20대의 이적

https://youtu.be/zraW-fU00zI



이적과 김진표가 결성했던 전설적인 그룹 '패닉'의 1집 'Panic' 타이틀곡.


작사/작곡/편곡까지 모두 이적이 담당했는데 1995년 당시 이적은 고작 22살이었다.


20대 초반은 어떤 시기인가? 


처음 맛보는 자유를 만끽하는 즐거움을 누리기도 하지만, 수능이라는 일생의 목표를 잃은 탓에 속은 공허하다.


돌아보면 가장 좋은 때라고들 하지만, 정작 그때를 살고 있는 당사자들에게는 어딘가 외롭고 허전한 시기다. 


반강제로 삶을 위탁하던 학교와 부모는 아이의 나이 십의 자리 숫자가 바뀌었다는 이유로 대뜸 삶의 권한을 넘겨준다.


어린 우리는 갑작스레 홀로 맡겨진 인생을 두고 뭘 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럽다. 숫자만 바뀌었을 뿐인데. 우린 그대로인데.


앞으로 무얼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지만


동시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가고 싶은 패기와 열망을 막연하게나마 꿈꾼다.


삶은 고유한 것이기에 그 바다의 끝은 아무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다. 


때문에 누구도 우리가 정말 맞는 방향으로 항해하고 있는지 말해줄 수 없지만 


막연하게 영원히 그곳을 향해 가겠다고 읊조리는 나이.


이적은 그런 복잡 미묘한 20대 초반의 가장 본질적인 고뇌를 가장 시적인 가사와 가장 평범하고 담담한 멜로디로 표현해 냈다.


과연 천재 작곡가, 천재 작사가...!


'달팽이'의 인상을 한층 강하게 느끼게 하는 젊은 시절 이적의 가늘고 늘어지는 듯한 목소리는 노래의 마지막 조미료 같은 느낌이다.


패닉. 여러가지로...







<가사> 

집에 오는 길은 때론 너무 길어
나는 더욱더 지치곤 해


문을 열자마자 잠이 들었다가
깨면 아무도 없어


좁은 욕조속에 몸을 뉘었을 때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내게로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삭여 줬어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 거라고


아무도 못 봤지만 
기억 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소리 따라서 
나는 영원히 갈래
 


모두 어딘가로 차를 달리는걸
나는 모퉁이 가게에서


담배 한 개비와 녹는 아이스크림 
들고 길로 나섰어


해는 높이 떠서 나를 찌르는데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어느새 다가와 내게 인사하고 
노랠 흥얼거렸어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 거라고


아무도 못 봤지만 
기억 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소리 따라서
나는 영원히 갈래


내 모든 걸 바쳤지만 
이젠 모두 푸른 연기처럼 산산이 흩어지고
내게 남아있는 작은 힘을 다해
마지막 꿈속에서
모두 잊게 모두 잊게 
해줄 바다를 건널 거야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 거라고


아무도 못 봤지만 
기억 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소리 따라서
나는 영원히 갈래
 






소라껍데기를 닮은 껍질을 이고 살아가는 달팽이는 소라껍데기 속에서 들리는 파도소리를 어렴풋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기억 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소리'를 따라 영원히 기어가는 달팽이...







Live 영상

https://youtu.be/OFHByG9uPrI

10년~11년(추정)에 부른 달팽이(약간 편곡). 이적은 솔로로 데뷔하면서부터 패닉 시절 찢어지는 목소리에 늘어지는 듯한 창법을 바꾸고, 2집을 지나 3집을 내면서부터 굉장히 탄탄하고 완성된 보컬로 거듭나게 됐다.  지금의 이적이라면 작곡, 작사, 편곡 실력은 물론 보컬로서도 탑레벨에 위치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보다 훨씬 탄탄해진 보컬로 여유있게 불러내는 '달팽이'도 한 번 들어보시라.


https://youtu.be/CbNYrDqxhAA

2012년 지산 락 페스티벌의 '달팽이' 무대. 락페용으로 좀 더 락스럽게, 그리고 후렴구 키를 하나 높여 편곡한 버전이다. 가창력을 뽐내는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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