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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트롱 Mar 15. 2017

<스파링>도선우, 2016 - 우린 뭘 그렇게 잘못해서

소설 읽고, 독후감


1.    

 타이슨은 왜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었을까?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깬 작가의 머리 속에 불현듯 떠오른 이 질문에서 시작됐다는 소설 <스파링>은 세계적인 복서 마이크 타이슨의 거대한 오마주요, 그의 삶에 바치는 헌사다. 소설의 주인공 ‘태주’, 링네임 ‘미스터 티’의 삶의 궤적은 타이슨의 그것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소설은 실존 인물의 삶에 바탕을 둔 만큼 굉장히 정직하고 우직하게 밀고 나간다. 야구로 치면 패스트 볼(Fast ball) 올인. 투수로 치자면 로저 클레멘스요, 바토로 콜론이라 할 수 있겠다. “무기는 패스트 볼. 통하지 않으면 2구는 빠른 패스트 볼, 그도 안되면 3구는 더 빠른 패스트 볼”이라던 클레멘스의 야구 철학을 소설로 담는다면 바로 이런 식이지 않을까. 물론, 스테로이드는 빼고.

철학만 담자


2.

 타이슨의 삶은 분명 드라마틱했다. 그런데 삶이 드라마틱하다는 말은 곧 그의 삶과 같은 이야기가 ‘드라마틱’이란 형용사가 당연히 따라붙을 정도로 여러 이야기의 소재로 자주 쓰인, 무척이나 흔하디 흔한 이야기라는 뜻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타이슨의 삶을 오마주한 이 소설은 플롯이 단순하며 내용은 상투적이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난 고아 소년이 잠시간 자신의 배경에 좌절해 방황하지만, 불행의 끝에서 조력자를 만나 마침내 크게 성공한다. 하지만 여전히 세상은 소년에게 친절하지 않다. 성공한 소년은 정점에서부터 조금씩 스스로 무너져 내린다,라고 하는 이 뻔한 이야기. 한데 그럼에도 책을 처음 펼쳐든 그 모습 그대로 마지막 페이지까지 헉헉대며 넘길 수밖에 없을 정도로 흡입력이 뛰어난 이유는 정말이지 재기 넘치는 작가의 필력 덕분이라 하겠다. 그러니까 이 작가가 약 350페이지 내내 던져대는 공이 패스트 볼 원 패턴임은 분명한데, 그렇다고 직구(直球)라고 할 만한 구종은 아니고 아주 볼 끝이 지저분한, 그런 일종의 내스티(nasty) 패스트 볼인 셈이다.


3.

 타이슨은 왜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었을까? 우리는 그냥 타이슨이 순간 빡쳐서, 또라이라서 등 단편적이고 ‘상식’적으로 생각하지만, 실제 그 순간 타이슨의 머리 속에서는 무척 다양한 생각들이 복잡하게 치고받는 중이었을 것이다. 하, 옛날에는 내가 요렇게 더킹 하며 파고 들어가면 애들이 어쩔 줄 모르고 턱을 딱 대줬는데 요샌 이 놈들이 각을 잘 안 내준단 말이지. 시대가 바뀌었나? 아님 그냥 내가 늙었나? 아니, 나 아직 20대인데? 너무 놀았나? 아 우리 양아부지 보고 싶다. 아부지 만나기 전엔 정말 평생 감옥에서 썩을 줄 알았는데. 아, 함성소리. 내가 맞는 모습에 환호하는 새끼들. 이러다 게임 지면 또 펜대 놀리는 놈들은 한껏 멋대로 떠들어대겠지? 팔짱 끼고 고개 쳐들고 앉아서는. 개 같은 놈들. 엿이나 먹으라지. 그냥 저놈 고간을 걷어차 버려? 아냐 아무리 그래도 내가 월드 클래스 복서인데, 정정당당하게. 아니 근데 이 새끼는 왜 이렇게 이마를 계속 들이받아? 아오 시발!


4.

 타이슨은 왜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소설의 답은 더불어민주당의 국회의원 ‘이철희’씨가 대신해줄 수 있겠다. 

이철희 : 내가 왜?

“그래요, 인정합니다. 타이슨도 잘못했죠! 그걸 무시하자는 게 아니에요. 그러나! 이러저러해서 보면 요러 저러한 면도 있거든요. 그러니 수리당당 하다보면 결국 우리 사회의 책임도 있지 않느냐, 저는 그렇게 봐요.” 


이 썰전 논리는 그야말로 무적의 논리로 반대파의 조롱을 받기도 했었으나, 적어도 우리가 현대 사회 인간 개인의 ‘불행’을 탐구하는 데 있어서는 아주 참조할만한 논리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는 불행의 근원을 찾아가는 길은 고속도로 교통 표지판처럼 ‘불행 3km’하는 식으로 척 보면 척 알 수 있게끔 표기되어 있지 않다. 그것은 마치 얽히고설킨 실타래와 같아서, 풀어내려면 이 실을 풀고 저 실을 푸는 등 충분한 인내와 시간, 그리고 통찰을 필요로 한다. 그렇게 이리저리 엉킨 실을 풀어내다 보면, 결국 근원에 이르러서는 이 사회의 책임을 목도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불행의 근원을 왜 그렇게까지 깊이 파고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 또한 나 스스로 수도 없이 해보았지만, 불행은 마치 끊으려야 끊을 수 없는 불량식품처럼 내 주변에 늘 포진해 있었으므로 생각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생각이 얽히고설켜 온통 꼬인 실 뭉텅이처럼 엉켜 있었고, 그것을 중간부터 풀 방법이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결국 엄마의 삶에까지 이르게 되는 것이었다.” p.20


"그것은 정의에 대한 바람이었다. 내가 책을 읽으며 가슴 깊숙이 감동받았던 몇 가지 이야기들에 대한 현실적인 검증이었다. 나는 내 편을 들어달라는 게 아니었다. 오로지 올바름에 관한 분별이 그곳에 있는지가 궁금했을 따름이었다. 그 분별이 비록 다수의 침묵 속에 감추어져 있었다고 해도 그들에게 그런 의지가 있었다면 나는 아마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 단 한 명만 그 용기를 보여주었더라도 그들을 주저케 했던 침묵의 벽은 여지없이 무너졌을 것이다." p.61~62


5.

 불행한 환경에서 자라난 이들이 악인으로 자라나는 것은 개인의 문제인가 사회의 문제인가. 악(惡)은 태생적 악만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만들어진 악도 존재하는가. 악이 둘로 나눠질 수 있다면 둘 사이엔 차이가 있는가. 어떻게 생각하시나? 보통 우리는 이런 문제의 원인을 '사회 문제도 없다고 할 수는 없으나 결국 개인의 책임이다'는 결론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결국 삐뚤어질지 말지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며, 한 편으론 마찬가지의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악착같이 노력해 잘된 사람들이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이다. 악을 태생적이니, 환경 탓이니 나누는 것은 그렇게 노력해 올라간 사람들을 욕 먹이는 짓이 된다. 악해질 사람은 악해지기 마련이고, 탈선하지 않을 사람은 꿋꿋이 정도를 지켜 나간다. 위 이철희 의원의 논리가 왠지 어거지 같고 우스꽝스럽다면 이 같은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을 확률이 높다(사실 내가 좀 웃기게 적었지).


6.

 범위를 조금 좁혀보자. 특정 대학 출신자에게 편파 판정을 한 스포츠 심판의 경우는 어떨까. 개인 문제일까? 구조적 병폐가 있지는 않을까? 유도 국가대표 선발전 때마다 터져 나오는 Y대 편파 판정 사건은 그 역사가 오래된 일이다. '사랑이 아빠' 추성훈 역시 20대 초반에 한국 유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한 후, "안됩니다 여긴"이란 말을 남기고 일본으로 넘어가 귀화 후 일장기를 달았다. 추성훈은 그 해 한국 국가대표를 메치고 아시안 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그는 언론에 의해 매국노가 됐었다

 대나무 숲의 대나무를 모조리 먹어 치운 판다는 어떨까? 판다의 잘못인가, 그렇지 않으면 판다를 대나무 숲에 집어넣은 사육사의 잘못인가? 소설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대나무 숲을 초토화한 판다를 보면서 사육사의 잘못은 탓하지 않고 판다에게만 죄를 추궁하는 것은, 애초부터 판다를 대나무 숲 속에 집어넣은 것 자체가 문제였다는 관점을 교묘하게 배제시킨 것이다.'

그래도 판다는 귀엽다(갈릴레이 말투로 엄숙하게)


“... 그 지점에 이르면 결국 태생적으로 타인의 존엄을 무시하는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과의 경계가 아예 사라지고 없었다. 아무 거리낌 없이 행하는 악과 떠밀려 만들어진 악의 차이가 불분명해지고 마는 것이다. 전자는 어떠한 환경에서도 변하기 어려운 악인 것에 비해, 후자는 보듬으면 곧 풀어질 악이었다(타이슨의 현재). 두 종류의 악이 실은 질적으로 다름에도 구분하지 않는다면, 징벌해야 할 부분과 품어 돌아오게 할 부분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그러면 결국 좀 더 빨리 시작된 악과 뒤늦게 각성한 악의 시간 순서만이 존재할 뿐, 그 자리엔 항상 나쁜 놈이면 그냥 다 나쁜 놈인 거지 거기에서 무슨 원인 과정 내용 따위를 따질 필요가 있느냐고 주장하는 극단적 견해만이 득세하기 마련이었다." p.75~76



7.

 그러니까 결국 '타이슨은 왜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그가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기까지 보낸 스무몇 해 간의 삶의 여정을 거슬러 올라가며 무척이나 복합적이고 본질적인 탐구를 거치지 않고서는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순간 빡돈 악인지 아니면 태생이 나쁜 놈이라 물었는지, 혹은 그 '드라마틱'한 삶을 견뎌온 분노가 한순간에 터졌는지, 아니면 홀리필드와 뭔가 사연이 있었는데 말을 않던 것인지, 귀를 물어뜯는 그 순간, 타이슨이라는 사람 개인만 보고는 알 수가 없다. 


8.

 "제가 뭘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소설의 끝에서 태주는 그를 비난하고, 때로는 그에게 환호하던 세상에 되묻는다. 세상은 그의 질문에 어리둥절하며 갈피를 잡지 못한다. 태주의 삶을 함께 따라온 독자들만이 그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뿐이다. 우리도 답은 해줄 수 없다. 하지만 이제 비로소 너를 이해한다, 는 의미로.


"내가 당신들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습니까?"p.354












p.s) 제 22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 동시에 소설가 '도선우'의 데뷔작.


p.s2) 작가인 도선우 씨는 네이버의 '책' 부문 유명 파워블로거 출신이다. '까칠한 비토씨'라는 닉네임을 쓰는 그는 블로그 운영 10년간 2000여 권의 책을 리뷰해왔다. 1년 평균 200권을 읽은 셈. 블로그는 현재 '목표 달성'을 이유로 포스팅 (잠정) 중단을 한 상태. 이 소설처럼, 블로그의 엔딩 포스팅도 정말 압권이다. 꾸준히 보아온 사람이라면 소름이 쫙. 


p.s3) 올해 만 46세인 작가는 현역 사업가다. 근데 블로그를 시작하기 전 30대 중반이 될 때까지 소설은 '쓸데없는 것'이라 생각해 근처에 두지도 않았다고(믿거나 말거나).


p.s4) 그가 소설에 처음 빠지게 된 계기가 된 소설은 <호밀밭의 파수꾼>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스파링> 역시 전반적으로 <호밀밭~> 분위기가 꽤 느껴진다.


p.s5) 무척 흡입력 있다. 무척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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