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대환의 시민을 위한 한국현대사 서평
1.
한국 근현대사라는 영역은 어쩌면 일반인끼리의 토론 주제로는 금기에 가까울지도 모릅니다. 역사적 사실을 두고도 해석이 천차만별이며, 또 그 해석, 즉 근현대사를 보는 관점에 따라 현재의 정치 성향이 어느 정도 드러나게 되기 때문이죠. 별로 정치 성향 드러내길 즐거워하지 않는 한국인 특성상 근현대사는 쉽게 다루기 힘든 주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특정한 책을 추천해주기도 힘들지요. 8,90년대 생들의 어린 시절 세계사 교과서에 가까웠던 먼 나라 이웃나라가 9권인 ‘우리나라’편에서의 몇 가지 표현 탓에 우익적이라고 손가락질 받는 시대입니다. 조금만 삐끗하면 한 쪽으로 치우친 역사 책이라는 오명이 뒤집어 씌워지는 것이죠. 일각에서는 대단한 평가를 받고 있는 한홍구의 ‘대한민국 사’ 역시, 반대편에서는 철저히 좌편항적인 근현대사 책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한국에서 발간되는 근현대사 책에 중립은 없고 단지 우익적으로 해석된 근현대사 책, 혹은 좌익적으로 해석된 근현대사 책만 있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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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럼에도 내 정치 성향을 크게 드러내지 않으며 남들에게 떳떳하게 추천할 수 있는 단 한 권의 근현대사 책을 골라달라 묻는다면, 저는 당당히 이 책, <주대환의 시민을 위한 한국 근현대사>를 추천하겠습니다. 주대환 씨가 누구인지 모르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이 분은 1954년 생 마산 출신의 진보 좌파 인사입니다. 어느 정도로 좌파냐면 무려 2004년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을 역임하신 분입니다. 그러니까 민주당(현재 더불어민주당 계열 통칭) 따위는 좌파로 인정하지도 않는 그야말로 ‘진성 좌파’ 출신인 분이지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글을 읽으며 등장하는 ‘진보’라는 단어를 ‘민주당’식으로 해석하시면 안 됩니다. 더 왼쪽으로 해석하셔야 해요. 이 분이 보기에 민주당은 진보 정당이 아닐 테니까요. 요거 이 글과 책을 읽으실 때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아, 여기까지 읽고 “뭐야? 빨갱이잖아?” 하고 뒤로 가기로 마우스 옮기고 계신 분들도 있으실 텐데요. 진정하시고 조금만 더 읽어주세요. 이 책은 굉장한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있습니다. ‘주대환’이라는 이름에 처음부터 거부감을 느낄 보수적 독자의 이탈을 막기 위해서인지 책 표지 중앙에, 무려 제목을 끊어먹으며 떡하니 박혀 있지요. 이 책의 캐치프레이즈는 이겁니다.
나는 4.19의 시만 읽은 게 아니라 5.16의 밥도 먹고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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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 돋지 않습니까? 보수우파에겐 당연한 말이라 여겨지겠지만, 아니 글쎄 이 말을 민노당 출신의, 아직까지도 정의당에 틈틈이 조언을 전하고 오마이뉴스와 진보 정당의 미래에 대해 논하는 이 원로 좌파 인사가 본인 이름을 붙인 역사 책 표지에 내걸었다니까요? ‘주대환’이라는 이름과 저 어마어마한 문구를 저울 양쪽에 올려두고 자, 이렇게 중립적으로 보려고 노력한 책이야,라고 보여주려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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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대환 씨가 이 책에서 표방하는 역사 해석의 관점은 ‘뉴레프트’입니다. ‘뉴라이트’에 맞서는 것으로, 기존의 진보적 사관을 ‘올드 레프트’로 정의하고 이제는 거기서 탈출하자는 것이죠. 그래야 진보가 이길 수 있다는 겁니다. 여기서 ‘올드 레프트’란 아주 간단히 말하면 아직까지도 ‘민주화’에 집착하고 북한 비판을 적극적으로 하지 못하는 그런 진보를 뜻한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대환 씨의 입장에서 ‘올드 레프트’에 속할 기존의 진보 성향 독자가 읽기에 이 ‘뉴레프트’는 대단히 파격적으로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막 화가 날지도 몰라요. 이 분은 박정희 시대의 성장뿐 아니라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공도 인정을 합니다. 여기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친일파의 문제에 있어서도 매우 관대해요. 친일파 관련 입장을 요약하면 1937년 이후, 그러니까 일제가 전시 체제에 돌입한 이후 돌아선 독립운동가 출신 친일파들을 단순히 매국노로 몰아세우는 건 무리가 있다는 겁니다. 대표적인 예로 인촌 김성수를 들고 있는데요. 김성수는 일제시대에 경성방직과 동아일보를 설립해 많은 돈을 번 자산가로, 그 돈의 많은 부분을 독립운동가들의 지원과 우리말 알리기, 국민 계몽, 물산장려운동 등에 투자한 분입니다. 유명한 동아일보 손기정 일장기 삭제 사건도 이 분과 관련해 일어난 일입니다. 이 일로 동아일보는 무기 정간을 당하고 김성수 역시 이사직에서 사퇴를 하게 되죠.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대단히 훌륭한 애국지사죠. 그런데 인촌 김성수라는 이름은 지금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친일인명사전’ 명단에 올라 있습니다. 문제는 1937년 이후입니다. 이 훌륭한 애국지사였던 사람은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부터 동아일보에 지원병 권장 글을 써 올리고, 일제의 세계대전 참전이 본격화되는 1942년부터는 학도병제와 징병제를 찬양하는 연설을 하는 등 ‘변절’하게 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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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이 시기에 변절을 합니다. 일제의 침략전쟁을 찬양하고 입대를 권장하는 글과 연설을 발표합니다. 기미독립선언서를 쓴 최남선, 이광수 등도 이즈음 친일로 돌아서죠. 주대환 씨는 왜 하필 이 시기에 다수 독립투사들이 변절을 했는가에 주목합니다. 1937년은 중일전쟁이 발발한 연도입니다. 그때까지 이른바 ‘문화통치’를 표방하던 일제는 통치 방식을 폭력적으로 바꿉니다. 교사들마저 칼을 차고 다니며, 말을 듣지 않으면 즉석에서 처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을 정도입니다. 앞서 있었던 만주 대토벌 이후 독립군의 투쟁은 거의 씨가 말랐고, 가혹함을 넘어 잔혹한 수준에 이른 통치에 국내 독립운동 세력도 목소리를 내기 힘들어졌습니다. 오죽하면 이 시기 고작 만주 한구석의 파출소를 습격해 일본 경찰 2~3명을 죽인 게 전부인 김일성의 ‘보천보 전투’가 ‘전투’라는 이름을 달고 크게 호외로 보도되었을까요(심지어 이걸 호외로 보도한 언론도 동아일보입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그때까지는 독립운동할 만 했다, 그런데 전시에 들어서고 나서는 진짜 즉석에서 그냥 재판도 없이 죽여버리니까 굽히지 않을 수가 없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주대환 씨는 이 주장의 근거로 6.25 당시 납북되어 김일성과 ‘통일전쟁’ 찬동 연설을 한 대한민국 건국(주대환 씨는 꾸준히 ‘건국’이란 단어를 사용합니다. ‘정부 수립’이 아니라) 지사들의 예를 듭니다. 1937(짧게는 1942)~1945 시기 변절한 독립운동가들을 친일파라 욕하려면6.25 때 납북되어 김일성을 찬양한 조소앙, 안재홍 같은 분들도 욕을 먹어야 한다는 겁니다. 이른바 ‘올드 레프트’적 시각을 가진 사람들의 모순을 꼬집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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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근거로 드는 것은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을 할 당시의 친일파 목록입니다. 그때 당시 반민특위(비록 이승만의 방해로 실패했지만)에서 청산하려 추리고 추린 인물들이야말로 진정한 ‘진성 친일파’ 아닐까요? 함께 같은 시대를 살며 그들에게 당했던 분들이 고르고 고른 친일파들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김성수라는 이름은 들어있지 않았습니다. 주대환 씨는 그 이유를 ‘당시 독립운동가들 중 김성수에게 도움받지 않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라 말합니다. 또 한 가지 이유로 지금의 기성 정당들이 서로 반목하는 듯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서 보면 거진 친구인 것처럼, 당시에도 독립운동가들은 워낙 소수였던지라 서로 돕고 돕던 관계였단 겁니다. 그래서 전시 때 변절을 했던 전력이 있더라도 서로 이해해줬다는 것이죠. 그 대표적인 예가 이광수와 김구의 관계입니다. 김구의 백범일지가 원래 거의 한문 투였다는 것을 알고 계시나요? 백범일지를 평역해 지금 우리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한 이가 바로 이광수입니다. 심지어 백범일지의 유명한 파트중 하나인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는 통째로 이광수가 새로 써 붙인 부분입니다. 광복 후 김구가 왜 친일파인 이광수에게 백범일지를 맡겼을까요? 그런 부분들을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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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주대환 씨는 왜 이렇게, 약간은 오버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김성수의 친일 기록을 조금 관대하게 봐주자 주장하는 것일까요? 왜 김성수에게 이토록 많은 분량을 할애한 것일까요? 그 이유는 바로 인촌 김성수가 주대환 씨가 생각하는 ‘진보의 최우선 가치’를 건국의 주춧돌로 놓도록 만든 1등 공신 중 한 명이기 때문입니다. 그 진보의 최우선 가치란 무엇일까요? 바로 ‘평등’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대환 씨는 여타 진보주의자와 달리 대한민국의 ‘건국’을 인정합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자랑스레 긍정합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제1모토는 ‘자유’였는가?라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답합니다. 그리고 아주 용맹하게 외칩니다. “대한민국은 건국되었습니다. 그리고 옳은 방향으로 성장해 왔습니다. 하지만 그 토대는 ‘자유’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평등’이었습니다”라고요. 그러니까 주대환 씨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우파적 가치가 아닌 좌파적 가치를 토대로 삼았기에 지금에 이를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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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평등’인가를 말해봐야 할 겁니다. 우리는 흔히 ‘자유 대한’이라는 단어에 익숙합니다. 공산주의를 내세운 북한과 우리 대한민국이 가장 차별점을 갖는 것이 바로 ‘자유’잖아요? 더군다나 그 시절이면 평등이라는 좌익적 가치는 오히려 가장 배척되는 것이었을 텐데 말입니다. 하지만 주대환 씨가 역사를 되짚어 올라가 보니 이게 그렇지가 않더라는 말이죠. 한 번 생각해봅시다. 6.25 전쟁 때 말이에요.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피를 흘려가면서도 북한군에 저항했을까요? 대통령은 어딘지도 모를 곳으로 날아가고, 한강 다리는 우리 정부에 의해 끊기고, 전쟁 3개월 만에 국토를 다 뺏기고 낙동강까지 밀려 내려갔는데 우리 국민들은 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북한군과 맞서 싸웠을까요? 실제로 전쟁 끝나고 김일성이 박헌영 등 남로당 계열 인사들을 모조리 숙청하면서 이 문제를 따졌다고 합니다. 왜 남조선 인민들이 내부에서 데모를 하고 우리 ‘해방군’을 환영하지 않았느냐고 말이죠. 이거 가만 생각해보면 되게 이상한 거 아닙니까? 1950년이에요. 다 못 먹고 못 살던 시절입니다. ‘평등한 분배’를 기치로 한 공산주의가 더 솔깃한 게 정상인 때입니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은 공산주의를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태극기를 들고 ‘자유’를 지키겠다며 맞섰습니다.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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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뇨? 앞서 말했잖아요? 대한민국의 토대는 ‘평등’이었다고. 우리 국민들이 공산주의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끝까지 싸웠던 이유는 바로 우리가 이미 평등 했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왜 주대환 씨가 그토록 김성수를 지키기 위해 애썼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주대환 씨가 대한민국의 뿌리로 ‘평등’을 주장하는 핵심 이유는 바로 ‘토지 개혁’입니다. 우리 고등학교 근현대사 시간에 북한은 무상몰수 무상분배, 한국은 유상몰수 유상분배를 했다고 배웠잖아요? 이게 단순히 ‘무상’, ‘유상’ 이렇게 금전적 단어를 사용하니까 북한이 썩 괜찮아 보이는데, 사실 자본주의, 자유주의를 택한 한국에서 유상이든 뭐든 ‘몰수’와 ‘분배’를 택했다는 거, 이거 대단히 신선한 겁니다. 물론 전략적인 정책이긴 했습니다. 위 동네에서 부자들한테 강제로 땅 다 뺏어서 서민들에게 무료로 나눠준다는데 우리만 멍하니 있을 순 없으니까요. 그래서 이승만이 지시를 합니다. 누구에게? 놀라지 마세요. 바로 ‘조봉암’입니다.
훗날 이승만은 강력한 정적으로 성장한 조봉암을 이른바 ‘진보당 사건’으로 간첩으로 몰아 사형시키지요. 하지만 이때는 조봉암에게 그 중요한 토지 정책을 맡깁니다. 조봉암은 “어? 제가 생각하는 토지 개혁은 대통령께서 생각하시는 거랑 많이 다를 텐데요?”라며 재차 확인했지만 이승만은 그냥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면서 덜컥 농림부 장관을 시켜주죠. 그래서 조봉암이 전 국토의 유상 몰수 유상 분배라는 토지 개혁안을 만듭니다. 그런데 이 유상몰수라는 게 공산주의도 아니고 자유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제대로 실행을 하려면 지주 계급의 도움도 있어야 하지 않았겠습니까? 이때 조봉암을 전적으로 지원하고 나선 이가 바로 김성수입니다. 광복 후 한국의 가장 큰 지주 중 하나이자, 한민당(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의 전신) 창당 인사였던 김성수가 토지개혁을 지지하고 나서니 중소 지주들도 어쩔 수 없이 땅을 내놓게 됩니다. 그래서 전 국민이 드디어 ‘내 땅’을 갖게 된 겁니다. 주대환 씨가 인정하는 이승만의 ‘공’이란 바로 이때의 추진력입니다. 그리고 왜 김성수를 그토록 지키려 했는가도 이제 알 수가 있지요. 그는 조봉암을 지원하고, 누구보다 먼저 땅을 내놓아 대한민국의 뿌리에 ‘평등’을 심은 인물이었으니까요. 김성수는 훗날 6.25 이후 사회주의자로 꾸준히 간첩 의심을 받아온 조봉암을 죽는 순간까지 지키려 애쓰기도 합니다만 자세한 건 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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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개혁 얘기를 조금만 더 하자면 ‘유상 분배’라는 게 돈 있는 사람만 땅 살 수 있다 이런 개념이 전혀 아니었어요. 당시 한국은 전 국민의 70%가 농민이요, 그 농민의 85%가 소작농인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소작농들은 한 해 거의 소출의 4~50%의 소작료를 냈지요. 그런데 유상 분배를 하며 내건 조건은 5년간 소출의 30%만 내라는 것이었습니다. 평생 남의 땅을 경작하며 절반의 소작료를 내던 농민들이 겨우 5년간 30%만 내면 자기 땅이 된다는데 포기할 사람이 있었을까요? 그래서 전 국민들에게 ‘내 땅’ 개념이 생긴 겁니다. 그러니까 6.25 때 우리를 ‘해방’시키겠노라 쳐들어 온 북한군은 대다수 우리 국민들에게 ‘내 땅’을 뺏으려는 나쁜 놈들이 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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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5.16의 밥도 먹고 자랐다’는 주대환 씨가 박정희 시대의 성공을 인정하는 바탕도 바로 이 토지 개혁입니다. 흔히 우리는 산업화를 말하며 몇 명의 굵직굵직한 거인들을 말합니다. 대통령 박정희뿐 아니라, 지금의 대기업을 일군 정주영, 이병철, 박태준 등의 초대 회장들 말이죠. 이런 거물들이 있었기에 우리나라 경제가 그리도 급성장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들 말합니다. 하지만 이것도 다시 생각을 해보면, 정말로 필리핀이나 브라질 같은 우리랑 비슷한 수준이던 나라들에 이런 인물들이 단 한 명도 없었을까요? 그럴 리는 없다는 거죠. 주대환 씨가 보기에 6,70년대 우리와 비슷한 수준이다가 지금 와서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격차로 추락한 국가들과 우리나라의 가장 큰 차이가 바로 ‘토지개혁의 성공’이라는 것입니다. ‘내 땅’을 가진 국민들이 있는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거죠. 실제로 초기 토지 분배 상태와 장기 경제 성장률의 관계를 그래프로 구해보면 거의 완벽하게 정비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주대환 씨는 이렇게 말하고 싶으셨던 거죠. “그래, 나 5.16의 밥도 먹고 자랐어. 그런데 5.16의 밥은 단순히 몇 명의 거인들이 뚝딱 만들어 준 밥이 아냐. 우리 대한민국에 ‘평등’이란 우월한 유전자가 깔려 있었기 때문에 그 밥도 나올 수 있었던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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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북한에 대한 비판도 빼놓지 않습니다. 아주 중요하죠. ‘뉴레프트’니까요. 북한의 무상몰수 무상분배가 얼마나 포퓰리즘적인, 환상과도 같은 것이었는지부터 대차게 깝니다. 북한은 기껏 땅을 공짜로 나눠줬다고 해놓고는 정작 전쟁 끝나고 나니 집단 농장을 하니 어쩌니 하면서 다시 땅을 도로 뺏어 갔다는 겁니다. 그리고 거의 소작농 수준의 소출료를 매겨버리죠. 그 밖에도 본인의 대학 시절 대학 운동가를 점령했던 ‘주체사상’의 현실, 그리고 아직도 그를 버리지 못한 채 따르고 있는 소수 586 운동권 후배들에 대해서도 안타까움을 전합니다. 또 북한은 역사가 아닌 신화로 이루어진 나라라는 말로 확실히 ‘종북’ 논란과 선을 그어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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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대환 씨는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너무나도 새롭고 ‘정통 좌파’스럽지 않은 해석 탓에 ‘혹시 변절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으면서도 이 책을 써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고, 또 ‘나는 4.19의 시만 읽은 게 아니라, 5.16의 밥도 먹고 자랐다’는 문구를 보고 얼굴을 붉히며 주대환이 변했다 욕하는 이들은 정말 머리가 텅 빈 사람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의 뿌리가 ‘평등’이라고 책에서 수도 없이 말하고 있는데 대체 왜 그렇게 밖에 생각을 못하는 건지 이해가 안 됩니다. 박정희 경제 성장의 성공은 어떤 식으로든 절대 인정해서는 안되는 것인가요? 주대환 씨는 바로 그런 ‘올드 레프트’적 시각을 버려야 진보가 메인스트림에 들어설 수 있다고 말하는 겁니다. 평생을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에 바친 원로 진보 인사로서 정말 가슴 절절히 외치고 있는 겁니다. “왜 우리는 ‘평등’을 당당히 외치지 못하나? 우리는 진보다. ‘평등’을 누구보다 당당히 외칠 수 있어야 한다. ‘평등’은 북한을 따르자는 게 아니다. 북한과 확실히 구분하는 것부터 하자. 왜 통합진보당은 북한을 비판하지 못했나? 왜 아직까지도 그렇게 북한을 버리지 못하나? 저런 신화 속에 묻힌 집단 확실히 끊어내고 가자. 그리고 당당하게 ‘평등’을 외치자. 대한민국이 자유의 기치 위에 세워졌다며 우리를 막아서는 보수 세력에게도 당당히 외치자. 그렇지 않다고. 대한민국의 뿌리는 자유가 아니라 평등이었노라고. 평등이라는 진보좌파적 가치가 단단히 박혀 있었기에 우리는 6.25를 이겨낼 수 있었노라고. 그 뿌리가 있었기에 박정희의 경제 성장도 성공할 수 있었노라고. 그 뿌리가 있었기에 수차례 독재가 있었어도 비교적 단기간에 그 고리를 끊어내고 이렇게 성공적인 민주주의를 누릴 수 있게 되었노라고. 그래서 나는 내 나라 대한민국이 이렇게나 자랑스럽노라고.”
P.S)이 글은 책의 서평, 리뷰입니다. 개인적인 정치 성향과는 무관합니다.
P.S2)이 글은 네이버 블로그 '스마트롱'S 문화읽기'에도 동시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