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커피에 얼음을 넣지 않는다
*이 시리즈는 여행기가 아니다. 그냥 여기 살면서 내가 느낀 것들, 말 그대로 '단상'들을 정리하고 풀어내려는 목적이다. 일기라고 봐도 되겠다. 여행에 대한 정보는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글 전개상 필요하거나 마음이 내키면 들어갈 것임. 사실 글 '전개'라고 하기도 뭣할 정도로 짧은 글들이 계속되겠지만ㅋㅋ
**내가 살고 있는 지방은 독일 헤센 주의 '기센'이라는 조그만 도시다. 여기서 6개월간 해외 인턴을 하고 있다. 사실 그 옆에 붙은 배드타운같은 마을에 살지만, 여기는 독일 사람들조차도 그 누구도 모르므로 그냥 기센이라고 하자. 내가 사는 곳은 시골 그 자체다. 그래서 주말마다 탈출을 한다.
***글은 하루에 한 개를 쓸 수도, 혹은 그보다 더 많이 쓸 수도 있다. 글 한 편당 하나의 주제만 쓸 것임. 글은 대체로 아주 짧을 것이다.
****정말로 아무 주제나, 순서에 상관 없이 쓸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여행기도 아니고 생활기도 아니다. 그냥 내가 보고 느낀 점을 정리하려는 '감상 일기'다.
나는 아이스 커피를 무척 사랑하는 사람이다. 개중에서도 주력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다. 카페에 가면 여름에는 물론이고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겨울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할 정도다. 가끔 달달한게 땡기면 마끼아또 류를 주문하긴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거의 9:1 비율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왜 그렇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좋아하느냐고 물어보면 딱히 대답할 말이 없긴 한데, 아니 뭐 일단 음료는 원래 시원해야 제 맛 아닌가? 특히나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시원하면서도 깔끔하고 쌉쌀한게 물리지 않는 맛이라서 더 애정이 가지 않나 싶다.
사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겨울에도 찾아 마실 정도로 좋아한다는 건 한국에서 별로 특별한 일이 아니다. 이건 딱 팩트로 근거를 댈 수 있는 대목이다. 스타벅스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2016년 국내 1000여개 매장에서 팔린 아메리카노 핫/아이스 비율을 분석해 보니, 핫 아메리카노는 45.5%,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54.5%였다고 한다. 무더위가 절정에 이르는 7~9월에는 거의 8:2 비율로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많이 팔리며, 심지어 추위의 절정인 1/4분기(1~3월)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37%라는 높은 비율로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비단 나뿐만 아니라 한국인 자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는 음료에 환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계절을 가리지 않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사랑은 사실 내가 아주 평범한 중위 레벨 한국인이라는 증거인 셈이다.
http://www.edaily.co.kr/news/news_detail.asp?newsId=03450566616059136&mediaCodeNo=257&OutLnkChk=Y
(기사는 네이버 뉴스말고 신문 사이트에 직접 접속해서 원문을 읽어줍시다)
자, 그러니깐. 그러니까 독일 촌동네에서의 삶이 이 평범하고 특색없는 아주 보통의 한국인에게는 더더욱 쉽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처음 이 나라 이 동네에 도착했을 때 기뻤던 것 중 하나가 카페가 한국만큼이나 오밀조밀 밀도있게 많다는 사실이었는데, 세상에 그 많은 카페 어느 한 집에도 아메리카노는 커녕 '아이스 커피'라는 메뉴조차 없는 게 아닌가! 처음 용기 내어 혹시 얼음을 넣은 커피는 없느냐 공손히 물어보았을 때, 왓?! 하며 나를 쳐다보던 독일인 점원의 눈빛을 기억한다. 그녀는 그날 내게서 오랑캐를 보았을 것이다. 아메리카노도, 아이스 커피도 없다니, 도저히 노멀한 한국인이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지 않느냔 말이다. 처음엔 그래도 겨울이니까 없나 보다 싶어 울며 겨자먹기로 펄펄 끓는 용암수같은 커피를 마시며 힘든 겨울을 버텼다. 하지만 아니었다. 지금도 독일의 카페에서는 아이스 커피 메뉴를 팔지 않는다. 그들은 야외 테라스에 앉아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차가운 음료를 마시고 싶은 사람은 맥주를 주문한다. 절대 커피에는 어떤 차가운 물질도 담지 않는다.
독일에서 아이스 커피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는 장소는 단 한 군데 밖에 없다.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그렇다. 바로 스타벅스다. 세계 어디든 비슷한 인테리어와 맛과 메뉴를 제공하는 스타벅스는 독일에서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의 것들을 제공한다. 이 곳에서는 당당히 아이스 커피!를 외쳐도 오랑캐가 되지 않는다. 심지어 스타벅스는 와이파이도 빠르다. 나는 한국에 있을 때 스타벅스를 별로 선호하지는 않는 주의였지만, 독일에 오고부터는 열렬한 스타벅스 팬이 되었다. 이 감동적인 서비스를 지금껏 모르고 있었다니, 스타벅스에 너무나 죄송한 마음이다.
그런데 사실 독일도 대도시에 가면 스타벅스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프랑크푸르트 부근에만 스타벅스가 18개나 있을 정도다. 아니, 그러면서 무슨 불만을 그렇게 토해 놓느냐고? 스타벅스 특징이 되는 곳에서는 막 몰아 가게를 내는데 안 되는 곳은 아예 안 내거나, 가게를 내더라도 한 두 개 정도 역에 붙여서 낸다는 거다. 그래서 도시 별 스벅격차가 생긴다. 당연하게도 쥐똥만한 우리 동네엔 스타벅스가 없다. 옆 동네에도 없고, 조금 더 큰 옆옆동네에도 스타벅스가 없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마시려면 기차타고 프랑크푸르트까지 1시간을 달려야 가능하다. 로컬 카페에서는 아이스 메뉴를 절대로 팔지 않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스타벅스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마셨다고 신나서 기념샷을 남겨놨을까.
대도시에 스타벅스가 있건 없건 많건 적건 나랑은 일상 생활에서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이므로, 나에게 독일은 아이스 커피가 없는 지옥 불국가다. 그래서 이 글의 요지는 다른 게 아니다. 여러분들은 부디 해외인턴 찾을 때 회사가 그 국가 내에서도 정확히 어디 위치해 있는지를 아주 꼼꼼히 잘 따져보셔야 한다는 것이다. 함정 카드가 아주 많다. 부디 조심하시길. 무운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