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역전골의 순간, 그 날 저녁
*이 시리즈는 여행기가 아니다. 그냥 여기 살면서 내가 느낀 것들, 말 그대로 '단상'들을 정리하고 풀어내려는 목적이다. 일기라고 봐도 되겠다. 여행에 대한 정보는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글 전개상 필요하거나 마음이 내키면 들어갈 것임. 사실 글 '전개'라고 하기도 뭣할 정도로 짧은 글들이 계속되겠지만ㅋㅋ
**내가 살고 있는 지방은 독일 헤센 주의 '기센'이라는 조그만 도시다. 여기서 6개월간 해외 인턴을 하고 있다. 사실 그 옆에 붙은 배드타운같은 마을에 살지만, 여기는 독일 사람들조차도 그 누구도 모르므로 그냥 기센이라고 하자. 내가 사는 곳은 시골 그 자체다. 그래서 주말마다 탈출을 한다.
***글은 하루에 한 개를 쓸 수도, 혹은 그보다 더 많이 쓸 수도 있다. 글 한 편당 하나의 주제만 쓸 것임. 글은 대체로 아주 짧을 것이다.
****정말로 아무 주제나, 순서에 상관 없이 쓸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여행기도 아니고 생활기도 아니다. 그냥 내가 보고 느낀 점을 정리하려는 '감상 일기'다.
대체로 독일인들은 평소 차분하고 조용한 모습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모인 광장을 가도 크게 소란스럽지 않다. 하지만 이들이 가끔 '독일 맞나?' 싶은 모습을 보일 때가 있는데 바로 축구를 하는 날이다.
혹여 자신이 방문하는 지역 팀의 분데스리가 경기가 있는 날이면 그 날은 기차를 타면 안된다. 너무 붐벼서 앉을 자리조차 없으며, 서울에서 출퇴근 시간에 2호선, 9호선을 타듯 독일인들 사이에 낑겨 서서 가야 한다. 그 와중에 3~4분 간격으로 팀 응원가를 합창하는데, 그렇게 1시간을 타고 가노라면 정말 정신이 아득해진다. 내릴 때쯤 바닥에 굴러다니는 수 많은 맥주병들은 마지막 보너스다.
열정적으로 돌변하는 만큼, 또 술도 많이 마신 만큼 싸움도 많이 일어나는 날이다. 경기가 끝난 후 술집과 지하철 여기저기에서 싸움박질을 하는 독일인들을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그러니 그 날만은 취객들과 함부로 눈을 마주치거나 어깨를 부딪히지 않도록 하자. 말도 안되는 이유로 싸움에 휘말릴지도 모른다.
어제는 독일vs스웨덴이 있었던 날이다. 길거리 곳곳에서 옹기종기 모여 맥주 한 잔과 함께 팀을 응원하는 독일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경기 내용이 썩 좋지 않았기에 내내 조용했었지만 마지막 원더골이 이들을 뒤집어 엎었다. 그 순간을 포착했다. 뭔가 감이 수상해서 마지막 프리킥때 카메라를 들이 밀고 있었는데 적중했다.
덕분에 광란의 밤이 되었고, 새벽까지 울려대는 경적과 노래 소리에 호스텔에서 잠을 청하지 못했다. 아, 마침 룸메이트는 멕시코인이었다. 동양인인 나를 보고 기대감에 가득 찬 얼굴로 "Where are you from?"을 물어보던 그는 내게서 "Korea"라는 답을 듣자마자 싱글벙글 웃으며 몇 시간 전 벌어진 국가적 만행에 유감을 표했다. 그 친구는 잘 자더라. '축구도 못하는 것들이 한 번 이겼으니 좋아할 만도 하지' 하는 주파수로 담담히 코를 골았다. 어지러운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