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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트롱 Jun 26. 2018

서울은 해체되어야 한다

독일 소도시 카를스루에에서 깜짝 놀란 이야기

*이 시리즈는 여행기가 아니다. 그냥 여기  살면서 내가 느낀 것들, 말 그대로 '단상'들을 정리하고 풀어내려는 목적이다. 일기라고 봐도 되겠다. 여행에 대한 정보는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글 전개상 필요하거나 마음이 내키면 들어갈 것임. 사실 글 '전개'라고 하기도 뭣할 정도로 짧은 글들이 계속되겠지만ㅋㅋ

**내가 살고 있는 지방은 독일 헤센 주의 '기센'이라는 조그만 도시다. 여기서 6개월간 해외 인턴을 하고 있다. 사실 그 옆에 붙은 배드타운같은 마을에 살지만, 여기는 독일 사람들조차도 그 누구도 모르므로 그냥 기센이라고 하자. 내가 사는 곳은 시골 그 자체다. 그래서 주말마다 탈출을 한다.

***글은 하루에 한 개를 쓸 수도, 혹은 그보다 더 많이 쓸 수도 있다. 글 한 편당 하나의 주제만 쓸 것임. 글은 대체로 아주 짧을텐데 간혹 좀 길 수 도 있다.

****정말로 아무 주제나, 순서에 상관 없이 쓸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여행기도 아니고 생활기도 아니다. 그냥 내가 보고 느낀 점을 정리하려는 '감상 일기'다.

카를스루에 궁전

 퀴즈다. 우리나라 청와대는 어디에 있을까? 서울시 종로구 북악산 앞 쪽에 있다. 지도에는 표기가 되지 않지만 뭐 우리나라 사람 중 청와대 위치 모르는 사람이 몇 있을라고. 국회의사당은 어디 있을까? 서울 여의도에 있다. 자, 그럼 한국은행은 어디 있을까? 지역마다 분점이야 있지만 본점은 역시 서울이다. 대법원은 어디있나? 서울 서초구에 있다. 마지막으로 헌법 재판소는 어디있게? 당연하게도 이 역시 서울 종로구에 있다. 정답을 모두 맞추신 분이 계신지? 축하드린다. 님의 내일 하루 일진이 무척 순탄하길!


 6개월간 독일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면서 느끼는 한국과의 차이 중 하나가 바로 국가 주요 기관들이 도시 별로 분산되어 있다는 점이다. 국가 차원에서 특정 지역으로의 힘의 집중을 막으려는 노력이 엿보인달까? 예를 들어 대통령 관저와 연방총리청, 연방의회는 동독 지역에 위치한 수도 베를린에 있으나, 연방 은행은 서쪽 프랑크푸르트에 있다. 정치 수도와 경제 금융 수도가 분리되어 있는 셈이다. 사실 여기 까지는 미국도 워싱턴DC와 뉴욕 등으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크게 색달라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독일은 중앙 사법 기관 역시 따로 떨어져 나가 있다. 말을 가져다 붙이자면 이른바 '사법 수도' 역시 따로 존재한다는 소리다. 독일 연방 대법원과 헌법 재판소가 어디있는지 아시는가? 바로 '카를스루에'라는 도시다.   


 카를스루에는 독일 서남부 끄트머리에 붙어 있는 인구 27만 명의 작은 도시다. 독일에서 RB(빨간 기차)를 탈 때 종종 볼 수 있는 이름이기도 하다. 많은 라인들이 카를스루에를 서남부 종점으로 삼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프랑스로 건너갈 때도 거의 대부분 이 카를스루에를 경유해서 넘어간다. 프랑스와 마주 붙어 있는 국경 지대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가장 동쪽 도시인 스트라스부르와는 버스로 단 1시간 거리다. 플릭스 버스를 타면 단돈 4유로에 국경을 건널 수 있다.

카를스루에는 도시가 성을 기준으로 부채꼴 모양으로 뻗어나가는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다

 프랑스와 국경이 맞닿아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딱히 매력 요소가 없는 이 작은 도시에 관심을 가지고 방문하게 된 이유는 단 하나다. 연방 대법원과 헌법 재판소의 존재 때문이다. 너무 신기하지 않은가? 베를린은 수도고, 프랑크푸르트는 서독 시절부터 경제 중심지였던 대도시니 그렇다 쳐도, 도대체 이 서남쪽 끄트머리의 작은 도시에 왜 헌법 재판소와 대법원이 들어 앉아 있다는 말인가? 인터넷에 찾아봐도 이유가 안 나오더라(애초에 카를스루에를 특정해서 쓴 글도 거의 없다). 그래서 직접 두 눈으로 보고 체험하고 싶었다. 독일 다른 도시들과 무엇이 달랐길래? ...결과적으로 별반 차이는 없었다. 독일 다른 도시들과 매한가지로 도시를 상징하는 성이 하나 있었고(엄밀히 말하면 궁전이지만), 일상 분위기는 심심하고 허전했다.


 그런데 의문이 풀리지 않은 채 이 심심한 도시를 거닐다보니 오히려 생각이 뒤집히게 됐다. 그러니까 '왜 이런 도시에?'가 아니라, '아, 이런 도시에 대법원이나 헌법 재판소가 있어도 되는구나.'로 바뀌게 되더란 소리다. 저런 국가 주요 시설들이 굳이 수도에, 대도시에만 있어야 한다는 법은 없었던 거다. 적어도 독일에서는 말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도 그렇다. 대법원이나 헌법 재판소가 굳이 서울에 있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저기 목포나 통영쯤에 있으면 안되는 걸까? 대법원이나 헌재가 다른 지방 지역에 있으면 큰 사건이 하나씩 터질 때마다 해당 지역이 관심을 모을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한국은행같은 주요 금융 시설은 부산에 있으면 안되는 걸까? 'IT 강국' 대한민국 아닌가? 어차피 모든 일은 전산으로 처리하는 시대에 서울에 있으나 부산에 있으나 일처리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일텐데. 최소한 독일보다는 빠를 거 아냐.

지금도 이러고 계시진 않으실 거라 믿습니다(출처: 월간조선)

 독일이 행정, 경제, 사법 수도를 적절히 분산시켰다면, 우리는 서울 올인원이다. 행정 수도도, 경제 수도도, 사법 수도도, 그리고 상징적 의미에서의 수도도 역시 서울이다. 그냥 대한민국=서울이나 다름 없는 셈이다.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왔지만 돌아보면 굉장히 기형적인 구조다. 서울에 일방적으로 짊어 지운 책임을 좀 덜어줘야 한다. 너무 과도하게 비대해져 있으니 정상인 수준으로 다이어트를 좀 시켜줘야 한다. 서울을 다이어트시키면 보이지 않는 병폐들도 고칠 수 있다. 집값 격차도 줄일 수 있을 테고, 대학 집중 문제도 완화 될 거다. 지방 차별 의식도 청산해낼 수 있다. 전라도와 경상도가 서로 차별의식을 가지니 어쩌니 하지만 사실 누구보다 차별 의식이 강한 건 서울 사람들이다. 차별을 넘어 무시 수준이다. 당장 이 사람들은 서울을 제외한 대한민국의 그 어떤 지역도 '시골'이라 칭하고 있지 않은가? 대전을 가도 시골이고, 대구나 광주를 가도 시골이며, 심지어 부산을 가도 시골이다. 아주 건방지다. 그래놓고 해당 지역 사람들이 화를 내면, '시골이 아니면 화를 안냈겠지. 역시 넌 시골 사람이야!'라며 골려 먹는다. 사실 사는 수준만 놓고 보면 지방 사람들보다 훨씬 힘들고 각박한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을 텐데, 서울의 대단함과 서울에 살고 있는 자신을 동일시 시키는 통에 이런 참사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아주 뿌리 깊은 지역 차별 의식을 통째로 뽑아내기 위해서라도 서울 해체는 필요하다.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 in 카를스루에

 세종시가 행정 특구로서 성공적으로 연착륙하고 있고, 과거와 달리 여론도 이른 바 '행정 수도 이전'에 우호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 같다. 하나 하나, 전에 시도했다가 실패했던 것들까지 다 옮겨야 한다. 지금 생각하기엔 안될 것 같아 보여도 청와대도, 대법원도 세종으로 가면 서울의 힘은 자연히 분산되게 되어 있다. 빼자 빼! 다 빼 버리자! 서울은 경제 수도 정도면 족하다. 그것도 좀 지방이랑 나눠 먹자. 일단 가장 서울에 있어야만 하는 당위가 떨어지는 헌재부터 옮겨보자. 우리도 카를스루에 같은 도시 좀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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