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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트롱 Jun 28. 2018

2:0 그 후... "수드(Süd) 코리아?"

오랜만에 국뽕에 취한 날

*이 시리즈는 여행기가 아니다. 그냥 여기  살면서 내가 느낀 것들, 말 그대로 '단상'들을 정리하고 풀어내려는 목적이다. 일기라고 봐도 되겠다. 여행에 대한 정보는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글 전개상 필요하거나 마음이 내키면 들어갈 것임. 사실 글 '전개'라고 하기도 뭣할 정도로 짧은 글들이 계속되겠지만ㅋㅋ

**내가 살고 있는 지방은 독일 헤센 주의 '기센'이라는 조그만 도시다. 여기서 6개월간 해외 인턴을 하고 있다. 사실 그 옆에 붙은 배드타운같은 마을에 살지만, 여기는 독일 사람들조차도 그 누구도 모르므로 그냥 기센이라고 하자. 내가 사는 곳은 시골 그 자체다. 그래서 주말마다 탈출을 한다.

***글은 하루에 한 개를 쓸 수도, 혹은 그보다 더 많이 쓸 수도 있다. 글 한 편당 하나의 주제만 쓸 것임. 글은 대체로 아주 짧을텐데 간혹 좀 길 수 도 있다.

****정말로 아무 주제나, 순서에 상관 없이 쓸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여행기도 아니고 생활기도 아니다. 그냥 내가 보고 느낀 점을 정리하려는 '감상 일기'다.


독일vs스웨덴전... 아쉽게도 한국 경기는 밖에서 보지 못했다

 설마하니 우리나라가 독일을 2:0으로 누를 줄은 누가 알았으랴? 도박사들조차도 한국이 2:0으로 이기느니 독일이 7:0으로 이길 확률이 높다고 확신한 부분 아니었겠어? VAR 판독 결과 골이 선언 됐을 때 두 손을 높이 치켜들고 "독일 탈락!"을 외쳤더랬다. 후반 96분 손흥민 골 때는 조금 더 목청을 키워 "독일 탈락!!"을 외쳤던 것 같다. 딱히 독일에 억하심정이 있었던 건 아니고... 랭킹 57위가 1위를 잡아먹는 언더독의 반란이라는 시나리오 자체가 주는 극적 쾌감이 있었달까.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전 세계 주요 언론들이 독일 침몰 소식을 무려 속보로 타전할 정도였으니, 이게 참 월드컵사(史) 일대 사건임은 분명한가 보다. BBC 월드컵 메인 페이지는 아직까지도 "독일 탈락"이 메인 뉴스더라. 이 기사의 댓글은 현재 1000개가 넘는데, 다른 월드컵 관련 기사는 댓글 평균 5~60여 개를 넘지 않는 정도다. 그러니 이번 승리는 그야말로 세계에 충격을 가한 준 국위선양급 승리였던 것이다! 비록 16강은 탈락했지만서도. 1승 2패지만서도.

독일 시간 평일 오후 4시에 열렸기 때문에 전반은 보지 못하고 후반전부터 직원들끼리 모니터 하나 켜 놓고 둘러 앉아 봤다

 기적 이후 회사 사무실을 나서자 왠지 세상이 달라 보였다. 어쩜 이렇게 하늘은 또 파란 건지! 어쩜 이렇게 바람은 또 완벽한지! 비록 입고 있던 옷은 실수였지만... 거리에는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늘 붐비던 회사 앞 식당은 몇몇 중국 손님들을 제외하면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독일인들이 별로 외식을 하러 나오고 싶은 기분이 아닌 듯 했다. 집으로 걸어가다 독일 유니폼을 입고 국기를 두른 4인 가족을 마주쳤다. 늘 하듯이 방긋 웃으며 "할로!"를 주고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대뜸 "수드(Süd = South코리아?" 하는 게 아닌가? 내가 너무 신나게 웃고 있었나? 몇 초간 "나인(Nein). 재패니즈!"와 "차이니즈!"를 고민하던 끝에 용감하게 "예스"를 외쳤다. 그러자 그들은 "오호홍" 하는 이상한 웃음 소리와 함께 "왜 그랬어요!" 하는 원망이 담긴 웃음을 건네 주었다. 나는 헤헤 웃었다.

손흥민 골 세레머니(출처 : 한겨레)

 항상 7개 계산대 중 단 2개밖에 열어놓지 않아 물건을 사려면 기본 20분은 줄을 서야 했던 대형 마트도 오늘은 웬일인지 텅텅 비어 있었다. 독일인들이 별로 쇼핑을 하러 나오고 싶은 기분이 아닌 했다. 바로 달려가서 우유와 시리얼을 집어 들고 매대에 올렸다. 늘 하듯 점원과 의례적인 "할로!"를 주고 받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글쎄 이 친구도 대뜸 나를 보고 "수드 코리아?" 하는 게 아닌가? 아니 5개월간 내 국적엔 관심도 없던 사람이 말이다. 그래서 반가움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오호홍" 하는 이상한 웃음 소리와 함께 서운함이 담긴 웃음과 영수증을 건네 주었다. 역시 나는 헤헤 웃을 뿐이었다.

전차 군단이 골키퍼 지휘 아래 섹시 댄스를 추고 있다

 바로 전에 쓴 글에서 독일인들은 축구만 하면 다른 사람이 된다는 글을 썼었는데, 오늘만 놓고 보면 또 항상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조금 정정해야겠다. 축구를 하기 전, 경기 중, 그리고 '승리한' 이후에 돌변하나 보다. 며칠 전 스웨덴에게 승리한 날 저녁은... 어휴, 정말 대단했다. 궁금하신 분은 바로 앞선 글을 슬쩍 한 번 훑어 보시라. 그에 비해 오늘 우리 동네는 유달리 조용했다. 경기 후 밥도, 술도 안 먹고 장도 안 보고 그냥 집으로 들어가 버렸었나 보다. 거의 사람이 눈에 띄지도 않았을 정도였으니... 

 어쨌거나 나로서는 우리나라가 독일을 2:0으로 때려잡으며 사상 첫 조별 예선 탈락 및 조 4위 기록을 안겨주는 모습을 독일 현지에서 보게 되었으니! 이 승리는 독일에 와서 얻은 몇 안되는 행복 중 하나로 영원히 기억에 남게 됐다. 또 몇몇 주민들에게 너네 마을에 수드 코리아니쉬가 분명히 살고 있음을 마침내 알려줄 수 있게 되었으니, 이 또한 이 마을에 와서 얻은 몇 안되는 성취 중 하나로 길이 남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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