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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트롱 Jul 03. 2018

베를린 토박이도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진학하는 나라

한국은 왜 지방 대학들이 기를 못 펼까

*이 시리즈는 여행기가 아니다. 그냥 여기  살면서 내가 느낀 것들, 말 그대로 '단상'들을 정리하고 풀어내려는 목적이다. 일기라고 봐도 되겠다. 여행에 대한 정보는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글 전개상 필요하거나 마음이 내키면 들어갈 것임. 사실 글 '전개'라고 하기도 뭣할 정도로 짧은 글들이 계속되겠지만ㅋㅋ

**내가 살고 있는 지방은 독일 헤센 주의 '기센'이라는 조그만 도시다. 여기서 6개월간 해외 인턴을 하고 있다. 사실 그 옆에 붙은 배드타운같은 마을에 살지만, 여기는 독일 사람들조차도 그 누구도 모르므로 그냥 기센이라고 하자. 내가 사는 곳은 시골 그 자체다. 그래서 주말마다 탈출을 한다.

***글은 하루에 한 개를 쓸 수도, 혹은 그보다 더 많이 쓸 수도 있다. 글 한 편당 하나의 주제만 쓸 것임. 글은 대체로 아주 짧을텐데 간혹 좀 길 수 도 있다.

****정말로 아무 주제나, 순서에 상관 없이 쓸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여행기도 아니고 생활기도 아니다. 그냥 내가 보고 느낀 점을 정리하려는 '감상 일기'다.


'철학자의 길'에서 바라본 하이델베르크. 왼쪽 산 중턱으로 고성이 보인다

 '하이델베르크'라는 지명을 한 번 들어보지 못한 분이 계시는지? 아마도 하이델베르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독일 도시를 선정할 때 최소 다섯 손가락 안에는 들어갈 지역일 것이다. 대충 베를린, 프랑크푸르트, 뮌헨, 도르트문트, 하이델베르크 정도 순서가 아닐까? 이 중 베를린은 수도니까, 그리고 냉전의 시작과 끝을 알린 역사적 도시니까 그렇다 치자. 프랑크푸르트는 유럽의 관문이니까, EU의 경제 수도니까 또 그렇다 치자. 뮌헨이나 도르트문트는 축구를 잘해서 많이들 알게 됐겠지. 그런데 하이델베르크는? 이 도시는 왜 유명한 걸까? 사실 하이델베르크는 독일에서도 아주 작은 소도시에 속한다. 도시 전체 인구는 15만 명밖에 되지 않으며, 동네도 좁아서 산 정상에 올라 내려다보면 도시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 조그만 도시에 전 세계 관광객들이 모여든다. 1년에만 수 백만 명이 찾는다고 한다. 현재의 하이델베르크는 사실상 관광 수입으로 도시 전체가 유지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하이델베르크 시의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는 하이델베르크 성

 하이델베르크가 관광지로 인기를 끄는 첫째 이유는 단연 '하이델베르크 성'일 것이다. 하이델베르크 성은 1225년 요새 형태로 산 중턱에 자리잡은 이후, 여러번의 개보수를 거치다 1600년대 초에 이르러 지금의 모습을 완성했다고 하는 고성(古城)이다. 독일에는 정말 성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하이델베르크 성의 자태는 정말 독보적이다. 다른 성들과는 분명히 다르다. 사암으로 만들어져 붉은 빛이 감도는 이 성은 여기저기가 무너진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 성곽 곳곳에서는 검은 재의 흔적들도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사연이 있다. 하이델베르크라는 도시 자체가 '유럽의 한 가운데'라는 아주 저주받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거대한 전쟁이 있을 때마다 하이델베르크는 극심한 피해를 피할 수 없었다. 성이 완성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발발한 '30년 전쟁(1618~1648)'은 그 시작이었다. 한 가운데 있었던 하이델베르크는 신교와 구교 양쪽 모두에게 공격 받고 점령당하기를 반복했고, 자연히 도시와 함께 성도 피폐해졌다. 이후로도 바로 옆에 강대국인 프랑스가 위치하고 있었던 탓에 수 없는 공격을 받았다. 그러니 성을 개보수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개보수를 할 틈이 없었던 것이다. 18세기 들어 침략이 조금 잠잠해져 성을 조금씩 복원하기 시작하니 이번에는 천재지변이 일어났다. 1764년 낙뢰가 성을 내리찍었고 성은 통째로 불에 탔다. 이후 이 고성은 복원이 시도되는 일 없이 폐허가 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하이델베르크 성은 폐허가 된 덕에 명소가 되었다. 유럽의 여러 예술가들이 산 중턱에 자리 잡은 붉은 색 폐허 고성에 반해버렸기 때문이다. 소문을 들고 관광객들이 몰려 들어오자 도시는 자연히 살아나게 되었다. 그렇게 현재의 '관광 도시' 하이델베르크가 탄생한 것이다.

밤에도 멋지다. 폰 카메라 성능이 후져서 이 정도지...

 하이델베르크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한 가지가 더 있다. '대학 도시', '철학자의 도시'다. 둘은 사실상 같은 이미지다. 오래 전부터 좋은 대학이 있었으니 유명한 철학자들도 많이 머물렀겠지. 역시나 하이델베르크 대학은 두 말 할 것도 없이 매우 우수한 대학으로 인정받고 있다. 가히 독일에서 원탑으로 손 꼽히는 대학이라고 할 만 하다. 이 대학의 설립 연도는 무려 1385년이다. 동 시기 한반도는 고려 우왕(禑王)이 즉위하고 있던 때다. 하이델베르크 대학 설립 3년 뒤인 1388년, 고려 장군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회군을 결정한다. 당연히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며, 유럽 전체로 따져서도 역사가 가장 오래된 대학 중 하나다. 노벨상도 무지하게 쓸어갔다. 이 대학 출신이거나 혹은 이 대학에서 재직했던 교수들 중 무려 55명이 노벨상을 수상했다. 역사도 오래됐고 현재까지 성과도 꾸준히 내고 있는 독일 최고의 명문대다. 모두가 이 대학에 진학하고 싶어한다. 수도 베를린 출신도, 경제 도시 프랑크푸르트 출신도, 부자 도시 뮌헨 출신도, 축구 잘하는 도르트문트 출신도, 모든 독일인들이 출신 지역을 불문하고 이 조그만 시골 도시의 대학생이 되고 싶어하는 것이다.

하이델베르크 대학 본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생각이 났다

 성도 성이지만, 도시의 아름다움도 아름다움이지만, 나는 하이델베르크에서 이 대학에 꽂혔다. 너무 신기하지 않느냔 말이다. 나라 최고 수준의 명문대가 이렇게 조그만 시골 소도시에 위치해 있다니. 정말로 가진 게 고성 하나밖에 없는 동네인데, 이런 동네에서 공부하겠다고 독일 전역에서 우수한 학생들이 모여든다니... 우리로서는 도대체가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유명한 철학자의 (산)길을 걸으면서 그런 생각들을 했다. 왜 우리나라 부산대나 경북대 등 지방 명문대들은 하이델베르크 대학이 되지 못했나. 어째서 과거의 명성과 영광을 지키지 못했나. 물론 지방 국립 명문대들은 여전히 대한민국 상위 한 자리 수% 안에 드는 대학들이다. 하지만 과거 누가 따져도 '최상위권'으로 꼽히던 때에 비하면 그 명성이 예전만 못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원인은 무엇일까? 답은 너무 간단하다. 부산, 경남에 사는 학생들이 부산대를 가느니 조금 더 낮은 레벨의 '인서울' 대학을 가겠다며 서울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대구, 경북에 사는 학생들도 '인서울'을 외치며 서울로 떠나갔다. 수준 높은 학생들을 빼앗기니 자연히 대학의 랭킹도 변동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방 출신 학생들은 왜, 어쩌다가 "닥치고 인서울"만 외치게 됐는가? 서울에 모든 것이 다 있기 때문이다. 물질 풍요의 시대에 간단한 문화 생활 하나 번듯하게 즐기려고 해도 서울과 부산은 간극이 크다.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보고 싶어도, 해당 가수가 이른 바 '전국 투어'를 해주지 않는 한 지방 사람은 절대 실황 공연을 볼 수 없다. 제 2 도시라는 부산만 해도 차이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정도다. 결국 서울 집중 현상이 모든 문제의 근본 원인인 셈이다.


 이에 대해 "아니, 하이델베르크 대학이랑 부산대 경북대 등등을 비교하기에는 서로 레베루 차이가 존나 심하지 않느냐!"고 태클을 걸 수 있다. 그러나 나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이랑 우리 지방 명문대들을 직접 비교하자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 안에서 상황만 대입해 보자는 거다. 우리나라 기준으로 봤을 때 부산대, 경북대는 역사도 깊고 명성도 높았으며 성과도 높은 대학 아니냐. 하이델베르크 대학이나 부산대, 경북대나, 서로 마찬가지로 자국 안에서 역사, 명성, 성과 모두 타 명문 대학에 결코 뒤지지 않는 지방대들이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하이델베르크 대학은 여전히 그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는 반면, 부산대, 경북대는 그렇지 않은 게 현실이지 않냐는 거다. 독일 청년들은 대도시에 살던 이들도 하이델베르크라는 조그만 도시로 과감히 향할 수 있는데, 어째서 그보다 훨씬 더 큰 도시인 부산, 대구에 사는 청년들은 고향을 버리고, 별로 더 우수하지도 않으면서 등록금은 배로 비싼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서울로 향하느냐는 말이다. 결국 모든 것들이 서울에 과도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입법 행정은 동쪽의 수도 베를린, 경제는 서쪽의 대도시 프랑크푸르트, 사법은 남쪽의 소도시 카를스루에, 라는 식으로 힘이 잘 안배 되어 있는 독일은 '모로 가도 베를린만 가면 된다' 따위의 정신이 생길 틈이 없다. 그래서 대도시에 사는 청년들도 자연스럽게 하이델베르크로 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게 안된다. 모로 가도 서울을 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철학자의 길에 비치된 벤치

 어쩌면 서울 집중 문제는 우리가 결코 풀지 못할 난제인 것 같기도 하다. 역사를 돌아보면, 사실 우리 역사에는 엄밀히 말해 '중세'라는 게 없지 않았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잠깐의 난세를 제외하면 우리는 거의 1200년에 가까운 기간을 사실상 중앙집권체제로 보내온 셈이다. 통일신라 200년은 경주, 고려 500년은 개성, 그리고 마침내 유교 조선 500년에 이르러 서울 초집중의 완전무결한 중앙집권체제가 완성이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한반도 주민들은 DNA 깊숙히 '중앙'이 강하게 새겨져 있어서 관성적으로 이를 벗어날 수가 없는 건 아닌가 염려가 되기도 한다. 중앙에 왕이 있으나 각 지방은 고유 '영주'들이 각자 성을 짓고 실질 통치하던 역사를 가진 나라와, 온전히 중앙에서 지방 모두를 통제하며 통치하던 역사를 가진 나라는 국민들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뭔가 달라도 다를 테니까. 


 그래도 뭐가 됐든 '서울 집중이 과하다'는 의견이 공감대를 많이 얻는 시대가 되긴 했다. 15년 전만 해도 '수도 이전' 말 한 마디에 온 몸을 벌벌 떨며 "감히 서울을!!"하고 소리치던 양반들이 10명 중에 7~8명은 됐었는데, 지금 여론조사를 하면 수도 이전 찬성이 절반 가까이는 나오니까. 이전 글에서도 쭉 했던 얘기지만, 서울은 해체될 필요가 있다. 좀 쪼개야 한다. 이래서는 지방에서 단물이 아예 안 나올 때까지 쪽쪽 다 빨아먹을 지경이다. 정치, 경제, 사법, 인프라 모든 걸 가지고서 이제는 사람까지 다 빼가고 있으니 균형을 잡을래야 잡을 수가 있나.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는 우리에게 기적같은 경제 성공을 선물해주긴 했으나, 이제는 너무 과한 지경에 이른 것 같다. 서울을 해체하자. 서울을 쪼개자!




p.s)이제 허구연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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