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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트롱 Jan 28. 2019

그랜드캐니언 사건... 이 나라는 어쩌다 이 지경까지

못되도 너무 못된 국민들


그랜드캐니언(그랜드캐년) / 위키피디아


대한민국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을까. 우리 국민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대표적으로 중국인)의 '국민성'을 논할 '깜'이 되긴 되는 걸까?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그랜드캐니언 사건'에서 오가는 국민들의 논의를 보고 있노라면 나는 끔찍함과 참혹함을 넘어 절망까지 느낀다. 온 나라가 죄 없는 같은 나라 국민 한 사람의 죽음을 바라고 있다. 네가 실수한 일이니 넌 죽어 마땅하다며 죽어가는 이를 힐난하고 저주하고 있다. 이게 도대체 정상적인 국가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인지 모르겠다.


부산 동아대학교 수학과 재학생인 박모(25)군은 지난 해 12월 30일, 미국 그랜드캐니언에서 실족해 중상을 입은 후 지금까지 의식을 잃은 채로 현지 병원에 입원해 있다. 문제는 병원비다. 보험을 들지 않은 이에게는 가혹하리만치 어마무시한 비용을 청구하는 미국 병원은 박군의 치료비로 무려 한화 10억원을 청구했다고 한다. 한국 송환도 간단치 않다. 의식이 없는 상태이므로 치료용 전용기를 이용해야 하는데, 이 때문에 이송비만 2억원이 든다고 한다. 금액이 도무지 감당이 되지 않으니 박군의 가족들이 청와대에 청원을 올렸다. 제발 도와달라고. 그런데 청원이 미처 청와대에 닿기도 전에, 일반 국민들이 벌떼같이 들고 일어났다. 가장 많은 댓글이 "그걸 왜 국가에 요구하느냐"였다. 자기가 실수해서 실족한 걸 왜 국가에게 도움을 청하냐는 것이다.


자식을, 오빠를 살려달라는 평범한 한 가족의 애원을 두고 쏟아지는 댓글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냉담하다. 담담한 형태의 인터넷 기본서체에는 타자의 분노와 증오까지 담겨 있다. 심지어는 '그 따위 일'로 나라에 도움을 구하느냐는 일종의 혐오까지 느껴진다.


아니, 저들이 도대체 뭘 그렇게 잘못했나? 귀한 아들이 저 지경이 됐는데 치료는 커녕, 심지어 데려올 방법조차 없다. 늘상 나가 놀던 아이도 아니고 수학과 교수를 목표로 3년 내내 과탑을 도맡아 하던 친구란다(출처 국제신문). 가족들 심경이 어떨까. 청와대 국민청원 올리고 도움을 호소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과 좌절의 시간을 거쳤을 지 도저히 짐작조차 하지 못 하는 건가? 평상시 월드컵에서 부진한 축구 선수를 대표팀에서 제명시키라느니, 감독을 바꿔달라느니 별 시답잖은 일에 신문고 울려대더니, 사람 목숨 달린 일에는 이리 정색을 하고 달려드는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언론 보도에 따르면 박군의 동생이 청원을 올렸다고 하는데, 어린 마음에 어떤 심경으로 올렸을지 정말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는 건가?


네 실수로 떨어진 걸 왜 국가에 도와달라고 요구하느냔다. 그렇다면 도대체 국가란 뭔가. 국가의 역할은 도대체 뭐냐. 국민 목숨 걸린 일을 국가가 두 눈 뻔히 뜨고 도와주지 못 한다면, 도대체 저 분노한 자들이 생각하는 국가란 도대체 무엇인가.


사건과 관련한 글과 댓글들을 찾아 볼 때마다 정말 소름이 끼칠 정도로 놀랍다. 이 쓰레기들은 "절대 나라가 박군을 도우면 안된다"고 전제하고, 그 이후 나라가 박군을 도우면 안되는 이유를 하나 하나 찾아낸다. 이 과정에서 박군과 그 가족은 이미 신상까지 다 털렸다. 아버지는 IT기업을 운영하고 있고 여동생은 본인 인스타에 구찌 벨트와 스니커즈를 신은 모습을 올린 적이 있댄다. 박군이 한국에서 '무려' 헬스 PT를 받았다는 소식도 접수됐다. 미국에서 사고를 당한 것도 캐나다 유학 1년을 마치고 관광차 그랜드캐니언을 들린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란다. 자, 이제 탄탄한 근거가 만들어졌다. 이 일련의 일들을 돈이 많지 않으면 할 수 있겠느냐는 거다. 심지어 박군 꿈이 교수라는 기사 내용을 보고는 "평범한 집안 자제가 꿈이라도 꿀 수 있는 직업이냐"고 받아치는 지경에 이르렀다. 돈 많은 집안인데 세금으로 왜 도와주냐는, 부자에 대한 증오를 바탕으로 "나라가 도와선 안된다"고 다시 한 번 주장을 강화한다.

이 따위 걸 분석하고 있다. 이게 같은 인간이라고?

댓글들을 보면 심지어 차 팔고 집 팔고 빚까지 다 내봤느냐, 모든 용을 다 써보고 거지가 된 이후에 청원을 올리면 인정해준다는 인간도 있었다. 네이버 베댓이었다. 왜 병원비를 다 내려 하느냐고. 미국 법에 따르면 일단 퇴원하고 분할해서 낼 수 있는 방법도 있니 어쩌니 하며 댓글로 잘난 척 싸지르는 인간도 봤다. 저 가족이 그걸 알면 저러고 있겠냐? 자기 자식 목숨 걸린 마당에? 그런 걸 알고 있으면 지가 봉사하는 마음으로 페북 메시지라도, 연결이 힘들면 소속 학교에 메일로라도 자문을 도와줄 수 있는 거 아닌가? 네이버 댓글에 싸지를 게 아니라.


국민 자체가 썩어있다. 증오와 혐오와 질투에 눈이 멀었다. 솔직히 그거 10억 낸다고 나라 안 망하는 거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엄청난 빚 지는 거도 아니다. (만일 진짜 돈을 많이 버는 집안이라고 한다면)까놓고 저기 세금이 어쩌고 역겨운 댓글 싸지르는 인간들보다 저 집이 세금을 내도 훨씬 많이 냈을 거다. 우리나라 소득세, 많이 벌 수록 진짜 존나 많이 떼 가는 구조니까. 아니, 설령 돈을 많이 버는 집안이라쳐도 12억이 뉘집 개 이름인가? 애초에 사업 하는 집안이 '돈을 많이 벌고 쓴다=현찰이 많다'는 등식부터가 옳은 논리가 아니다. 돈이 10억, 5억 없어도 애 구찌 신발, 벨트 사주고 자식 하나 1년 어학연수 정도는 보낼 수 있다. 코엑스 유학 박람회라도 찾아가봐라. 꽤나 저렴하게 갈 수 있는 방법 차고 넘친다. 니들이 그렇게 혐오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부자는 아닐 확률이 훨씬 높다는 거다.


한 두 명, 소수가 이 난리를 피우는 거면 이해할 수 있다. 진보와 보수의 가치 대립 같은 느낌으로 5대 5로 치열하게 치고 받아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건 인터넷 돌아가는 꼴을 보면 거의 99대 1 수준이다. 국민 100명 중 99명이 부디 저 어린 학생이 돌아오지 못하고 객사하길 기도하고 있는 꼴이다. 그래서 내가 아득하게 절망감을 느끼는 거다. 이건 정상이 아니다. 나라 전체가, 나라에 속한 국민 전체가 지독하리만치 비정하고 못 됐다는 소리다. 이 나라 국민들 어딘가에 심각하게 문제가 있다는 거다. 도대체 어디에서, 어떤 부분에서부터 이렇게 비뚤어지게 된 걸까?

청와대 청원 게시판... 참담하다

이런 인간들이 언젠가 광화문에 모여 "이게 나라냐!"를 외쳤다는 게 참 우습다. 그딴 거 묻기 전에 국민들, 스스로부터 돌아보자. 나라가 이래서 우리가 힘든 게 아니라, 우리가 국민이라서 나라가 이 모양이 된 거다. 이런 국민이 나라를 가득 채우고 있으니 나라가 나라가 아니게 되는 거다. 다음에 저렇게 불의의 사고로 인해 나라에 애걸복걸 빌게 되는 건 분명히 우리들, 자랑스런 대한민국 국민 중 한 사람일 거란 걸 알았으면 좋겠다. 이건 100%다. 우리 중에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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