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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군 May 29. 2018

뒷마당에서 한 아기 돌잔치

미루고 미루다가 올리는 포스트

작년 5월, 나는 만삭의 몸으로 약대 2학년 2학기 마지막 수업을 듣고있었다. 아기의 예정일은 작년의 "어머니 날"이었다. (미국엔 "어버이날"이 없고 "어머니의 날"과 "아버지의 날"이 따로 있다. 어머니의 날은 매 해 5월 둘째주 일요일이다.) 어머니의 날이 낀 주가 2학년 수업의 마지막 주였다. 마지막 주에는 구두 시험, 필기 시험 등 온갖 기말고사가 치뤄지는 주였다. 그래서 시험 날짜마다 친구들이 "오늘 애기 나오면 어떻게 해?"하고 장난 섞인 걱정을 해주곤 했었다.

5월 내내 교수님마저도 아침마다 내가 교실에 들어서면 "어? 오늘도 학교 왔구나! 혹시 새벽에 너한테 애기 낳으러 간다고 전화나 문자가 오진 않을까 하고 은근 기다렸었는데!"하고 매일같이 조금 더 신경써서 아침인사를 해주시곤 하셨다.


여차저차 정신 없이 학기의 모든 과정을 무사히 끝내고, 금요일이 지나고 토요일이 되어서야 이제 곧 아기를 본다는 게 조금씩 피부로 느껴지기 시작했었다. 이왕 무사히 학기를 마친 거, 예정일에 딱 맞춰서 일요일에 아기가 짠 하고 태어나면 얼마나 좋을까 기대도 했었다. (나도 그렇고 동생도 그렇고 예정일에 딱 맞춰서 태어났다고 엄마가 그러셨었다.)

많이 걸으면 아기가 빨리 나온다는 말에 예정일 하루 전인 토요일 저녁, 남편과 시어머니를 한 팔에 한 분씩 끼고, 집에서 30-40분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는 월마트까지 걸어서 산책 갔다가 오기도 했었다. 막상 일요일이 되었지만 아무 일도 없이 평안하고 조용하게 지나갔다. 내가 예정일에 딱 나왔던 것처럼 아기도 예정일에 맞춰서 태어날 거라고 은근 기대 했었는데, 약간 배신감 마저 들었다. 엄마는 아기는 다 때가 되면 알아서 나온다고 그러셨었다. 아빠는 왠지 느낌상으로 아기가 3일 안에는 나올 것 같다고 그러셨었다.


월요일도 별 일 없이 계속 임신한 상태로 (?) 지나갔고, 밤에 잠들기 전 남편이랑 황새가 아기공장에서 나온 아기를 물어다 주는 영화 한편을 보고 잤다.

아무 생각 없이 봤던 영화 Storks

그런데 황새가 아기를 물어다주는 영화를 보고 자서 그랬나? 그 다음날인 화요일 아침 9시경부터 변비 걸렸을때 처럼 아랫배가 기분 나쁘게 (?) 아프더니, 같은 날 오후 2시가 조금 넘어 아기가 드디어 나왔다. 병원에 도착한게 12시 쯤, 아기 낳는 침대에 누워서 2시간정도 진통 하다가 금방 아기가 나왔다.

예정일을 2일 넘겨서 태어난 작고 귀여운 아기였다. 아니 사실 아기가 그렇게 작지는 않았다. 다들 내 작은 배를 보고 아기가 작을거라고 예상했었는데, 막상 나온 아기는 3.8 kg의 무거운 아기였다. 산부인과 의사선생님마저도 아기가 이렇게 클줄 몰랐다고 그러셨다.

(미국에선, 특히 주에서 제공하는 보험으로는 초음파를 임신기간 내내 2-3번밖에 안찍어준다. 아기 태어나기 직전에 한번 더 찍는다고 그러더니 결국 안찍고, 아기가 나오고 나서야 "어? 큰 아기였네? 그럼 이만." 이러는 정도? 특히 젊은 저위험군 산모들일경우 이런 일이 비일비재 하다.)


어쨌든, 학교 친구들은 아기가 나오면서부터 벌써 엄마 생각 많이 해줬나보다고 말하곤 한다. 시험들이 몽땅 있는 주에 착하게 엄마 뱃속에 얌전히 있다가 모든게 끝나고 나서야 짠 하고 태어났다고.




이 착한 아기와 착한 생일(?)은 올해에도 착했다. 로테이션 두개 하고서 1주일간 방학이 있었는데, 이 1주 사이에 아기의 생일이 딱 들어있었던 것. 날짜도 좋겠다 크지도 작지도 않게 돌잔치를 해주려고 마음 먹고 페이스북으로 가족, 친척, 그리고 학교 친구들 몇을 초대 했다.

애기 별명이 바다물고기 이다. (s로 끝나는 이름 뒤에 오는 's에는 s가 안붙어야 한다는거 안다 ...)


원래는 레스토랑을 빌려서 할까도 생각했었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남편과 상의 끝에 결국 집 뒷마당에서 돌잔치를 하기로 했다. 아기가 멕시칸 & 한국인 혼혈이니 음식도 한국 음식 반, 멕시코 음식 반으로 준비 하기로 했다. 멀리 있는 도시 유명한 떡집에서 떡이랑 김밥도 맞추고, 타코를 즉석에서 요리 해주는 요리사도 고용하고 그랬다.


막상 일은 내가 벌렸지만 고생한 건 가족들이었다. 남편과 시아버지께선 4월부터 일찌감치 뒷마당 청소에 여념이 없었고, 돌잔치 전 날 시어머니께선 손님들에게 제공할 예쁜 젤리 jello 디저트를 50개나 만드셨다. 또 친동생에게는 아기의 지난 1년을 모은 비디오를 만들어달라 부탁 해뒀었고, 멀리 사는 또 다른 동생은 아기 돌잔치 참석하러 멀리서 운전해서 오기도 했었다.


돌잔치 당일이 되고, 저녁 느즈막히 돌잔치가 시작되었다. 진작부터 아기 한복을 주문해서 받아놓은 상태였었고 (한국 웹사이트 통해서 주문 했다), 남편과 나도 한복을 입어볼까 말은 주고받았었지만 생각보다 한복 값이 너무 비싸서 그냥 평상복들 입고 하기로 했었다.

나는 돌잔치 시작 직전에, 예전에 시아버지가 사주셨던 멕시코 드레스를 입기로 급 결심 하고선 그렇게 혼혈 아기는 한복, 한국 엄마는 멕시칸 드레스를 입고 돌잔치가 시작 되었다.

잔칫날 현관문 앞에다 걸어놓은 알림말. "벨이 작동 안하니 그냥 들어오세요!"


잔치 준비 하는데에도 반 친구중에서 친한 친구가 약혼남이랑 일찌감치 와서 잔치 분위기로 꾸미는 데에 도움을 많이 줬다. 직접 컵케익을 만들어서 갖다준 친구. 약대 다니기 전, 아이들 생일 케익 예쁘게 잘 만들어서 장사를 했을 정도로 손재주가 좋은 친구이다.

또 이 친구는 내가 임신 사실을 반에서 제일 먼저 알린 친구이기도 하다. 소식을 듣고 감격해서 나를 꽉 안아주며 울던 친구.

생일파티 준비 할때도 나보다 더 신나서 나에게 이것저것 아이디어를 보내준 친구이다.


돌잔치의 하이라이트, 돌잡이 시간에는 어찌저찌 내가 사회(?)를 봤었다. 손님으로 온 친구들 중 돌잡이 문화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서, 사람들 다 모아놓고 설명을 주절주절 하다보니 사회 아닌 사회를 보게 된 것.

당일 급조한 돌잡이 용품으로는 학교에서 쓰던 청진기, 학교 홍보용으로 받은 왕 볼펜, 현금 20불, 집에서 돌아다니던 마우스, 동생이 가지고 온 장난감 마이크, 주방에서 집어온 뒤집개 하나 이렇게 여섯개를 놓았다.

내가 하도 준비를 안해서 돌잡이 못하나 했었는데, 같은 반 한국인 언니의 격려로 여차저차 진행 된 돌잡이.

청진기가 사진에서처럼 한쪽 끝에 가 있었지만 돌잡이 시작하고 난 직후에 친정어머니께서 청진기를 한가운데로 슬쩍 옮기셔서 사람들이 모두 모인 뒷마당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었다.


고민고민 하던 아기가 결국 집은 것은...!


사실 고민 할 것도 없다는 듯이 아기는 곧장 마이크를 집었다. 못내 아쉬워 한 가족들의 성화에 마이크를 한쪽 구석으로 치워놓고 2차 돌잡이를 해보았지만, 아기는 또 그 구석으로 기어가 마이크를 다시 집어들었다.

아기가 커서 나중에 한류 스타가 되려나? ㅋㅋ


돌잡이가 지나고, 케익을 자를 시간이 왔다. 원래 위에 말한 친구에게 부탁 했었는데, 친구가 몇년동안 케익을 안만들어서 조금 자신이 없다고 그랬었다. 그래서 그냥 시어머니가 아시는 분께 부탁을 드렸다.

남편 손 내 손, 남편 손이 더 고와보이는것은 기분 탓인가?


밤이 깊어지면서 가족들, 친구들 손님들이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고 돌잔치도 마무리가 되었다.

아기도 여러 사람들 한꺼번에 만나며 많이 피곤했는지 곧잘 잠들었다. (평소보다 많이 늦게 잤지만 그 다음날 평소랑 똑같이 일어난건 안비밀.)


돌잔치 해줘봤자 아기는 나중에 커서 기억도 못한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이야기로 전해줄 거리가 많이 생겨서 좋다. 멕시코 전통으로는 3살 생일을 크게 친다는데, 그땐 또 어떻게 생일파티를 해줘야 하나? ㅋㅋ



+ 모든 사진들은 동생이 찍어서 보내준 것. 돌잔치 내내 사진사를 자처 하며 사진과 동영상을 많이 남겨준 동생에게 다시한번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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