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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군 Jul 07. 2018

동네 약국에서 있었던 일들

(멘탈이 탈탈 털려) 그날 그날 못썼으니 이제 와 몰아 쓰는 이야기들

원래 로테이션 마지막 날 정리 겸 쓴 "가라앉거나 살아남거나"글에 몰아 쓰려던 내용인데, 쓰다보니 내용이 너무 길어져서 그냥 따로 글을 하나 더 팠다.



바쁘기도 무진장 바쁜 약국이었고 일의 흐름도 굉장히 빠른 편이어서 로테이션 끝마치고 집에 오면 아기 재우면서 같이 잠드는 날이 허다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브런치 글도 덜 쓰고 그랬는데, 오늘 맘먹고 돌아보는 형식으로 이 로테이션에서 있었던 일들을 정리 해보았다.



조금 어색했던 카운셀링 (약 복용법 설명)


1. 발기부전제를 찾아가는 환자분께 언제, 몇알을 복용하고 부작용은 뭐고 등등 설명하는데 환자분 등 뒤에 숨어계셨던 (?) 환자분 부인이 얼굴을 스윽 내미시던 상황. (나 혼자 괜히 어색했던 것 같지만 최대한 티 안내고 카운셀링은 잘 끝냈던 것 같다.)


2. 또 다른 상황은 경구 피임약을 찾아가는 청소년 환자분께 카운셀링 할 때 였다. 청소년들은 여드름 치료 목적으로 피부과 의사가 경구 피임약을 추천 해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지만, 혹시 모르니 "만약 이 약 처음 드신지 7일 안에 성관계를 맺게 된다면 콘돔이나 살정제 spermicide 같은 제 2의 피임 방법을 꼭 사용하셔야 해요"라고 알려드렸다. 청소년 환자분과 옆에 있던 환자의 엄마분 께서 얼굴을 스윽 마주보고 웃으시더니 나를 보고 둘이 같이 고개를 끄덕끄덕이셨다. (이것도 나 혼자 어색했던 상황일까나?)


3. 마지막 하나는 장을 비워내는 (?) 약에 대한 카운셀링이었다. 40-50대 환자분 이후로 5-10년에 한번씩 내시경 검사 하는 경우가 매우 흔한데 (로테이션 내내 평균 하루에 이 약을 5-8번 이상 카운셀링 했던 것 같다), 내시경 검사 전날 장을 말끔히 비워내도록 유도하는 약을 사용한다. 내시경 검사를 2-3주 정도 앞두고 환자들이 미리 약을 찾아가는데, 검사 전 날 약을 언제 어떻게 복용해야 하는지 설명 해드리는 것이다.

이 카운셀링도 다른 여느 카운셀링처럼 잘 흘러가고 있었는데 ... 마지막에는 환자분께 "설사를 유도하는 약이에요" 라고 직접적으로 얘기 안하고 "이 약 드시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잘 아시죠?" 하고 유도하는 질문으로 끝 맺고는 했는데, 이번 환자분은 왠지 다른 환자분들보다 리액션이 강하셨다. 눈이 커지고 장난스럽게 (?)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시는게 꼭 영화에서 나오는 일반화 된 전형적인 "웃긴" 모습이어서 나도 모르게 실소가 나왔다. 그걸 놓치지 않고 이 환자분 또 코멘트를 날리시는 것이었다. (되게 친근하게 "얘 봐라, (내가 설사할거 생각하고) 웃네? 못됐네 못됐어" 뭐 이런 뉘앙스였다.)

환자분 떠나시기 직전에 "아까 프로페셔널하게 못한거 죄송해요"하고 사과 드렸고 환자분께선 "아니에요 괜찮아요! 착하시네요, God bless you!"이렇게 훈훈하게 끝나긴 했지만 그래도 이마에서 겨드랑이에서 진땀이 마구 난 그런 카운셀링이었다.



나를 힘들게 한 손님(환자)들

이건 자세히 써놔봤자 나중에 보고 기분만 안좋아질 것 같아서 그냥 짧게 쓰고 넘겨야겠다. (... 라고 했지만 결국 길게 쓰게 될걸)


1. (의사가 다른 도시에 있는 약국으로 처방전을 보낸) C2 마약성 진통제를 왜 여기서 자기가 살수 없냐고 약국에서 몇시간 울던 환자분. 상황을 듣고 처방전을 쓴 의사에게 내가 전화해서 우리 약국으로 처방전을 다시 써달라고 요청 하려 했으나 의사가 몇시간째 연락이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 (금요일 오후였으니 ...)

(중독 위험성이 높은 약물들을 "controlled substance"로 분류해서 C2, C3, C4, C5 등 카데고리를 매기는데, C2 약물들은 그중에서도 중독성이 제일 높아 의사가 한 약국으로 처방전을 보내면 다른 약국에서 절대 그 처방전을 조제 dispense 할 수가 없게 캘리포니아 법이 되어있다.)

내 앞에서 우는 환자분때문에 마음이 흔들려서였을까 (응 아니야), 아님 내 스트레스가 치솓을때로 치솓았기 때문이었을까 (ㅇㅇ). 이때부터였을까요 ... 나도 약국에서 몇번 울기 시작한 것이.


2. 아침에 약국에 가보니 내 책상 위에 "C2 약 기다리는 환자분 [환자분 이름, medical record number]. 약이 준비 다 되면 연락 드릴 것."이라는 노트가 있었다.

찾아보니 환자분 이름으로 C2약 하나가 준비 되어있었다. 그래서 환자분 집으로 전화 했지만 안받으시길래 약이 준비 되었노라고 메세지를 남겼다. (여기서 메세지 남기는게 조금 애매한데, 환자의 이름을 말 할수는 있으나 무슨 약이 준비 되었는지 정확한 약 이름을 남길 순 없다. 조금 두루뭉실하게 말해야 하는 상황.)

몇시간 뒤, 오후 3시 쯤 그 환자분이 와서 약을 픽업해가는데, 화가 나신 모양이었다. 환자분을 도와드리던 약국 직원이 나보고 환자분과 직접 말해보라는 것이었다. 알고보니 이 환자분은 두 종류의 C2약을 한번에 드시는 환자분 이었던 것. 두개 약을 예상하신 상황에서 막상 약국에 와보니 약이 준비가 하나밖에 안되어있어서 화가 나신 것이었다.

(중독 위험성 때문에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C2 약이 호흡곤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C2약을 한번에 두개 이상 쓰는 경우는 흔치 않다.)

(비록 나만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환자분께 죄송하다고 연신 말씀 드렸다. (아니 노트 남긴 사람이 C2약 두개 라고 강조 해서 남겨줬다면 참 좋았을텐데! 왜 안그랬을까? 응?) 환자분은 "죄송하면 다냐"며 나를 자꾸 다그쳤다. "죄송하다고 해서 내 약이 생기는것도 아니잖아요? 어떻게 할거에요?"

오늘 내가 집에 가기 전에 그 다른 약 하나도 책임지고 준비되게 하겠노라고 다짐 시켜 드리고 나서야 환자분은 오후 4시쯤 집에 돌아가셨다.

내가 집에 가는 시간은 오후 6시(라고 하지만 6시에 약국을 떠난 적은 단 하루도 없다). 그리고 오후 6시 되기 조금 직전에 그 약이 준비 되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6시 10분쯤 환자분께 다시 전화 해 약이 준비 되었노라고 말씀 드렸더니 환자분이 연신 고맙다 하시며 전화를 서로 기분 좋게 끊었다.


3. 어떤 환자분은 어머니를 위한 약을 2주에 한번씩 찾아가시는데, 오실 때 마다 약국에서 하루 종일 있어야 한다며 처음부터 끝까지 불만 투성이였다. 이 환자분이 특출나게 불만쟁이이긴 했지만 (말하는 방식이나 표정 등이 진.짜.로 상대 하기 싫은 환자였다) 그럼에도 이해가 되는게, 진짜 말그대로 한나절을 약국에서 보내시는 걸 내 두 눈으로 목격했기 때문이다. 우째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아래 사항들의 콤비네이션 때문이었다.

환자분 어머니는 심한 감염/감염 후유증을 앓고 계셨는데, 여기에 쓰는 항생제는 사실 우리 약국에서도 알약으로 흔하게 나가는 약이었다. 하지만 이 왠일인지 이 환자분께서는 알약이 아닌 물약 형태의 약을 드셔야 했던 것. (아마 알약을 못 삼키시지 않나 싶다.)

약을 8주간 드셔야 한다. 그런데 이 물약은 만들어놓고 나면 유통기한이 2주이다. 그래서 2주에 한번씩 와서약을 찾아셔야 했다.

이 날(금요일)도 환자분이 이 약을 찾으러 오셨는데, 왠지 모르겠는데 의사가 전날(목요일) 이 처방전을 취소 했다. 게다가 이 의사는 금요일에 일을 안한다.

여차저차 의사의 오피스에서 일하는 다른 간호사에게 물어 어찌된 상황인지 알아내고, 또 취소 된 처방전이 사실은 취소 된 것이 아니라 그대로 조제 해도 괜찮다는 허락을 얻어 냈건만 ...

이 물약의 경우, 조제 하는데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을 관리하는 약국 (inpatient pharmacy)에서 만들었다면 금방이었겠지만, 내가 일하는 외진 환자 약국 (outpatient pharmacy)에서 조제하기엔 시간도 인력도 많이 드는 약이었다.

아무튼 조금은 비합리적인 상황속에서 이 약이 결국 조제 되어서 환자분 손에 들리긴 했으나, 찾아가는 순간까지 환자분은 화가 많이 나신 상태였다.


4. 이건 진짜 짧게 써야지. 양극성 장애 때문에 lithium 약을 먹고 있는 환자분 이야기. 처방전에 남은 리필이 없어 약을 못 드리고 의사에게 연락해서 처방전을 다시 받던가 해야한다고 하니, 갑자기 협박조로(?) 말투를 바꾸시며 "이 약 안주면 나 그냥 가게에서 파는 lithium 내맘대로 사먹을까요 그럼?" (??????) 이라고 하던 환자분...



나를 울린 의사

이건 의사 한명의 이야기이다.


환자의 보험으로 커버가 안되는 약들은 의사가 처방전을 써준다고 해도 보험회사에서 한번에 커버 안하고 환자에게 비싼 비용을 청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케이스도 그런 듯 했다. 의사가 환자에게 이 약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 "예외 코드"를 주기도 하는데, 이 "예외 코드"가 받아들여지면 환자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그 약을 찾아갈 수 있다.


비싼 약 하나를 처방 한 의사가 처방전 예외 코드에 "보험으로 커버 되는 다른 약을 못찾아서" 라고 써놨다. 의사에게 전화를 했다. 안받았다. 그래서 호출기에 번호를 남겨놓고 다른 할일들을 하고 있었는데, 의사가 전화를 걸어왔다.

보험으로 커버 되는 다른 약이 있다고 알려주니 "아 그래? 뭔데?" 막 이런다. (영어를 굳이 반말로 번역하는 이유는 이 의사 말투가 반말로 들렸기 때문이다.)

답을 당장 모르니 "음 ... 잠시만요 ... 지금 찾아서 알려드릴게요."하고서 보험으로 커버 되는 약 리스트를 찾아보고 있는데, 의사가 나 들으라고 대놓고 말하는건지 "야, 약국에서 문제 있다고 호출 해놓고선 자기들이 답도 모른다. ㅋㅋ"하고 키득대는 소리가 들린다. 기분이 팍 상했다 (1).


보험으로 커버 되는 약을 찾아서 알려주니 "그럼 그걸로 바꾸던지~" 라고 그랬다. 어떤 환자인지, 자기가 왜 이 약을 썼는지 찾아보지도 않고 성의 없이 책임감 없이 전화만 빨리 끊으려고 하는거 같아서 기분이 팍 상했다 (2).


여차저차 약을 바꾸고, 환자에게도 약과 가격에 변화가 있다고 알려드리려 전화 했다.

근데 이번엔 환자가 노발대발 하는것이 아닌가.

보험으로 커버 되는 약들이 환자와는 맞지 않아서 겨우 찾은 약이 이 의사가 처방했던 원래의 약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이 약을 몇년째 써 오고 있는 경우라고 한다. (이 경우면 이사가 예외 코드에 "다른 약들을 시도해봤지만 환자와 맞지 않음. 이 약을 몇년째 쓰고 있음."이라고 썼어야 하는건데!!!!)


결국 의사한테, 환자한테 양쪽에서 물어뜯긴 뒤 내 멘탈은 그날 밤이 되도록 회복되지 않았다.

집에 운전하고 오는 길 내내 의사가 수화기 너머로 키득대고 비아냥 대던 것이 생각나 운전도 어떻게 하고 왔는지 기억이 안날 정도였다. 한가지 기억나는 것이 있다면 이 의사가 그냥 죽도록 싫었고, 집에 오는길에 한두번 정도 마음속 깊이 이 의사가 많이 아프거나 다치면 좋겠다고까지 생각한 적이 있었지만 (진짜 이 로테이션은 나의 멘탈을 많이도 갉아먹었구나 ... ㅋㅋㅋ) 아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 이 생각을 취소(?) 한적이 있다는 정도?


집에 와서 남편에게 이 위의 일을 얘기 해주는데, 말하면서 나도 모르게 자꾸 눈물이 났다. 눈물 뿐만이 아니라 서러워서 꺽꺽 대면서 남편 앞에서 울었다.


근데 그 다음주 였나? (위의 일은 내가 로테이션 하던 4주차에 있던 일이었다)

어떤 환자분을 도와드리다가 우연히 이 의사의 근황(?)을 알게 되었다. 이 의사가 다쳐서 병원에 일하러 못나오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 의사는 그 이후에도 병원에 일하러 못 나와서 내 마지막 날 까지도 다른 의사가 커버 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 제목부분 이미지 출처는 여기

+ 약국 용어들은 한국에서 배운적이 없고 다 미국 와서 배웠기 때문에 한국어로 약국 일기 쓸 때 뭐라고 써야할지 난감할 때가 많다. 오늘도 난 구글로 용어들 검색하면서 이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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