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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군 Mar 10. 2018

상대적으로 잘 보이고 있는 중

로테이션1, 아홉 번째 날 (03-01-2018)

많은 약대들이 로테이션 시작하는 날짜와 끝나는 날짜를 서로 조율한다고 들었다. 여러 분야의 약국으로 학생들을 보낼 때, 한 약국에서 다른 학교 출신의 여러 인턴들이 같이 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약사들의 혼란을 덜어주고자 학교들끼리 일정을 맞추는 거라고 한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로테이션에도 다른 학교에서 온 친구가 있다. 네바다 주에 있는 학교에서 온 친구인데, 우리 둘 다 P3이긴 하지만 4년제인 우리 학교와 달리 이 학교는 3년제이기 때문에 이 친구는 올해 5월에 졸업을 한다. 나에게는 지금 로테이션이 첫 번째 로테이션이지만 이 친구에게는 벌써 5-6 번째 로테이션이라고 한다.

우리 둘 다 붙임성이 좋은 성격이라 그런지 첫날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를 같이 하다 보면서 우리 둘 사이에 공통점이 많다는 걸 알았다. 우리 둘 다 P3이고, 91년생이며, 다른 또래에 비해 조금 이른 나이에 엄마가 되었다. 이 친구는 벌써 두 아이의 엄마라고 한다. 첫날 나에게 말해주기를, 지금까지 로테이션해 오면서 만난 모든 약대 학생들 중 엄마인 사람은 내가 처음이라며 원래도 환한 얼굴이 더 환해졌었다.


로테이션 장소마다 출근 시간 퇴근 시간이 조금 더 엄격한 곳도 있고 비교적 자유로운 곳도 있다고 학교에서 교수님들이 누누이 말해주셨었다 (시간이 자유로운 곳 일지라도 최대한 프로페셔널하게 행동하라는 조언과 함께). 지금 로테이션의 출퇴근 시간은 나에게 정말 딱 좋은데, 가장 큰 이유는 학교 다닐 때 아침마다 또 오후마다 40분 - 1시간 정도 운전해야 했던 거에 비해 이 로테이션 장소는 (차가 막혀도) 딱 15분 거리이기 때문이다. 또, 많은 프로젝트들이 대부분 자기 주도적으로 진행이 되는 터라 하루에 양심껏 일만 한다면 아침 8시에 오든 9시에 오든, 오후 4시에 가든 5시에 가든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이 로테이션의 특성상 미팅 스케줄이 하루에 몇 번을 거쳐 있기도 하지만, 이 미팅 스케줄만 겹치지 않는다면 말 그대로 "집에서 일해도 되는" 아주 꿀 로테이션이다. 그래도 내 성격 상 일을 꼼꼼히(라고 말은 하지만 사실은 "천천히"가 더 맞는 표현 같다)하고 또 집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할 일을 잘 못하는 터라 개인적으로는 매일 직접 출근하는 걸 선호하는 편이다.


새 해가 되면서 나 스스로 다짐 한 몇 가지의 항목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정해진 시간을 어기지 않기. 어디 나갈 때에 늦지 않기"이다. 아기가 태어난 뒤로 어디 나갈 일 있을 때마다 자주 늦곤 했는데, 나갈 준비 하면서 자는 아기를 살펴보거나 깨 있는 아기 울지 않게 얼굴을 자꾸 비춰주느라 그랬다. 그래서 또 한 가지 내가 다짐한 것은 무슨 일이 있든 간에 "아기를 변명거리로 써먹지 않기"였다. 아기가 태어난 뒤로 내가 늦는다고 해도 그건 더 일찍 일어나서 준비하지 않은 내 잘못이지, 엄마가 어디 가는 줄 알고 울랑 말랑 하는 아기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와서--로테이션 2주 차가 되면서 하와이에 출장 가 계셨던 약사님이 돌아오셨다. 이번 주도 어느새 거의 끝자락에 와 있는데, 지난 2주 동안 나랑 같이 인턴 하는 이 친구는 조금 많이 늦게 출근했다 (9:30-10시 정도에 도착하곤 했다). 약사님 그거에 대해 별말씀 없으셨지만 오늘 아침에는 이 친구가 조금 더 늦을 것 같다고 보낸 문자를 보신 뒤 조금 심기가 불편하셨던 것 같다. 그런데 나도 마음이 영 편하지 않은 것이 이 친구가 늦는 이유가 딸들 때문이라서다. 내가 내 할 일들을 맘 푹 놓고 잘할 수 있게 집에서 아기 봐주시면서 서포트해주시는 시어머니께 참 감사함과 동시에 딸들 때문 에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자꾸 늦으면서 벌써부터 미운 눈칫밥 먹기 시작한 이 친구에 대한 안타까움이 내내 맘속에서 가시지 않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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