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걷기 시작한 아기

태어난 지 422일 만에 일어난 일!

by 장군

새로운 병원 로테이션이 지난주에 시작 되었는데, 집에서 15분 거리도 채 되지 않는 또 다른 작은 동네 병원이다. 아기가 태어난 병원이기도 하다.


어느 점심시간에 병원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간호사 두명이 들어와서 얼핏 보니 그 중 한 간호사 얼굴이 익숙하다. 애기 낳고 나서 자궁 축소를 도와주려고 (?) 자궁에 잔뜩 넣어둔 솜과 거즈 등을 빼 준 간호사였다. 러시아 억양이 섞인 영어가 기억에 남았는데, 동료 간호사와 얘기 하는 목소리를 들으니 확실히 그 간호사였단 걸 알았다.


같은 날 점심을 다 먹고 다시 약국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지금 아기의 소아과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나를 알아보시는 듯 못알아보시는 것 같아 아기의 엄마고 약대 다니면서 로테이션 하는중이라고 말씀 드렸다. 뭔가 괜히 어색어색 했던 순간이었다.


다른 날, 약국 테크니션을 도와 여러 병동에 있는 약 수납 기계 (??? Pyxis machine 이라고 흔히 불리는데 한국에서 이런게 있는지도 모르겠고, 있으면 뭐라고 불리는지 모르겠다...) 들에 약을 보충해 넣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분만실 근처에서 또 익숙한 얼굴의 간호사가 지나가는걸 보았다. 작년에 내가 아기 낳는 동안 분만실에서 힘을 언제 줘라 언제 빼라 직접 옆에서 코치 해준 간호사였다.

(남편이 아직도 기억하는 그 날의 대화들 중 하나는 바로 이 간호사와 나의 대화였다. 계속 힘을 줘도 아기가 안나오고 힘만 빠지는 것 같아 내가 "5분만 쉬고 하면 안될까요?" 물어봤고 당연히 간호사는 "안돼요! 계속 힘 줘야해요!" 이랬다는 이야기.)


약국에서도 약사님들과 테크니션 분들과 이런 저런 얘기 하다가 "사실 내가 이 병원에서 작년에 아기를 낳았다" 하고 말을 했고, 그 이후로 날마다 사람들은 "오늘은 아기 어때?" 하고 물어봤다.

몇일 전만 해도 누가 "아기 지금 몇개월이랬지? 아직 걷나?" 물어보면 "걷기는 하는데 아직 어른들 손가락을 꼭 잡고 함께 걸어야 해. 아직 혼자서는 못걷더라구" 하고 대답하곤 했는데.

그저께부로 아기가 갑자기(!!!) 혼자서 걷기 시작했다.




이 날도 병원 로테이션 끝나고 와서 집에서 저녁 후딱 먹고, (시어머니가 다른 가족들 설거지는 벌써 해놓은 상태이셔서 내가 먹은 그릇만) 설거지를 후다닥 하고 있는 중이었다.

거실 한쪽에서 다른 가족들이 갑자기 소리 지르며 웃길래 뭔일인가 하고서 봤더니 아기가 갑자기 혼자서 걷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었는데 (주방에서 집어간 물병? 갖고 놀던 인형?) 그 물건을 잡은채로 그대로 걷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기가 걷기 시작하고 그 주변을 시어머니와 다른 가족들이 보우하며 (?) 내가 있는 주방쪽으로 왔다.


눈 앞에서 아기가 어른들 도움 없이 혼자서 뒤뚱뒤뚱 걷는게 너무 신기했다.

"뭐야 그냥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막 혼자서 걷는거야 이제?"

그렇게 고대 해왔던 순간이었고, 언젠가는 당연히 일어날 일이란걸 알았지만서도 막상 눈앞에서 바로 아기가 걸어다니니 그저 헛웃음만 막 나왔다.


시어머니께서도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이다! 이제 다들 잠은 다 잔거야! 24시간 내내 아기를 잘 지켜봐야해"라고 말씀하시며 즐거워 하셨다.


자기 스스로 막 걷기 시작한 아기는 금새 사고뭉치가 되었다. 스스로 못 걷는동안 제일 하고 싶었던 일이 아마 계단 난간에 발을 걸치는 것이었나 싶을정도로, 아기는 잽싸게 집안에 있는 계단을 기어 올라가서 기어코 계단 난간 사이에 있는 구멍으로 다리를 집어 넣는 것이었다.

어른들이 다들 깜짝 놀래서 "안돼!!!!!!" 소리지르고 아기를 들어 올리니 아기는 빼액 세상 억울한 것 마냥 울었다.

그리고 이 날 하루동안 아기가 잠들 때까지 똑같은 상황이 세번 반복 되었다.


Screen Shot 2018-07-13 at 11.40.48 PM.png


지금 아기는 기는 것도 잘 하고, 어른들 손 잡고 걷거나 뛰는 것도 잘 하고, 또 혼자서 걷는것도 나름 잘 하고 있다. 점점 다리에 힘이 더 생기는게 보이는데 앞으로 또 무슨 새로운 기술을 보여주려나 궁금하다.

소아과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9월에 정기 검진 가기 전까지 단어 4개를 말 해야 한다는데? 지금으로썬 0개 단어를 말하지만 그때 쯤 가서 또 엄마와 다른 가족들을 어떻게 놀래켜줄지 기대가 된다.

(지금 그래도 말귀는 참 잘 알아 듣는다. "이쁜짓!" 하면 손가락을 볼에 갖다 대고, 몸부림 치면서 밖에 나가고 싶어하는 아기에게 "신발 신자!" 하면 얌전해져서는 엄마 무릎에 앉아 신발 신겨줄때까지 기다리기도 한다. "아빠 어딨어?" 하면 아빠쪽을 쳐다보기도 하는 신통방통한 아기.)



+ 제목 부분 배경 사진에 있는 일러스트는 여기에서 가져왔다. "잘했어요 짝짝짝" 책에 나오는 고우리 그림작가님의 작품.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감기약 대소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