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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군 Jul 14. 2018

작고 조용한 병원의 약국

로테이션4, 처음 2주간 이야기

네번째 로테이션은 동네 병원에 있는 inpatient 약국이다.

이 병원은 작은 병원이라 약국이 하나밖에 없다 (이번 네 번째 로테이션 병원은 inpatient 약국 1개, outpatient 약국 0개; 지난번 세번째 로테이션을 했던 병원은 inpatient 최소 1개, outpatient 4개 였다).

전체 침대는 240개 정도 된다고 하지만 보통 130-150명 정도의 환자들이 동시에 입원해 있는 정도인, 크지는 않은 그런 병원이다.


처음 1주간은 약국 테크니션 분들 위주로 따라다니는 스케쥴이었다.

아침 6시에 가기도 하고, 아침 7시에 가기도 해서 8시간 (+ 점심시간 30분) 꼬박 채우고 집에는 3-4시 즈음에 왔다.

병원에서 새로운 오더가 나오면 약국에서 약들을 찾아다가 조제 하고, 필요한 곳 까지 배달하는 일.

병원 곳곳에 있는 Pyxis machine 에 하루 두번 부족한 약, 벌써 나간 약 등을 채워넣는 일.

약국 여기저기에 있는 약들 유통기한을 확인하고, 유통기한 지난 약들은 따로 치워두는 일.

또 이런 업무 외에도 다른 자잘한 일들을 했다.

첫날 오리엔테이션 하면서 멸균상태 약들을 어떻게 조제 해야하는지 배움 (동영상, 미니 퀴즈)

손가락 테스트 함, 통과 함!


멸균 상태 약 조제 하는 일은 마지막주에 하게 되는데, 그 전에 "손가락 테스트 finger test"를 통과해야 한다. 옷을 아래 사진처럼 입고나서, 멸균 장갑을 올바르게 착용해야 하는데, 이때 다른데에서 박테리아나 다른 미생물이 장갑에 묻어나오면 안된다.

멸균 장갑까지 끼고 나서, 장갑을 낀 채로 손가락들을 실험 튜브 안에 있는 박테리아 배양액에 닿게 한다. 2-3일 후, 배양액에서 박테리아가 자라나면 "손가락 테스트" 탈락.




두번째 주는 매일 중환자실을 담당 하는 약사님 한분과 함께 하루를 보내는 주였다. 월/화/수요일 내내 같은 약사님 한분이랑 같이 일했고, 목요일에 다른 약사님, 금요일에 또 다른 약사님과 함께 했다.

매일매일이 조금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아래의 일들을 한다.

새로운 랩 결과들 나왔으면 필요한 것들 환자별로 정리 하고 적기 -- 전혈구 수 (complete blood count), 미생물 배양 & 민감성 (culture and sensitivity), 전해질 (chem 7), 등등

vancomycin 레벨에 따라 투여량 (dose), 투여 간격 (interval) 등을 바꿀지 그대로 유지할지, 아니면 약 자체를 중단 할지 결정하기

환자의 신장 기능에 따라 다른 약들 투여량, 투여간격 조정 하기


그리고 월/수/금요일에는 중환자실 담당 의사 한분과 함께 라운딩(rounding)을 한다. 중환자실 복도에서 환자들 병실 하나하나를 다니며 의사, 간호사, 약사, 스피치 테라피스트, 영양사, 엑스레이 테크니션 등 여러 의료 분야의 팀원들이 모여 각각의 환자에 대해 5-7분정도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중환자실에는 9-11명 정도의 환자가 있는데 rounding을 한번 하면 1-1.5시간이 금방 가버린다.

이것이 진짜 신세계 경험이었다. 운이 좋게도 이번주에 라운딩을 담당하는 의사 선생님은 다양한 스태프들에게 이것저것 필요한 질문을 하시며 능동적으로 문제 해결하는데에 도움을 주시는 의사 선생님이셨다. 항상 각각의 환자에 대해 그날의 목표가 뭔지 (혈당량을 정상 수치로 낮추기, 산소 호흡기 레벨을 현재 %에서 얼마로 낮추기 등) 물어보셨는데 이런 질문에 대답을 하며 다른 스태프 멤버들도 더 적극적으로 환자분들을 관리 하게 되는 것 같았다.


월요일 라운딩 동안 약사님과 의사 선생님 두분의 의견이 갈리는 일이 있었는데, 당뇨병 진단을 받은 적이 없는 환자에 대한 일이었다. 환자의 A1c 레벨이 11%이 넘은 높은 수치였다. (정상 수치는 6.5-7% 미만. 8-9% 정도만 되어도 높은 편에 속한다.) 의사 선생님은 A1c 레벨이 내려올때까지 인슐린을 줘야 한다고 그러셨고, 약사님은 거기에 다른 약들도 더하면 효과가 더 좋을거라고 그러셨다. 그런데 의사 선생님 말씀은 약을 더할수록 이 환자가 정해진대로 약을 쓰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질테니 그냥 한가지 약으로만 A1c 수치를 낮추는게 낫지 않겠냐 하시는 것이었다.

결국 의사 선생님은 나에게 "수요일에 이 상황에 대해 어떻게 하는게 좋을지 우리에게 가르쳐주세요" 라고 하시며 숙제를 주셨다.


수요일 라운딩 중간 즈음, 한 환자의 병실 앞에서 이 의사선생님이 나에게 물어보셨다. "월요일에 말한 사안에 대한 답이 무엇인가요?"

올해 초 American Diabetes Association 에서 새로이 발간한 가이드라인에 있는 구절을 알려 드렸다.

두 분 다 맞았어요!

A1c 수치가 10% 이상인 경우, 인슐린을 주되 다른 약을 더해도 되고 안더해도 된다고 그랬다.


금요일 라운딩을 준비 하는 중, 약사님이 갑자기 "fomepizole"이라는 약에 대한 정보를 찾아달라고 그러셨다. Lexi Comp를 이용해서 약에 대한 기본 정보를 출력 해 드렸는데 약사님이 이것보라며 작은 유리병에 담긴 약을 보여주셨다. 뭔가 젤리 처럼 생긴 약이었다. 이 약은 구하기 힘든 약이지만 새로 들어온 환자가 이 약을 필요로 해서 다른 병원에서 빌려 왔는데, 약이 젤리처럼 되어있다는 것이었다. (보통 작은 유리병에 담긴 약은 액체상태인 경우가 많은데 ...) 약사님은 나에게 약 제조 회사에 전화 해서 이게 정상인 경우인지, 또 비정상이라면 우리가 이 약을 약 제조 회사에 반납하고 새로운 약을 받을수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하셨다.

약 회사에 전화를 해보니 이 질문을 흔하게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젤리처럼 변한 약을 그냥 손으로 쥐고 있어도 액화 된다는 것이 그들의 설명. 약사님께 말씀 드리고선 (mannitol 의 온도를 유지하는 데에 쓰이는) 따뜻한 캐비넷에 이 작은 유리병을 5분간 넣어두었다. 5분 후 다시 확인해보니 약이 완전히 액체로 변해 있었다 (만세!). 약이 젤리로 변하고 다시 액화 되어도 약의 성분에는 변화가 없으며, 안전성과 효능에 지장이 없다고 한다.

그제서야 나는 이 약이 어디서 쓰이는 약인가 하고서 봤더니, 부동액을 먹은 환자에게 투여 되면서 부동액이 몸에 해로운 메탄올 등으로 변하는 걸 막아주는 약이라고 한다. 지금 중환자실에 들어와 있는 한 환자가 지난 밤 약물로 자살 시도를 했다가 (다행히) 실패 했는데 그 환자를 위한 약이었다.


중환자실 실습은 오늘로서 끝나고, 다음주는 약국 안에서 약사님들의 스케쥴을 따라가며 배운다.

(아마 그 다음주에 다시 중환자실 실습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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