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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군 Aug 06. 2018

3주치 것을 몰아서 쓰는 일기

로테이션4: 3, 4, 5주차 이야기

매일매일 쓰고싶은 이야기들이 가득했는데, 병원에서 너무 열심히 이것저것 경험 하고 와서 그런가 저녁에 아기 놀아주고 밤에 아기 재울때 같이 잠들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지난 3주정도 계속 그래와서 블로그 쓸 이야기들이 단단히 밀려있다. (드든)


이번 주말에도 뭔가 모르게 자꾸 바빴는데, 그래서 빨래도 주말 내내 미뤄놨다가 일요일 밤/새벽인 이제서야 세탁기와 건조기를 돌리고 있다. (일주일치 모아둔 아기 빨래와 내 빨래를 해야하는데, 시간상으로는 "월요일" 새벽 12:45분이다. 글 빨리 쓰고, 빨래 다 끝내고나면 몇시간 눈 붙이고서 다시 병원에 나가야한다!)


지난 3주간 병원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요점만 살려서 간추려 적어보려고 한다. 처음 2주동안의 기록은 지난 포스트에 얼추 적어놓았다 (1주차 - 테크니션분들 따라다니며 병원 전체의 약 관리하기, 2주차 - 중환자실 실습). 이 포스트에는 3, 4, 그리고 5주차 이야기들을 요약해 볼 참이다.




3주차: 아침 7시에 출근하는 약사님들 돕기


작은 병원 약국이라고 하지만 하루에 약사님들이 6-7분씩은 꼭 나오신다. 약국 전체의 보스 격 되는 director of pharmacy 약사님을 포함하여 새벽 6시 (중환자실 담당), 아침 7시 & 8시 (약국 안에서 일하는 쉬프트) 에 출근하시는 약사님들도 있고, 또 11-12시쯤에 오시는 약사님도 한분 있고 (응급실 담당), 1시에 오시는 약사님 한분 (정신병동 담당), 그리고 오후 7-8시에 오시는 약사님도 있다 (밤새 일하는 "graveyard" 쉬프트). Full time 으로 일하는 약사님들, part time, per diem 약사님들 등 15-20여분이 계시는데 돌아가면서 위에서 언급된 쉬프트5-6개들을 번갈아가며 하신다.

이번 로테이션 3주차에는 이 중에서도 아침 7시 출근하는 약사님들을 도와드리는 일을 했다.


매일 반복되는 일들은 아래와 같다.

아침에 와서 code box 체크하기 (병원 안에서 심정지 환자가 생기면 "code"라고 한다. Code blue는 성인 환자에게 심정지가 온 경우, code white은 어린이 환자에게 심정지가 온 경우.)

입원한 환자 개개인의 그날의 신장 기능에 따라 약 dosage 조정 하기 (병원 안에서 쓰는 protocol이 있어서 그대로 따라가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좀 아니다 싶은 경우가 있으면 약사님께 직접 말씀 드려야 한다. 한번 리뷰 하기 시작하면 1시간이 금방 간다. 하루에 5-6환자 정도 나오는 것 같다.)

Anticoagulant 쓰는 환자들 개개인 리뷰하기. (Dosage가 적당한지, blood cell count들이 갑자기 떨어지거나 나빠지고 있지는 않은지 모니터링 해야한다. 각 환자를 맡은 간호사에게 전화해서 환자 개개인의 active bleeding / signs and symptoms of bleeding 여부를 확인 한다. Warfarin을 처음 시작한 환자가 있다면 직접 찾아가 상담을 해주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에 추가가 되는 것은, "IV to PO" 프로토콜을 담당하는 약사님이 하루에 한분씩 계시는데, 만약 7시에 출근하신 약사님이 열심히 일하시는 약사님이라면 (그래서 이 약사님이 그날 IV to PO 담당이시라면) 이 일도 학생이 도와드리게 된다.

intravenous (IV) 로 주는 약들을 혹시 per oral (PO) 약들로 바꿀수 있는지 살펴보는 것. 이것도 병원의 프로토콜을 따르는 거라 점점 익숙해지면서 더 빨리 할수 있게 된다.


3주차 처음 하루는 위에 나열한 꼭 해야하는 일만 하는데에도 하루가 꼬박 다 갔다. 그런데 이틀차 정도 되니 그새 여유가 생겨서 (?) 약국 디렉터 약사님께 프로젝트를 하나 달라고 요청했다. 이날 이후로 (5주차가 다 간 지금까지도) 나는 다른 학생들은 안하는 프로젝트를 1개 추가로 하고 있다.

heparin drip 관련하여 MUE (Meducation usage evaluation) 자료 모으는 중. 궁극적으로 보고서를 써야 하는데, 자료만 모아서 드리면 약사님이 쓰실련지 아니면 내가 이번 로테이션 끝나기 전에 보고서를 직접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3주차 수요일, 아침 8시쯤 code blue가 중환자실에서 터졌다. Code blue가 있을때 약사님 한분이 가게 되시는데, 학생은 한명만 갈 수 있다. 지금 이 병원에서 로테이션 하는 학생들이 4명이 있는데, 이 날 중환자실 담당하는 학생이 약사님과 같이 갔었다. 그런데 15분만에 코드가 종료 되었다. 환자는 무사했다.


그런데 코드에 갔던 약사님과 학생이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코드가 또 터졌다. 아까 코드와 같은 환자였다. 아까 가셨던 약사님과 함께 이번엔 내가 가게 되었다.

할머니 환자분이셨는데, 내가 갔을때에는 거의 1시간 이상에 걸쳐 하게 된 긴 코드였다. 보통 1시간 안으로 환자분의 심장이 뛰지 않으면 의사들이 죽음을 선언(?) 하는데, 이 환자분은 1시간 이상 미약하나마 자꾸 왔다갔다 하셨던 것이다. 병실 안에 있던 간호사들이 번갈아가면서 심폐소생술을 하는데 (흉부 압박), 코드가 길어지니 다들 조금씩 힘들어 하는게 보였다.

그때 약사님이 나보고 흉부 압박을 해보겠느냐고 물어보셨다.

조금 당황한 얼굴을 보셨는지 부담스러우면 안해도 된다고 그러셨지만, 다들 돌아가면서 힘쓰고 있는데 아무것도 안하고 서 있기만 하는 것보다야 나도 뭐라도 하는게 낫겠다 싶어서 그러겠다고 하고서 내 순서가 되길 기다렸다.

약사님께서 내가 흉부 압박을 할거라고 말 하자 다른 간호사들이 "약사 학생! 이 가운 입어요!" "이 장갑도 껴요!" 하면서 뭘 하나씩 걸쳐주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나는 환자분 침대 옆에 있는 발 디딤대 위에 올라가 환자분의 흉부를 압박 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심폐소생술 하는 트레이닝을 받았고, 자격증도 있는 나였지만 그래도 마네킹에 대고 연습 할때랑 이건 차원이 달랐다. (조금 더 수월했던 것 같다. 마네킹에 할때는 너무 뻑뻑해서 손목이 아팠는데.)

그런데 1시간 넘게 진행 되던 코드를 리드 하던 의사가 슬슬 죽음 선언을 할 마음을 먹고 있는 것 같았다. 다른 스태프 멤버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와중에 나는 계속 흉부 압박을 하고 있었다. 옆에 있던 키 크고 건장한 남자 간호사의 차례가 되어서 흉부 압박 하는 걸 넘겨주고선 나는 힘이 빠져 뒤로 물러났다.

남자 간호사가 환자의 흉부 압박을 시작한지 얼마 안되어 곧 의사는 그 환자의 죽음을 선언 했다.


나중에 약국에 돌아오니 어떤 테크니션이 그랬다. 이 환자분은 died of broken heart 라고. 이 할머니 환자분, 남편분과 사별 하신 지 막 한달 정도 되신 상태라고 그랬다.




4주차 & 5주차: 중환자실, 그리고 응급실


4주차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그리고 금요일은 2주차와 마찬가지로 중환자실 실습 기간이었다.

5주차 목요일과 금요일도 중환자실을 돌았다.

새로운 랩 결과들 나왔으면 필요한 것들 환자별로 정리 하고 적기 -- 전혈구 수 (complete blood count), 미생물 배양 & 민감성 (culture and sensitivity), 전해질 (chem 7), 등등

vancomycin 레벨에 따라 투여량 (dose), 투여 간격 (interval) 등을 바꿀지 그대로 유지할지, 아니면 약 자체를 중단 할지 결정하기

환자의 신장 기능에 따라 다른 약들 투여량, 투여간격 조정 하기

Total parenteral nutrition (TPN, 완전비경구 영양법?) 시작하는 환자, 계속 이어가는 환자에 대해 약사님과 이야기 하기. 무슨 영양소를 얼마나 늘리고, 줄이고, 유지할지, 또 왜 그러는지 이야기 하는 것.

새로운 의사 선생님들과 라운딩 하기. 의료 분야 간 여러 전문인들이 함께 일하는 시간이 참 재밌다.


4주차 목요일, 5주차 월요일, 화요일엔 응급실에 내려갔다.

보통 약사님이 그때그때 의사들이나 간호사들이 올린 약 오더를 처리하는 걸 옆에서 구경하는 경우가 많다.

응급실에 있던 환자를 병원에 입원 시키기로 결정이 나면, 그 환자에게로 가서 집에서 먹는 약 목록을 받아온다 (medication reconciliation). 어떤 약을 얼마나 자주 얼마만큼 먹는지, 약들이나 음식에 알러지는 없는지, 또 약들은 어느 동네 약국에서 픽업 하는지 등의 정보를 최대한 자세히 알아온다. 환자와 환자 가족들에게 직접 이야기 하는 과정이라 한번 하고나면 에너지 소모가 많은 일이지만, 그래도 응급실에 있는동안 제일 기억에 남은 일은 바로 이 medication reconciliation 이었다.

응급실에서 자주 보는 code로는 (code blue, code white말고도 다른 코드들이 많이 있다) code sepsis (환자의 심박수, 체온, 호흡 주기 등이 불안정해지는 상태. 많은 이유가 있을수 있지만 박테리아 감염 등으로 몸의 면역력이 급격히 떨어져 이상 상태가 생긴 것으로 판단 될 때 코드 셉시스라고 한다), code stroke (뇌졸중 환자가 이송 되어 오는 중이거나, 혹은 원래 병원에 있던 환자가 뇌졸중을 겪게 되는 경우) 등이 있다.

또 다른 이상한(?) 코드는 code grey인데, (보통) 환자의 언성이 매우 높아져서 병원 스태프들을 긴장감에 몰아넣는 경우 발현되는 코드이다. 응급실 쉬프트 하는 3일간 code grey가 대여섯번 터졌었다. (그중 세번은 60대 후반 할머니 환자분 ... 매우 의외였다)




5주차 수요일: 만만한 스케쥴, 하지만 제일 큰 경험 한 날


위에서 말한대로 다른 학생들은 안하는 프로젝트 하나를 나는 자청해서 하게 되었는데, 그걸 배려해서 디렉터 약사님께서 스케쥴에 "프로젝트 하는 날"을 넣어주셨었다. 시간상으로는 8시에 오라고 하셨는데, 그래서 그날 8시에 출근하는 약사님께 시킬거 있으면 나에게 시키라고 말씀 드린 상태였다. 8시 약사님 쉬프트에는 보통 다른 쉬프트에 비해 학생들에게 시킬 일이 많이 없지만 그래도 이 날 8시 쉬프트에 오신 약사님은 이것저것 자청해서 열심히 하시는 약사님이셨고, 이 날 위에서 언급한 IV to PO 담당이셨다. 그래서 약사님께서는 내가 그것만 조금 도와주면 될것 같다고 하시며, 그 외의 시간에는 내 프로젝트 하는데에 집중 해도 좋다고 그러셨다.


그러다가 응급실에서 code stroke이 터졌다. (병원 안에서 코드가 새로 나올때마다 병원 전체로 방송이 된다.) 응급실 담당하시는 약사님께선 아직 안 오신 상태였고, 8시 쉬프트 약사님이 응급실에서 생기는 코드에 가게끔 되어있었다.

응급실에 있는동안 code stroke이 여러번 있었지만, 이미 너무 늦은 상태라 약사님들이 할수 있는 게 없었다. 뇌졸중이 처음 발생한 시간으로부터 3-4시간 안에 환자가 병원에 와야 (뇌졸중때문에 머리 안에 피가 고이지는 않는지 확인하려) CT 검사를 한 후  tPA약을 주고 하는건데, 3-4시간 골든타임을 놓치면 tPA 약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날, 응급실 쉬프트도 아니었지만, 응급실 쉬프트 하는 날에도 못 봤던 tPA 약이 쓰이는 걸 눈 앞에서 보게 되었다. 나도 운이 좋았고 (눈앞에서 비싼 tPA가 쓰이는 걸 보게 될 줄이야!), 또 환자분도 운이 좋았다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았으니).

약국에 돌아와서 약사님과 뇌졸중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하고 (뇌졸중 이후 어떤 약들을 환자가 먹기 시작해야하는지 등), 할일 조금 하고 점심을 먹었다.


점심 먹고나서 또 할일을 하고 있는데, 이번엔 code blue가 터졌다. 옆에 앉아있던 3학년 약대 학생이 자기가 가도 되겠냐고 물어봤고, 약사님과 이 학생이 같이 약국을 나섰다. 그런데 얼마 안되어 코드가 취소 되었다는 방송이 나왔다. 둘은 금방 돌아왔다.


그러다가 얼마 안되어 코드가 또 터졌다. 다시 그 학생이 가려나 했는데, 학생이 안보였다. 약사님은 약국을 나서려던 참이셨고 그와중에 나보고 같이 가려면 가자고 그러셨다.


흔하지 않은 경우였는데, 수술실에서 (!) 터진 코드였다. 수술실 안에 처음 들어와보는 거였고, 또 수술실에서 일어나는 코드는 생전 처음 보는 거였다. 수술을 시작하기도 전에 터진 코드라고 한다. 수술 자체는 어려운 수술이 아니라고 했다. (신장 투석을 위해 하는 fistula 수술인데, 비교적 간단한 minor procedure 축에 속하는 수술이라고 한다.)

이 환자는 심장에 pace maker 가 있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심장이 뛰는것 같기도 하면서 뛰지 않는 그런 상황이었다. (의사들의 말에 따르면 ECHO를 통해서 볼때, fibriliation 은 있지만 심장이 힘차게 뛰지는 않는, 그런 상황이 1시간 가까이 계속되고 있었다.)

한시간 가까이 코드가 진행되고 있었고, 의사는 이 환자를 살릴 수 없다고 판단이 되었는지 가족들을 불러오겠다고 그랬다. 그런데 막상 가족들이 들어오자 의사는 선뜻 죽음 선언을 할수 없었던 모양이다. 가족들도 스태프들이 포기하지 않길 바라고 있었다. 그래서 코드는 계속 연기 되었다.


결국 2시간을 훌쩍 넘기고 나서야, 다른 의사 선생님 한분이 오셔서 코드를 리드 하던 의사 선생님께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셨다. 환자의 병력, 현재 코드 상황 등으로 미루어봤을때 mortality 가 over 100% 라는 것. 이미 죽은 환자나 다름 없다는 이야기였다. 의사 선생님 두 분이 얘기를 하시고 결국 원래 리드하시던 의사선생님이 환자의 죽음을 선언 하셨다.


집에 오는 길에도, 집에 와서도, 밤에 자려고 침대에 누워서도 울부짖던 환자의 가족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고 그들의 외침이 귀에 자꾸 들렸다.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히스패닉 가족들이었는데, 그중 환자의 딸이 자꾸 외친 말이 생각났다.

"Papacito, ¡no me dejes! (아빠, 날 두고 가지 마세요!)"




빨래 건조기가 진작 다 돌고서 멈춰있다. 빨래 빨리 개고서 자러 가야겠다.

제목부분에 후다닥 넣은 이미지는 구글에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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