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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군 Aug 18. 2018

작은 병원 로테이션, 마지막 주

프로젝트도 끝나고 로테이션도 끝이 났다!

원래 이 병원에 다시 안오려고 그랬었었다.

약대 3-4학년동안 하는 일곱개의 6주짜리 로테이션에 비해 (Advanced Pharmacy Practice Experience, 줄여서 APPE 라고 부른다), 약대 2학년에서 3학년 올라가는 여름방학 동안에는 4주짜리 짧은 로테이션이 하나 있는데 (Introductory Pharmacy Practice Experiences, 줄여서 IPPE), 사실 작년에 이 병원에서 4주동안 로테이션을 했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약대 3학년에서 4학년으로 넘어가는 여름에 다시 온 이 병원은 작년보다도 훨씬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약국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할 수 있는 정말 좋은 로테이션이었다.

이 병원에 다시 안오려고 했던 이유는, 그래도 이 병원은 한번 거쳐 갔던 병원이니 다른 더 큰 병원에 가면 더 많이 배울 수 있지 않나 하는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테이션 할 병원들 지망 순위를 매겨서 학교에 낼 때, 큰 병원들 1-2개를 먼저 쓰고 그 다음에 이 병원을 3위 정도에 썼었다.

로테이션 할 병원들 목록이 확정되어 나왔을때, 1/2위에 썼던 다른 병원들 중 하나가 되었었고, "이게 내 운명인가보군 흠흠!"하면서 기대치를 마구 올리고 있었는데,

이게 웬 걸. 이번 로테이션이 시작되기 2주 전 이던가? 로테이션 자리를 확정 해주었었던 병원에서 갑자기 연락이 와서는 사실 로테이션 자리가 overbooked 되었다고, 예를 들어 2명이 들어갈 자리에 3-4명을 넣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허무하게 로테이션이 취소가 되었다.

학교에서 로테이션 관련 일을 하는 스태프 멤버랑 그 이후 2-3일간 메일을 주고 받으며 다시 어느 로테이션 병원에 갈수 있는지 옵션들을 살펴보았고, 여러 옵션들 중 작년에 로테이션 했던 이 병원의 이름이 눈에 띄어 결국 다시 이 병원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었다.




이 병원 로테이션 첫 날, 매니저 약사님이 친히 오리엔테이션을 해 주셨는데 그 와중에 지나가는 말로 "우리 병원에서 올해 MUE(medication usage evaluation)을 하나도 못했어. 혹시 너희들이 도와줄수 있으면 좋을텐데"라고 하셨었었다.


로테이션 시작한지 한 2-3주쯤 되었을때, 슬슬 일 분량에 익숙해지고 효율성도 높아가질 때 즈음, 매니저 약사님께 MUE프로젝트 도와드리고 싶다고 말씀 드렸다. 사실 그렇게 말씀 드릴때까지 MUE가 뭔지 잘 몰랐지만, 여기저기서 자주 들어온 단어였고 이번기회에 뭔지 배워보고싶다고 그렇게 말씀 드렸더니 좋아하시며 당장 프로젝트 주제를 주셨다.


MUE는 한가지 약이나 한가지 질환을 정해서 약이 병원 프로토콜이나 질환 가이드라인에 맞춰서 적절한 때에 적절한 환자에게 제대로 사용 되어지는지, 또 모니터링은 제대로 되고 있는지 등 자료를 수집하고 결론을 내는 프로젝트이다.

이번 병원에서 난 heparin (IV) 에 대한 MUE를 하게 되었다. 기간은 2018년의 첫 사분기 (1월부터 3월까지).

주제가 주어진 그 날 어떤 점들을 주의깊게 살피고 데이터를 모야야 하는지 criteria를 만들어야했다.

여차저차 이것들이 finalized 된 criteria였다

일단 약사님이 병원 안에서 heparin 약이 쓰인 모든 환자 케이스들을 뽑아주셨고, 이중에서 중복되는 환자들을 걸러내야했다.

또 heparin 이 SQ로 주어졌는지, IV로 주어졌는지에 따라 SQ는 빼고 IV 케이스들만 포함 시켰다.

추리고 추리다보니 (A4용지와 크기가 비슷한) letter 용지에 30장 가까이 빼곡하게 프린트 된 300-350명의 환자 목록 중에서 결국 딱 40명의 환자들이 추려졌다.


40명의 환자들에 대한 데이터를 하나하나 병원 시스템에서 찾아가며 저 위에 있는 criteria에 맞게 찾아내는 게 주요 임무였다. 매일 약사님들 따라다니며 병원 일을 도왔지만 쉬는시간이나 남는시간이 있으면 이 프로젝트에 필요한 데이터 수집을 했다. 꾸준히 열심히 한 결과 생각보다 데이터 수집이 빨리 끝났다.

(약사님이 처음에 프로젝트 토픽 주시며 1월달 환자들 목록만 다 봐도 괜찮다고, 만약 내가 로테이션 기간동안 다 못끝내면 다음 학생들 시키면 되니 서두를 것 없이 내 속도에 맞게 하라고 그러셨었는데. 나름 약사님들 하루하루의 일을 도와드리는거에 당연히 우선순위를 두고, 이 프로젝트는 시간 날때만 조금씩 했던건데 운이 좋게도 (?) 주어진 날짜 안에 3개월치 데이터 수집을 모두 할수 있었다.)


먼저 이런식으로 환자 개개인의 raw 데이터를 정리해서 모으고, 그다음에 criteria 차트에 interpret 하는 형식으로 final 데이터를 모았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1-2 페이지 남짓의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는데, 나는 내가 할수 있는 만큼 하고서 로테이션이 끝났지만 아마 내가 제출한 것 이후에도 약사님들 두분이서 (매니저 약사님과 또 다른 약사님 한분) 최종판으로 수정을 하신다고 그랬다. 그러고 나서 이 MUE 결과는 8월 말에 있을 병원 P&T 미팅에서 발표 될 거라고 그러셨다. (내가 다음 로테이션에 있을 기간이라, 내가 직접 못오는게 아쉽다고 그러셨다.)


글씨가 넘 작아서 안보이지~ 일부러 작게 캡쳐했어요

보고서 작성을 위해서 매니저 약사님이 로테이션 날짜 하루를 "프로젝트" 날짜로 할애해 주셨었다. 그런데 로테이션 시간이 하루에 8시간인데, 8시간 내내 걸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MUE 자료 수집이랑 보고서 작성 다 끝내고 그 날 나와 같이 스케쥴이 묶여있는 (내가 shadow 해야하는) 약사님께 돌아갔는데, 마침 새로운 heparin 오더가 딱 들어와서 약사님이 그 오더 처리를 어떻게 하시는지 눈 앞에서 직접 볼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MUE하면서 heparin 모니터링의 이론과 "what's supposed to be done"을 빠삭하게 익히고, 약사님이 직접 heparin 오더 처리 하시는것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실제는 어떤지, 또 "why we do what we are supposed to do"를 실감나게 배울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마지막 주에는 병원에서 정해준 주제를 토대로 20분짜리 발표를 하나 해야했다.

보통 처방전 있어야만 살수 있는 약을 주제로 주는데, 로테이션 하는 학생들 4명중 나만 특이하게 처방전 없이 살수 있는 약(over-the-counter 약)을 주제로 주셨다.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신건 아니고 그냥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본다.)


"Nozin" 이라는, 알코올이 주 성분인 sanitizer가 주제였다


그런데 이 날 스케쥴에 "발표" 만 적혀있고 어떤 약사님을 쉐도우 하라는게 안적혀있어서, 매니저 약사님께 응급실 약사님을 쉐도우 해도 괜찮겠냐고 여쭤봤고 허락을 받았다.

어차피 발표 하는 시간이 오후 2시쯤이라 12시쯤 시작하는 응급실 쉬프트가 제일 만만했다 (?).


이 로테이션 기간동안 응급실 담당 약사님을 쉐도우 하는 날이 (이 마지막 발표날 포함) 총 4번이었는데, 처음 2번은 같은 약사님이셨고 세번째와 네번째 날은 각각 다른 약사님이셨다.

이 네 번째 약사님은 full time으로 일하시는 약사님이 아니셔서 처음 두 약사님보다 응급실에서의 자잘한 사항에 대해 덜 익숙하신 것 같았다.


다른 여느 날의 응급실 쉬프트처럼 나의 주 임무는 새로 들어온 환자분들의 입원 전 무슨 약들을 드셔왔는지, 얼마나 자주 하루에 몇알씩 드셨는지 등을 체크하는 것 이었다.

새로 들어온 환자분이 몇 분 계셔서, 그들의 의료 기록을 체크하고 환자분들을 직접 대면하러 각 환자분들의 응급실 침대로 갔다.


한 환자분께서는 복통을 호소하시며 응급실에 오신 환자분이셨는데, 보니까 대장암 치료를 받고 계시는 중이었고 지금은 엄청난 고통과 열을 증상으로 갖고 계셨었다. 하지만 의사 오더에 따라 아무것도 드시거나 마실수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이 환자분 침대로 갔을 때 환자분은 옆으로 누워계셨는데, 마치 태아의 모습처럼 한껏 웅크린 채 아파서 움직이지 못하고 계셨었다.

그런데 목이 마르다고 간호사에게 얘기를 해둔 상태였는지, 내가 침대 곁에 도착한지 얼마 안되어 간호사가 플라스틱 컵에 물을 가져왔다. 그리고 막대기에 작은 스펀지가 달린 이상한 물건(?)도 같이 가지고 왔는데, 의사의 오더때문에 아무것도 먹거나 마실수 없는 환자분이시기 때문에 물을 드실때도 이 스펀지에 적셔서 드셔야 한다고 그랬다.

그런데 환자분이 누워있는 침대와 물컵을 놓을수 있는 counter top 이 너무 멀었다. 그래서 옆에 있는 보호자용 의자를 침대에 한껏 가까이 옮겨드리고 그 위에 컵을 놓아드렸다. 환자분은 고통에 잘 움직이거나 말하지 못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고맙다고 연신 말씀 하셨고, 약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에도 너무 아파서 말을 잘 못하겠다며 자꾸 나에게 미안하다고 그러셨다. (환자분은 50대 중반이셨고 나는 20대 중/후반인데, 나를 "ma'am"이라고 높여 불러주시며 고통이 있는 와중에도 너무 인상적으로 친절하고 예의 있게 대해 주셨다.)


환자분과의 이야기를 마치고, 다른 환자분들의 약에 대한 정보도 여기저기서 얻어온 뒤에 다시 약국으로 돌아가서 준비 해온 Nozin 약에 대한 발표를 했고, 다시 응급실로 내려와 이것저것 자잘한 일들을 했다.

금새 배가 고파졌고, 약사님과 점심을 같이 먹게 되었다.

점심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알고보니 이 약사님 정말 대단하신 분이셨다. 여기저기 여러 약국 환경에서 full time / part time 으로 여러 포지션으로 일하고 계신 것 ... 개인 소유 약국 운영 포함, 병원 파트타임 등 여러 분야에서 경험이 정말 많으신 약사님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겸손하신 약사님이셨다.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다시 약국에 잠깐 들렀다가 응급실로 나가려던 참이었는데, 안내 방송이 울려퍼졌다.

"code blue, code blue, ICU room 286"


ICU (intensive care unit) 이면 중환자실인데, 중환자실 담당 약사님이 퇴근하신 지금 중환자실에서 일어나는 코드 블루(심정지가 온 환자들 심폐소생술 하는 응급 코드)는 응급실 담당 약사님이 가시는거라고 그러셨다. 내가 쉐도우 하는 약사님의 몫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코드 블루 키트가 담긴 구급 상자를 가지고 중환자실로 올라갔다.


환자의 가족/친구분들이 이미 많이 방문중이셨던 모양이다. 코드블루가 터지고 많은 가족/친구분들 눈에 눈물이 맺혀있었다. 서로 어깨를 감싸고 얼굴을 가리고 울고 있는 가족/친구들 앞에서 최대한 담담한척 해야했다. 코드 블루를 진행하는 의사의 오더에 따라 약사님은 약을 준비 해 환자분 침대 곁에 있는 간호사들에게 긴급히 전달 하셨고, 학생으로서 이 광경을 지켜볼수 있는 건 엄청난 특권임에 동시에 중압감이 느껴지는 짐이기도 했다. 환자분의 몸이 너무 acidic 해서 심장에 무리가 간 상태라고 했다.


15-20여분 뒤, 간신히 환자분의 심장이 안정을 되찾았고, 어떤 환자였는지 기록을 남기기 위해 중환자실 간호사 데스크에 가서 환자의 스티커를 받아왔다.

이름이 너무 익숙했다.

아침에 나에게 "ma'am"이라고 부르며 자신의 고통 속에서도 친절을 잃지 않은 그 환자분이셨다.


의사는 조용히 이 환자분의 심장 상태가 매우 불안정한 상태라 금방이라도 다시 코드블루가 터질수 있다고 우리에게 귀띔을 해주었다.

그래서 약국으로 내려가지 않고 또 15분정도를 중환자실에 있는 약사 데스크에 머물렀다.

조금 뒤, 약사님은 중환자실의 간호사들과 얘기를 하셨는데 간호사들이 이제 환자분이 괜찮은거 같다고 말을 해준 뒤에야 우리는 약국으로 돌아갔다.


약국으로 돌아간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코드 블루가 다시 터졌다. 같은 침대에 있는 같은 환자분이셨다.

약사님과 나는 다시 새로운 코드 블루 키트를 가지고 부랴부랴 중환자실로 걸음을 옮겼다.

중환자실에 도착하기 직전, 다시 안내 방송이 나왔다. 코드 블루가 취소 되었다고 한다.

환자분의 심장이 왔다갔다 한다고 하더니, 그사이 다시 안정을 찾았나보다고 혼자서 안도 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란다.

가족분들이 환자분의 코드 블루를 원치 않으셨다고 그랬다. (아마 환자분과 그 전부터 충분히 이야기 해오셨을 터. 이런 결정은 법적으로도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병원에서도 꼭 사태가 벌어지기 진작부터 충분히 서류상으로 기록을 남기곤 한다.)

그렇게, 아침에 나에게 인상 깊은 친절함을 보여주셨던 환자분은 거짓말처럼 그렇게 명을 달리 하셨다.




작은 병원에서의 로테이션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할거 다 하고 최대한으로 많은 경험을 할수 있었던 정말 뜻깊은 로테이션이었다.

여러 다양한 약사님들을 쉐도우 하며 하루하루 저마다 약사님의 다른 가르침과 노하우를 배우는것도 정말 즐거웠고, 테크니션들을 따라다니며 병원 약국의 흐름을 배우는 일들도 재밌었으며, 프로젝트 하나 더 해보겠다고 직접 자원해서 약국 매니저 약사님께 얘기 했던것도 참 잘한 일이었다.


이 병원에서는 특이하게 최종 평가에 학생들이 해온 일들을 쭈욱 적는데, 이 글을 마무리하는데에 도움이 될것 같아 가져왔다.

작은 병원 로테이션 이야기 끝!

다음 로테이션은 비교적 큰 병원에서 하는 general medicine 로테이션이다.



+제목부분에 쓰인 이미지는 구글 검색에서 나온 이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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