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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군 Oct 16. 2018

다섯번째 로테이션

8월 중순부터 9월 말까지, 다 끝난 뒤에 몰아서 쓰는 이야기

오리엔테이션 날이었다. 8시까지 오라고 지시를 받았었지만 7시 20분도 안되어서 미리 도착했었다. 처음 운전하는 길에 병원 건물이 딱 보이는데 "우와" 소리가 저절로 나왔었다. 건물이 진짜 컸다. (네번째 로테이션을 동네 작은 병원에서 하고 난 직후라 더더욱 대비 효과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병원에서 일하고있는 반 친구에게 연락해서 "너 진짜 이 병원에서 일 한다는거 자체만으로도 너무 대단한거같아! 이번 로테이션 진짜 재밌을거같다" 라고 설레임 가득한 메세지를 보냈을 정도였으니..


다른 로테이션 장소들과 다르게 이 병원은 "teaching hospital"이라고 사람들이 그러는 병원이었는데, 이유인 즉슨 갓 의대를 졸업하고 레지던시를 하는 의사들이 아주 많은 병원이기 때문이었다. (의대 4년간 다닌 후 졸업 하고, 3년간 레지던시를 필수적으로 해야한다고 한다. 이 병원에는 많은 의사들이 있었지만, 갓 의대를 졸업한 의사, 그 의사들을 지도하는 윗(?) 레벨의 의사들, 그리고 그 윗 레벨 의사들을 지도하는 어텐딩 닥터 등 같은 의사 안에서도 위계질서/서열이 있다는걸 처음 두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는 재미난 기회였다.)


약대도 의대처럼 4년제이지만, 약대 졸업하고 보드 시험을 통과 하면 바로 약사가 된다. 하지만 약사가 바로 된다고 해서 또 약사로서 바로 일을 할수 있느냐 하면 그건 또 별개의 문제다. 특히 요즘 캘리포니아 안에 약대가 너무 많이 생겨난 직후라, 졸업 하고서 약사로서 fulltime job을 바로 잡는다면 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인 것.

그래서 많은 멘토들이나 교수님들께서 요즘 약대 학생들에게 꼭 하시는 조언은 "레지던시를 꼭 해라"라는 것이다. 약사로서의 레지던시는 의대처럼 필수적으로 하는 레지던시도 아니고, 한다고 해도 보통 1년만 하거나 많이 해야 2년 하는 정도.


이 병원에는 4명의 약사 레지던트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4명이 로테이션을 하는 학생들의 직속 프리셉터이기도 했다. 이 레지던트들은 자기들도 (다른 연륜있는 약사들에게) 배우는 입장인 동시에 (로테이션 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인 셈. 각각의 레지던트마다 달마다 주 업무가 다르게 주어지지만 (보통 오전 시간에 이 업무를 끝내는 편), 오후에는 4명의 레지던트들이 약국안에 있는 자기들 책상으로 하나둘씩 돌아와 공동의 임무로 주어진 일들을 한다. 그리고 로테이션 하는 약대 학생으로서 우리들은 레지던트들을 도와주는 것이다.




내과학 회진 (Internal Medicine Rounding)


병원의 메인 건물은 6층 높이이고, 각 층마다 north, center, south 이렇게 세 가지의 병동이 있다. 의사 레지던트들이 많은 병원인 만큼 병원 안에는 여러 팀이 있는데, 각 팀별로 병동에 입원 해 있는 환자들을 하루에 10-15명 정도씩 맡아 라운딩을 한다. 약사 레지던트도 이 라운딩에 참여한다.


다른 로테이션 장소들에 비해 이 병원이 정말 놀라웠던 건, 의사의 성 (last name) 이 뭔지에 상관 없이, 많은 의사들이 스페인어를 왠만큼 구사한다는 것이었다 (통역관 없이 환자와 간단한 일상 대화나 중요한 의학적인 대화를 할수 있는 정도). 스페인어+영어 짬뽕으로 스팽글리쉬를 쓰는 의사일지라도, 일단 스페인어를 조금이라도 할줄 알고 의사가 시도해볼 자신이 있다면, 병원 측에서 굳이 막지 않는 것 같았다.


또 라운딩을 주도 하는 어텐딩 닥터(attending doctor)가 환자들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정말 배울것이 많다고 느꼈는데, 환자 한명 한명을 찾아가 만날때마다 환자와 환자 가족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또 진심으로 그들을 생각하는 게 옆에서 지켜보는 나에게 너무 선명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열명이 넘는 환자들을 주르륵 연달아 방문하며 3-4시간동안 선 자세로 환자들을 대하려면 충분히 피곤할 것 같기도 한데, 어탠딩 닥터의 열정이 의사 레지던드들에게도 전해지는 것 같았고, 또 그런 환경에서 약사 레지던트와 로테이션 하는 학생인 나도 덩달아 열심히 집중을 할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진통/통증 클리닉 (Pain Clinic)

진통/통증 관련 일들은 간호사이면서 의사인 (학위가 DNP, doctoral degree in nursing 이다) 어떤 "의사"에게 주어진 임무이다. 약사 레지던트와 함께 이 "의사"를 도와 아침 일찍 병원 안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 중, 각 팀의 어탠딩 닥터가 refer 한 환자가 있다면 그 환자들을 직접 방문하여 진통제가 얼마나 잘 들고 있는지, 다른 추가적인 진통제가 필요한지 여부를 살펴보고 추천을 한다.

그 다음엔 외래 환자들을 보는데, 보통 정기적으로 2-3달에 한번씩 오는 환자들이 많다. 환자가 클리닉에 오면, 약사 레지던트와 학생, 이렇게 둘이서 환자 인터뷰를 먼저 하고, 그 뒤에 위에 말한 "의사"와 함께 다시 환자를 보며 새로운 약이 필요한지 등을 살펴보고 그에 맞는 새로운 처방전을 써 주고 하는 식이다.


항생제 청지기 (Antimicrobial Stewardship)

정말 많이 쓰이면서도 흔히 남용/오용 되는 4가지 클래스의 항생제들의 처방과 사용을 모니터 하는 프로그램이다. 우리 학교의 의대 출신이신, 항상 카리스마와 에너지 넘치는 한 의사 선생님께서 이 프로그램을 리드 하신다. 약사 레지던트가 매일매일 위에서 말한 4가지 클래스의 리포트를 모니터 하고, 뭔가 개선될 수 있는 부분이 나오면 이 프로그램을 리드하시는 의사와 직접 만나 이야기를 한다. 이 때 의사 레지던트도 함께 한다.


중환자실 회진 (MICU Roundings)

내과 회진때도 마찬가지이지만, 라운딩이 시작되기 전 "pre-rounding"이라고 해서 자기의 라운딩 팀을 만나기 전에 환자들을 학생들 스스로 work up 해야하는 시간이 있다.

중환자실 회진은 내과 회진과 비슷하게 아침 9-12시 사이 정도 인데, 내가 중환자실에 회진을 하는 기간 중에 코드 블루가 중환자실에서 두번 터졌었다. 두번 다 우리 팀이 담당하는 환자들은 아니었지만 정말 중환자실이라는 이름이 괜히 붙은게 아니다 싶을정도로 위급한 상황이 눈앞에서 벌어지는것을 봤어야 했다. (나는 MICU 회진을 했지만, 코드 블루는 두번 다 SICU 환자들이었다.)


쿠마딘 클리닉 (Coumadin Clinic)

4명의 약사 레지던트들의 공동 주요 임무중 하나는 쿠마딘 클리닉을 운영하는 것. 전화상으로 환자들에게 이야기 하며 운영되는 이 클리닉에는 300-400여명의 환자들이 있다. 항응고제, 그중에서도 와파린 (Warfarin 혹은 Coumadin)을 복용하는 환자들을 관리하고 모니터하는 클리닉이다.

환자들은 INR 값을 자주 확인 해야 하는데, 각 환자의 상황과 지난 번 INR 값에 따라 1주에 한번씩 피를 뽑기도, 2주에 한번씩 혹은 한달에 한번씩 피를 뽑기도 한다.

피검사로 INR값이 나오면, 환자에게 전화해서 그 결과를 알려주고, 다음에 피를 또 뽑으러 올때까지 쿠마딘을 하루에 몇 밀리그램씩, 혹은 일주일에 몇 밀리그램씩 먹어야 하는지 알려주는 열할을 한다.



기타 다른 임무들

vanco per pharmacy

MTM

Grand round case presentations

IV to PO

Renal dosing

Liver enzyme monitoring

Phenytoin dispence requirement

in-house services to nurses and doctors on various topics




레지던시를 제공하는 병원인만큼, 로테이션이 끝나고서도 레지던시 쇼케이스가 있는 컨퍼런스에서 이 병원에서 온 약사 레지던트들을 또 만날 수 있었다.

내년 이맘때쯤 난 뭘 하고 있을까? 5월에 약대 드디어 졸업하고 나면 공식적으로 학생으로서 하는 공부는 끝이 나게 되는데, 과연 내년 이맘때 쯤 나는 레지던시를 하고 있을 정도로 운이 좋으려나 아니려나?


그동안 나는 매니지드 케어 방면으로 길을 파겠노라고 굳게 다짐하고 있었건만, 네 명의 좋은 약사 레지던트들과 일하며 이 병원에서 일하는 것 처럼 inpatient acute care 와 ambulatory care 방면으로 나가서 환자들을 직접 만나고 하는것도 참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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