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가지 쓰는 엄마

엄마가 되고나서야 다시 보이는 우리 아빠의 마음

by 장군

약대 다닐 때 Clinical Skills Competition 에 같이 2인 1조 팀으로 참가해서, 학교 전체에서 우승, 주 (California state) 레벨, 그리고 미국 전체 (national) 레벨까지 같이 올라갔던 친구가 있다.

8월 말이 이 친구 생일이었는데 우리 둘다 약사 자격증 시험과 레지던시 스케쥴 등으로 그때 못 만났다가 어제야 저녁이나 같이 먹자며 약속을 잡게 되었다.


평소에 예쁜 필기구를 좋아하는 친구였던지라, 약속시간 2시간 전, 한국/일본 등 에서 온 물건들을 모아 파는 상점에 갔다.

아기자기한 예쁜 인형, 큰 요시 인형, 방탄소년단 셔츠들 등등 이것저것 바다 건너 온 물건들이 많은 상점인데 가격이 결코 싸지 않아 (한국에서 2천원짜리 펜을 여기서 4불에 판다던지) 내 물건 사러는 잘 안가는 그런 상점이다.

남편이랑 아들이랑 나랑 셋이서 들어갔는데, 내가 친구에게 선물 해줄 필기구들을 고르는동안 남편이랑 아기랑 상점을 같이 돌아다녔다.


한참 뒤에 필기구 여러개를 골라 계산을 하려던 찰나, 남편이랑 아들이 계산대 바로 옆에 있는 피규어 진열대쪽에 서있는걸 봤다.

아들이 뭔가 맘에 드는 걸 찾은 모양이었다. 손에 꽉 쥘 만큼 퉁퉁한 (?) 고질라 피규어들이 가득한 곳에서 아들이 찾은건 쬐끄맣고 빨간 용(?) 모양 피규어. 내 손바닥의 1/4 정도의 크기의 피규어였다. 남편 말로는 고질라 영화에서 나오는 용인데, 자꾸 선반에 다시 갖다 놓고나서 다른거 골라보라고 해도 아들이 이것만 자꾸 집는다는 것 ... (주변에 있는 다른 피규어들은 퉁퉁하고 두툼하니 갖고놀기 좋게 생겼던데. 왜 보잘것없이 작은 이 피규어만 좋아라 하는건지 나도 이해가 안됐다. ㅋㅋㅋ)

다른 큼직한 고질라 피규어들을 보니 가격이 $6.99. 요 작은 녀석은 다른 큰 피규어들 가격보단 싸겠지 생각하면서 그냥 사주자고 하고서 계산대로 갔다.


자기 맘에 쏙 든 피규어를 엄마가 가지고 가는 걸 유심히 바라보며 나를 졸졸 계산대 옆까지 따라온 아들.

"애기야, 엄마가 먼저 이거 돈 내고 사야 애기한테 줄수 있는거야 알겠지?"

자기가 말은 아직 잘 못해도 엄마 아빠가 설명해주는건 눈치코치 잘 알아듣는 아들.


그런데 세상에, 계산을 하려고 보니까 이 쬐끄만 피규어도 다른 큼직한 피규어들처럼 $6.99 란다. 한 2-3불 하겠거니 생각했는데 거의 7불 돈이라니!!

친구 만날 시간은 다가오고, 아기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고 있고 그래서 결국 바가지인거 알면서도 사줬다.


나오자마자 빨간 용 피규어를 들고 비행기 태우는 시늉을 하며 너무나도 좋아하는 아들 ...

남편한테는 "진짜 이게 7불이라는 믿을수 없어 ..." 징징대면서도 또 한편 이 작은 피규어 하나로 행복해 하는 아들을 보며 문득 내가 어릴때 기억이 났다.




어려서부터 우리 아빠는 돈돈돈, 돈 모으기 잘하시고, 돈 쓰는거 안좋아하시고, 심지어 일요일에 교회 가자고 엄마가 깨우셔도 "돈!" 이러시고는 5천원이라도 손에 들어와야 교회 가자고 일어나시는, 그런 아빠다.

덕분에 나랑 내 동생들도 돈 귀한걸 어렸을때부터 알아서 남들 다하는 캐쉬템 한번 산적이 없었고 (버디버디 라던지 크레이지아케이드 라던지 ...) (야이야이야.. 그렇게 살아가고 .. 하지만 다시웃고)


이런 우리 아빠가 통 크게 나한테 돈을 쓰신 일이 몇번 있었는데, 그중 한번은 중학교 1학년때 처음 핸드폰 살때였다.

내가 먼저 사달라고 조른건지 아니면 아빠가 먼저 마음껏 고르라고 하셨는지 기억은 안나는데, 분명 아빠랑 같이 휴대폰 대리점에 갔던건 확실하다. 뭔가 안 평범한 핸드폰이 갖고 싶었던 나는 그때 40만원이 넘었던 모토로라 정사각형 모양 전화기를 골랐었고, 아빠가 흔쾌히 사주셔서 싱글벙글 하며 집에 가져온 기억이 난다.

나도 왜 철 없이 그 비싼 전화기를 골랐는지, 또 아빠는 왜 그날따라 다른날과 다르게 흔쾌히 하필 그 비싼걸 허락해주신건지 모르겠는데, 왠지 이 날의 아빠 마음이, 내가 아들의 빨간 용 피규어를 보는 마음과 같았을 것 같다.


*** 저 찬란하게 빛나는 바닥은 피규어의 일부가 아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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