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손가락이 아팠다. 오른손 중지가 퉁퉁 붓고 심한 통증을 느꼈다. 한의원, 정형외과를 가도 원인을 찾을 수 없었다. 침을 맞고 진통제를 먹었지만 통증은 더욱 심해졌다. 극심한 근육통으로 출근하지 못하는 날도 늘었고, 양손은 점점 부어올랐다. 25살의 나는 평범이라는 범주에서 아무런 의심도 일탈도 없는 보통의 일상을 살고 있었다. 그러나 손가락에서 시작된 통증은 삶의 균형을 흔들었고, 흔들림이 가져온 파장은 서서히 다른 나로 만들었다.
26년 전은 지금처럼 정보를 쉽게 얻지 못했던 시절이다. 단순히 뼈에 이상이 있다고 생각했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점점 통증이 심해졌고 엄마는 여기저기 나의 증상을 물었다. 엄마의 한 지인은 류머티즘관절염일지도 모른다며 병원을 알려줬다. 처음 들어본 병명이었고 어떤 병인지 알 수 없었지만 두려움이 켜져 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찾아간 병원은 류머티즘내과라는 간판을 달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셀 수 없이 많은 검사를 했다. 의사는 혈액검사에서 류머티즘 인자가 나왔고 염증 수치가 심하다며 자가면역질환인 류머티즘관절염을 진단했다.
자가면역질환
류머티즘 관절염은 자가면역질환이다. 사람의 몸은 외부의 바이러스나 위험 요소로부터 자신의 보호하는 면역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무슨 이유인지 면역체계의 이상으로 자신의 몸을 적으로 인식하고 신체의 세포를 공격한다. 자가면역질환의 종류는 100여 개에 달하고 대표적 질환이 류머티즘 관절염이다.
류머티즘 관절염은 자가면역질환 중 가장 흔한 질병이다. 손, 발 등 신체 모든 관절에서 염증을 일으키는 만성염증질환으로 원인을 알 수 없다. 염증이 지속되면 활막을 감싸고 있는 조직이 자라나 뼈과 연골에 영향을 주고 관절의 모양이 변하고 장애를 발생시킬 수 있다. 문제는 관절에만 염증을 일으키지 않고 다른 장기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염증 증가는 빈혈을 동반하고 심장, 폐등에 혈관염을 일으키기도 한다. 염증 증상은 발열이나 전신 쇠약, 체중감소, 호흡곤란 등과 같은 증상도 동반한다. 치료제도 없고 완치도 되지 않는 난치병이다.
자가면역질환이 내가 나의 적이라는 말 같았다. 나를 구성하는 나의 세포가 자신을 공격한다니, 어떻게 이런 병이 있을 수 있을까. 머리로는 이해됐지만 마음은 벽에 가로막힌 것처럼 답답했다. 혹시 유전이 된 걸까, 왜 하필 나일까, 수없이 묻고 물었다. 끝없는 질문을 던지고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슬펐다.
약을 먹고 통증이 사라지면서 빨갛게 부었던 손가락은 이전의 모습을 찾아가는 듯했다. 약은 더 이상 아프지 말라고 보듬어줬고 몸은 꾸역꾸역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손가락이 점점 변하기 시작했고 체중이 감소했다. 이전과 다르게 쉽게 피곤했고 수시로 근육통을 앓았다. 25살 나이에 겪는 신체적 변화, 특히 관절의 변형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누군가 손가락을 보고 물으면 그냥 다쳐서 그런 거라며 둘러대기 시작했다. 병이 있는 나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가끔 혼자 있는 날은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봤던 신을 원망하고 누군가를 원망하는 주연이 된 것처럼 눈물을 쏟기도 했다. 숨기고 사는 거, 아무렇지 않게 지내는 게 아픈 나를 달래고 돌보는 거라 생각했다. 진짜 내 안의 나는 아프고 슬프고 힘들다고 외쳤지만 목구멍 위로 올라오는 말들을 꾸역꾸역 삼켜버렸다.
점점 아픈 나와 아픈지 않은 나로 살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 했고, 어떤 웃음보다 밝게 웃었다. 통증이 있어도 참았고, 가족 외에는 약 먹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건강한 척, 행복한 척, 아프지 않은 척하는 나만 나인 것처럼 살았다. 슬픔을 가슴에 꾹꾹 눌러 담으면 마음속에 단단히 자리 잡아 안정적인 나로 돌아갈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단단할 줄 알았던 마음은 쩍쩍 갈라졌고, 갈라진 마음이 흘리는 눈물에 허우적거렸다.
26년, 이 시간은 손에 꼭 쥐어도 손가락 사이도 빠져나가는 모래와 같은 시간이었다. 난치병 환자라는 슬픔으로 두 손을 힘껏 쥐고 아파했던 시간이다. 너무 오랜 시간, 슬픔을 힘주어 참고 살았다. 이제 꽉 쥐었던 손을 풀고 슬프면 울고 나를 돌보며 진짜 웃음을 웃으려고 한다. 순식간에 사라질지도 모를 내 삶의 소중한 기쁨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아직 남은 많은 시간은 느슨하게 잡고 지금의 나를 인정하려 한다. 아픈 나도 나라고 얘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