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랫화이트 May 23. 2024

흔한 이름의 특별한 사람


내 이름 석자는 너무나 흔하다. 주변에 한 명 정도는, 아니면 친구의 친구쯤은 가지고 있는 이름이다. 이름 때문에 사춘기 시절에는 많이 예민했었고 개명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예쁜지 않더라도 특별했으면 하는 마음이 심하게 작동했던 시기였고 이름을 지어주신 아빠를 원망했던 기억도 난다.




국민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이름에 대한 스트레스가 커졌다. 첫 수업날만 되면 제발 같은 이름이 없길 바랐지만 마치 예정된 시간표를 받은 듯 항상 같은 이름을 가진 아이가 있었다. 80년대 초반, 한 반의 학생은 60명이 넘었고 12개의 반이 있던 시절이니 같은 이름이 없다는 것이 이상했을지도 모른다. 천만다행인지 한 번도 성까지 같은 아이와 반이 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중학교에서 성까지 똑같은 애와 같은 반이 되는 사건(?)이 생기고 말았다. 3학년이 된 첫날, 교실에 말로만 듣던 나와 이름이 같은 애가 앉아 있었다. 그 애는 학교에서 키가 가장 컸다. 하얀 피부에 남자애들보다 한 뼘은 켰던 그 애는 유명했다. 나와 이름이 같은 인기 많은 그 애는 친해지고 싶기도, 피하고 싶기도 한 사춘기 감정을 극대화시키는 존재였다. 새 학기가 되면 제발 같은 반이 안 되길 빌었는데, 헉! 교실에 떡하니 앉아 있는 그 애를 보자 눈앞이 깜깜했다. 선생님은 출석부의 이름을 모두 호명하곤 나와 그 애를 불렀다.


“우리 반에 이름이 같은 친구가 있네. 너희는 헷갈릴 수 있으니까 큰ㅇㅇ, 작은ㅇㅇ 으로 부르자. 다들 그렇게 불러"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 애보다 키가 많이 작았던 난 “작은ㅇㅇ”으로 명명됐다. 벌게진 얼굴이 창피하다고 느끼자 더 펄펄 달아올라 욱신거리는 얼굴을 들지 못했고 서둘러 자리에 앉았다. 슬쩍 그 애의 얼굴을 봤는데 웬걸, 나처럼 빨개졌을 거라 생각했던 그 애의 얼굴은 여전히 하얗게 빛났고 약간 미소를 띠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 애가 신기했다. 반에서 나와 그 애는 별명처럼 "큰ㅇㅇ, 작은ㅇㅇ"으로 불렸다. 시간이 지나 익숙해졌고, "큰ㅇㅇ"와는 친해졌다. 학교에서 제일 큰 애와 작은 애가 같이 다니니 눈에 확 띄었다. 친구들과 선생님들은 이름은 같지만 키 차이가 심한 우릴 보며 신기해했다. 흔하디 흔한 이름으로 유명해졌고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니 기분이 좋았다.  

각자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면서 "큰ㅇㅇ"와는 연락이 끊겼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애는 자신의 이름을 창피해하지 않았다. 난 "작은ㅇㅇ"으로 불리는 게 익숙하기까지 시간이 걸렸는데, 그 애는 항상 웃는 얼굴로 대답했고 자신의 이름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난 이후에도 새로운 환경에 놓이면 저장된 이름에 대한 불편한 기억이 떠올랐다. 성인이 되고서야 완전히 사라졌고, 이름은 오히려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서 긍정적인 영향을 줬다.  "내 친구랑 이름이 같네요."  "기억하기 쉬운 이름이에요. 외모랑 잘 어울려요."라는 얘기를 종종 들었고 사람들은 나에게 편하게 다가왔다. 이름으로 스트레스받았던 시절의 내가 생각나 웃음이 나곤 했다. 



그 시절, 난 관심이 필요한 나이였다. 이쁘지도 못생기지도 않는 얼굴, 크지도 그렇다고 너무 작지도 않은 키, 눈에 띄게 좋은 성적도 아닌 평범한 중학생의 한 여자아이였다. 친구들 사이 어디서도 스며들어 잘 지냈고 멀어져도 괜찮은 정도의 친구였다. 어디서도 돋보이지 않았고 눈에 띄고 싶어 하지 않았지만 관심이 필요했고 특별한 사람이고 싶었다. 


이제 난 흔하디 흔한 나의 이름처럼 평범한 일상을 바란다. 평범한 중년의 여성들처럼 근력 운동을 하고 요가도 하고 필라테스도 하고 싶다. 건강한 사람처럼 아침에 약을 먹지 않길 바란다. 보통의 사람들처럼 손뜨개를 하고 악기를 연주하고 싶다. 그러나 류머티즘 관절염 환자인 난  근력운동도 요가도 필라테스도 할 수 없다. 하루라도 약을 먹지 않으면 염증과 통증으로 힘들다. 손을 사용하는 취미도 할 수 없다. 난 보통의 사람들이 쉽게 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없는 특별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내가 불쌍하지도, 불행하지도 않다. 누구보다 나와 가족,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특별한 사람이길 원했던 사춘기 어린 소녀가 이젠 특별한 사람이 되었으니 괜찮다. 흔한 이름 덕분에 깨달은 특별하고 소중한 나의 삶이다.   

이전 18화 괜찮아? 괜찮냐고? 괜찮다니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