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뭐 별 건가?
5월은 찬란하다. 다가올 여름을 앞둬서 인지 5월은 하루하루 소중하다. 파랗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짙푸른 색의 하늘과 푸른 나뭇잎, 그리고 쏟아지는 햇살은 집안에 있는 것이 뭔가 큰 해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은 갖게 한다. 누군가 등을 떠미는 것처럼 서둘러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간다. 무심코 지나쳤던 아파트 정원의 나무와 꽃에 시선이 머문다. 지나가는 아기와 엄마의 모습을 보며 추억을 떠올리고, 종종 걷는 조그마한 강아지를 보며 흐뭇한 미소가 떠오른다. 버스 정류장에 서니 관심 있게 보지 않아 몰랐던 텅 빈 상가를 보고 왠지 속상한 기분도 든다.
그냥 지나쳤던 많은 것들이 유독 시선을 잡는 날이 있다. 어제, 친구와 함께 덕수궁을 찾았다. 작년 가을에 전시회를 보기 위해 방문하곤 7개월 만이다. 덕수궁은 가을을 벗어던지고 푸르른 5월로 빛났다. 전시회가 열린 국립현대미술관(덕수궁관)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아름다운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감탄사로 물들어 있었다. 어두운 실내에 작품을 비추는 작은 조명이 뿜어내는 빛은 작품을 더욱 아름답게 한다. 작은 글씨의 설명을 읽으며 감동받고, 지나가는 사람의 감상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작품에 흠뻑 빠져 다리가 아픈 것도 잊고 관람을 마쳤다. 어두운 전시관을 나와 미술관 현관을 나왔다. 눈앞에 펼쳐진 덕수궁의 풍경, 나도 모르게 "아!!" 하며 감탄사를 쏟아냈다. 먼 과거에도, 작년에도, 어제도 덕수궁은 그곳에 그대로 있었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날의 덕수궁은 달랐다. 더 푸른 하늘과 더 푸르른 나무, 더 시원한 바람과 더 찬란한 햇살이었다. 모든 것이 생동하는 듯 꿈틀거렸고, 나의 마음도 울렁거렸다. 9년 전, 오스트리아로 여행은 갔다. 한 지역에서 알프스 산맥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렀다. 자연이 주는 거대한 풍경에 압도되었고 그저 불어오는 바람과 눈앞의 푸르른 나무를 보며 행복은 이렇게 작은 것에서 느끼는 감정이라는 걸 알았다. 내 주변의 풍경, 내 옆의 사람, 멀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작고 가까운 것들이 주는 감탄이 행복을 느끼게 했다.
지난 주말, 바쁜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아침 약 먹는 것을 잊고 말았다. 한 번이라도 약을 먹지 않으면 통증으로 힘든데 무슨 이유인지 그날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눈을 감자 썰물이 밀러 오듯 통증이 퍼졌다. 손이 뻣뻣해지고 붓기 시작했다. 그제야 아침약을 먹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병을 앓고 처음 있는 일에 놀랬고 처음 있는 일에 신기하기까지 했다. 아마 5월이라는 계절이 주는 행복, 편안한 일상이 주는 안정감, 맛있는 음식과 향긋한 커피가 주는 즐거움, 일상의 소소한 감탄이 통증을 잊게 한 것이 아닐까.
우린 매일을 애쓰면 꾸역꾸역 살아간다. 숨을 헐떡거리는 일상과 가질 수 없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 꾸역꾸역 살았고 여전히 살아간다. 이런 일상 속에서도 삶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은 찰나의 순간에 찾아오는 행복한 감정 때문일 것이다. 하늘, 바람, 나무, 꽃, 미술 작품, 강아지, 그리고 내 옆의 소중한 사람들. 행복은 멀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행복 뭐 별거겠는가. 내가 있는 공간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함께 하는 것들에 머무는 찰나의 시선과 감탄의 순간, 그것이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