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는다. 사람들의 옷차림이 눈에 띈다. 뜨거운 햇볕을 피하기 위해 선글라스를 쓴 사람도 많아졌다. 화려하고 시원한 원피스를 입은 여성들의 옷자락은 마치 나비가 날개를 팔랑거리듯 바람에 살랑거린다. 더위에 연신 부채질하는 어르신도 있고, 한 손에 시원한 음료수를 들고 바쁘게 걸어가는 학생도 보인다. 지글지글 땅으로 올라오는 열기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얇아진 옷, 발가락이 숭숭 나온 시원한 신발, 묶어 올린 머리, 문득문득 시선을 잡는 사람들을 본다. 평범한 하루, 나의 시선 속 사람들의 모습은 여느 날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병원에 가면 나의 시선은 다른 곳에 머문다.
병원 안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와 공기는 정말 다르다. 더 차갑고 더 무겁다고 할까. 난 병원에 들어서면 모든 생각이 멈춘다. 그리고 느렸던 발걸음이 빨라진다. 문 하나를 두고 완전히 다른 세상에 들어서는 것 같다. 몸에 버튼이 눌려진 듯 매뉴얼 대로 움직인다. 서둘러 수납을 한다. 채혈실로 향하고 내 번호가 뜨는지 전광판만 주시한다. 수시로 울려대는 “띵동”하는 번호 알림 소리에 고개는 좌우로 움직이고 내 번호를 찾는다. 모든 신경은 소리와 숫자에 쏠린다. 번호가 호명되면 빠르게 자리에 앉고 간호사의 질문에 답 한다. 눈을 질끈 감고 바늘이 꽂히면 서서히 몸에서 무언가 빠져나가는 느낌을 알아차린다. 그제야 채혈실 주변과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때부터다. 매번 사람들의 걸음걸이가 가장 먼저 보인다. 정확히 말하면 환자들의 걸음걸이다. 길거리에선 많은 사람의 걷는 모습은 비슷하다. 속도만 다를 뿐이다. 병원 안에는 두 다리를 사용해서 걷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병원에선 “평범하다”라는 말은 의미가 없다. "평범하다"와 "평범하지 않다"의 경계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두 다리를 사용하는 사람, 휠체어를 타는 사람, 목발을 짚는 사람, 환자용 침대에 누워 이동하는 사람, 조금은 불편한 걸음을 걷는 사람, 보호자에 기대 걷는 사람, 모두가 다른 모습으로 걷는다. 난 병원 안의 사람들의 각기 다른 걸음걸이를 보며 생각한다.
"휠체어를 탄 할머니는 어디가 아프신가? 저 학생은 왜 목발을 했지? 아저씨는 왜 다리가 불편할까?"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불편함을 생각하고 건강을 걱정하고 완쾌를 기원한다. 나의 마음은 그들에 대한 걱정이 앞서고 안도와 다행의 감정이 따르기도 한다.
두려움을 고백하는 것은 약함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 그때, 나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 - (정여울)
병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때는 병원 안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빨리 진료를 보고 더 나빠지지 않다는 말을 듣기만 바랐다. 두려움과 걱정으로 수없이 괜찮을 거라는 말을 되새겼다. 병원에는 오직 나만 존재했다. 아프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고 고백을 하고서야 병을 인정할 수 있었다. 인정하고 나니 아픈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의 난 그들에게 공감하고 위로를 보낸다. 그리고 더 큰 위로를 받는다.
난 두려움을 극복한 것일까. 아직은 두려움이 사라졌다고 말할 순 없다. 불쑥불쑥 알 수 없는 불안과 공포가 생길 때가 있다. 두려움이 몰려오면 마음은 다시 꽁꽁 얼고 입은 굳게 닫힌다. 그러나 그 시간이 예전과는 다르다.
과거엔 보이지 않았던 사람들의 걸음이 보인다.
다른 환자들의 표정과 걸음걸이, 그리고 그들의 아픔이 보인다.
그러니 언젠가는 두려움도 사라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