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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랫화이트 Jun 20. 2024

결말쯤은 상상으로 바꿀 수 있잖아!

이디스 워튼 <이선 프롬>을 읽고.


책을 읽다 보면 책 속 인물이 나와 가족, 친구들의 모습과 겹칠 때가 있다. 아픈 주인공은 내가 되기도 하고 차별받는 여성의 이야기에는 분노하기도 한다. 힘들었던 시절이 떠올라 눈물을 흘릴 때도 있고 웃음이 터지기도 한다. 순간순간 찾아오는 공감과 감동이 책을 읽는 가장 큰 매력일 것이다.


얼마 전, 이디스 워튼의 <이선 프롬>을 읽고 마음이 요동쳤다. 주인공 이선 프롬의 아내 지나는 신경쇠약증에 걸렸다. 얼굴엔 항상 짜증과 불만이 가득하고 어떤 것에도 의욕을 갖지 못한다. 질병은 지나를 서서히 무너뜨렸다. 그녀의 모습을 보며 일상생활을 유지하며 긍정적으로 사는 나는 다행이라 여기며 안도했다. 




주인공 이선 프롬은 가난한 농부이자 목재소를 운영한다. 그는 신경쇠약에 걸린 아픈 아내 지나를 돌보며 산다. 젊은 시절, 대학을 다니며 엔지니어가 되는 꿈을 꿨지만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마저 병에 걸리자 공부를 포기하고 시골집으로 돌아온다. 먼 친척인 지나가 어머니를 간병하기 위해 온다. 지나는 정성을 다해 이선의 어머니를 돌보지만 어머니는 사망한다. 헌신적으로 자신의 어머니를 간호하던 지나의 모습에 반하고 결혼한다. 행복한 결혼 생활도 잠시, 지나는 신경쇠약증에 걸린다. 이선은 오랜 시간을 아내의 치료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농사를 짓고 목재소를 운영하며 열심히 산다. 그러나 경제적 어려움과 지나의 병은 나아지지 않았고 변하지 않는 현실에 지쳐갔다. 

그러던 중, 지나의 먼 친척인 매티가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이선의 집안 일과 지나를 간호하기 위해 오게 된다. 젊고 아름다운 매티는 현실에 지쳐있던 이선에게 활력소가 되고, 결국 매티를 사랑하게 된다. 지나가 진료를 받기 위해 잠시 집을 비운 사이, 이선과 매티는 둘만의 꿈같은 시간을 보낸다. 

며칠 후 지나는 돌아왔고 비싼 진료비를 요구한다. 더구나 새로운 간병인을 고용하겠다면 메티를 돌려보내겠다고 선언하다. 이선은 매티와 헤어질 생각에 괴롭지만 어쩔 수 없이 매티를 보내야 한다. 매티가 떠나는 날, 이선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그녀와의 시간을 갖기 위해 기차역까지 배웅한다. 이선은 매티와 도망쳐 새로운 삶을 살고 싶지만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이별을 슬퍼하는 이선에게 매티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한다. 자신도 이선을 사랑한다며 같이 죽자는 매티. 아픈 아내와 사느니 매티와 함께 죽는 것을 선택한 이선. 위험한 언덕에서 둘은 썰매를 타고 내려오며 죽음으로 향한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큰 부상만 입고 둘은 목숨을 건진다. 구조된 둘은 다시 지나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고 지나의 지극한 간병으로 회복한다. 이선과 매티는 장애를 갖게 되고 세 사람은 한 집에서 함께 살아간다.




이선 프롬에게 아픈 아내 지나는 어떤 존재였을까. 지나가 아프기 전, 그들의 결혼 생활은 평범했다. 예상하지 못한 질병 앞에서 사랑은 식고 현실의 무게는 이선의 어깨를 짓눌렀다. 이선에게 새로운 사랑이 찾아왔지만 아픈 아내를 버리고 떠나지 못하며 괴로워했다. 아내에 대한 책임감과 연민, 처연함, 지나에 대한 이런 감정들이 그를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했다. 


가족의 구성원이 아픈 경우, 나머지 가족이 감당해야 하는 삶은 무게는 짐작하기 힘들다. 끝을 알 수 없는 치료와 감당하기 어려운 병원비, 거기에 경제적 어려움까지 있다면 생활 자체가 고통이 된다. "긴 병시중에는 장사 없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니 질병은 삶에 균열을 만든다. 


이선의 모습을 보며 남편이 떠올랐다. 난 오랜 기간 난치병을 앓고 있지만 겉모습은 평범하다. 다만 일상생활에서 손을 과도하게 쓰는 일이나 무리한 육체활동을 하지 못한다. 남편이나 딸의 도움이 있어야 가능한 일들이 많다. 통증에 대한 감각이 어느 정도는 둔화되었지만 아주 가끔, 이유 없이 통증이 찾아오는 날이 있다. 이런 날은 모든 생활에 stop 버튼이 눌린다. 남편은 직장일에 집안일까지 도맡아야 한다. 힘들고 지칠 만도 한데, 20년이 넘은 결혼생활 동안 남편은 항상 같은 모습이다. 검사가 있는 날은 항상 동행하고 아픈 날은 묵묵히 간호한다. 


언젠가 질병 있는 나와 사는 남편의 마음은 궁금해서 물은 적이 있다. 그럴 때마다 돌아오는 답은 "내 운명인데 뭐"라며 덤덤하게 말한다. 난 남편의 속마음을 헤아릴 수는 없다. 그저 그 말을 가슴에 담는 것 밖에는. 그리고 고마워하는 것 밖에는 없다. 




책을 덮으며 여러 가지 감정이 들었다. 이선이 불쌍하면서도 젊고 아름다운 매티를 사랑하는 그가 괘씸했다. 아픈 지나에 동화되어 한 없이 불쌍하다가도 "좀 웃으면 안 되나? 왜 저래?" 하며 답답했다. 지나와 나를 비교하며 복잡한 심정에 결말을 바꾸고 싶기까지 했다. 


이선 프롬이 매티를 만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저 자신의 처지를 운명처럼 받아들였을까? 아니면 지나와 헤어지고 새로운 삶을 살았을까? 내가 작가라면, 아니 정확히 말해 아픈 나이기에 이선이 지나 곁에 남는 결말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지나의 병이 완치되어 다시 행복을 찾은 이선과 지나의 모습을 상상했다. 

결말쯤은 내가 원하는 상상으로 바꾸며 즐거워서 웃음이 났다.


얇을 권이 주는 감정의 소용돌이, 독서의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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