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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 구경 위해 만든 정자, 서울 한복판에 있습니다

늦가을 석파정 서울미술관 나들이...천경자 작고 10주기 특별전

by 오순미

지난해 황금 코스모스가 한창일 때 서울 '길상사'와 '윤동주 문학관'에 들렀다 자하문 터널을 지난 길에서 '석파정'을 보았다. 의외의 소득이다 싶어 차를 돌려 갔더니 정기휴무라 맥 없이 돌아온 적이 있다. 곧 다시 가겠다는 약속을 너무 깊숙이 넣었나 보다. 벌써 1년이 지났다. 검색으로 알아본 정기휴무(월·화)를 피해 지난 10월 마지막 날 다시 찾았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있는 석파정은 '서울미술관' 전시까지 한 벌로 묶어 관람하는 곳이다. 마침 본관에선 '천경자 작고 10주기 특별 기획전'이, 별관에선 사진작가 '카와시마 코토리 : 사란란전'이 열리고 있었다. 화가 천경자 특별전이야말로 검색 중 알게 된 뜻밖의 횡재였다. 자연과 예술이 빚어낼 깊은 소양을 기대하며 석파정으로 향했다.


꽃과 여인의 화가 천경자 화백의 작품 속으로


매표소에선 '본관 → 석파정 → 별관' 순서로 관람할 것을 추천했다. 본관에서 열리고 있는 <내 슬픈 전설의 101페이지(오는 2026년 1월 25일까지-서울미술관)>는 2015년 91세로 타계한 천경자 화백 10주기 추모전이자 탄생 101주년 기념전이었다. 곳곳에서 모은 80여 점의 채색화 작품들이 천경자 화백의 화업 60년에 몰두하도록 일곱 개 이야기로 전시되었다.

▲천경자 작고 10주기 특별기획전 <내 슬픈 전설의 101페이지> 전시장 모습. 101은 탄생 101주기를 의미한다.

이번 전시는 지난해, 그녀의 고향 전남 고흥에서 열린 '찬란한 전설 천경자, 탄생 100주년 기념 특별전'에 이은 서울 추모전이다. 독자적 회화 양식으로 전통 동양화의 한계를 뛰어넘은 천경자 화백만의 고유한 예술 세계 101페이지는 이목을 집중 시키는 전설의 귀환이었다.


가볼 엄두조차 내지 않은 아프리카 탄자니아 킬리만자로 설산, 드넓은 초원, 평화로운 동물, 코끼리 등 위에 웅크리고 앉아 고개를 푹 숙인 여인을 그린 '내 슬픈 전설의 49페이지(1976)'는 '사회에 저작권과 작품을 환원한 최초의 화가'방에 전시된 작품이다.


화가 자신의 나이를 의미하는 49페이지. 반평생을 살아온 그녀의 삶에 외로움과 두려움이 맺힌 듯하여 한참을 바라보았다. 긴 머리칼로 얼굴을 가린 나신의 그녀는 외부로부터 보호 받지 못한 채 쏟아지는 비애를 홀로 감당하는 것 같았다. 마치 우리네 중년의 울퉁불퉁한 삶의 과정과 닮은 듯하여 처연한 기분이었다.


머리칼 속으로 흐르는 그녀의 속울음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순간 놓친 희망을 보았다. 그녀는 주저앉으려는 게 아니라 웅크린 다리에 힘을 주어서라도 도약하려고 애쓰는 듯 보였다. 비극적 운명에 투쟁하려는 의지가 섬광처럼 스쳤다. 애처로움과 안도감을 동시에 전하는 작품 같았다.


눈에 띄는 노란 블라우스에 장미 꽃다발을 든 여인, 머리엔 장미색 터번까지 두르고 눈두덩의 색조 화장은 범상치 않다. 구불구불한 머릿결 끝, 크고 긴 눈매 속 또렷한 눈동자, 다부진 입술 가운데가 금빛으로 빛나는 '청혼(1989)'은 '운명의 굴레를 벗어던진 당당한 여성 초상화'방에 걸린 작품이다.


청혼을 받는 순간일까? 하는 순간일까? 화가 천경자가 가진 열정이라면 한껏 멋을 내고 찾아가 먼저 고백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데 설레고 행복해야 할 청혼의 순간임에도 희미한 미소조차 없는 걸 보니 아련한 슬픔이 느껴진다. 무난하지 않았던 그녀의 결혼, 이별, 홀로서기로 미루어볼 때 가슴 깊이 묻어둔 상처와 상실의 감정이 짐작된다. 화려한 치장 속에 숨어 나열된 그녀의 애환들을 함께 보듬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길례언니(1982)'도 '고孤(1974)'속의 여인도 노란 블라우스에 꽃이 가득 화려한 모습이지만 목이 길어서 더 슬퍼 보였을까, 보이지 않는 애수 같은 것이 깔린 듯했다. 고달픈 시대와 삶에 뛰어든 거장 천경자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그녀는 늘 새로운 시작점에서 붓을 들었을 거라 직감하게 된다.


익숙한 얼굴처럼 보이는 여인들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풀어놓을 때마다 독특한 울림으로 응시하게끔 이끄는 힘에서 그렇게 느껴진다. 격동의 근대사에서 자신만의 세계관을 채색한 그녀의 91페이지가 당당한 이유는 거기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자연과 건축이 함께 이룬 풍경 석파정의 매력


화가 천경자의 독창적인 화풍이 펼쳐진 전시장을 나오면 별서형 한옥 건축물 석파정과 마주한다. 석파정은 안동 김씨 세도가 김흥근의 별장이었으나 흥선대원군이 집권한 뒤 반강제로 헌납을 요구해 자신의 별서로 사용했던 조선시대 사대부의 전통 정원이다. 조선의 마지막 왕 고종도 가끔 머물렀던 왕의 공간이기도 하다.

▲맞은편 암반에서 바라본 '석파정'의 안채와 사랑채. 뒤로 별채가 따로 있다. 계곡 · 바위 · 숲과 같은 자연 속에 건물이 배치되어 '별서'로 적합하다는 느낌이 강한 곳이다.

석파정은 안채와 사랑채가 나란히 있고 그 뒤로 별채가 따로 있다. 안채는 잠겨 있어 'ㄱ'자형 사랑채로 곧장 갔다. 햇살 머금은 누마루에 앉으니 맞은편으로 커다란 암반이 보이고 멀리엔 북악산과 한양 도성이 보인다. 사랑채 마루에 잠시 앉아만 있어도 '복잡하다, 바쁘다'는 말이 지워지는 듯했다. 풍류가 저절로 나올법한 경치를 바라보자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별서의 중심부였던 사랑채를 지그시 바라보며 넓은 그늘을 드리운 '천세송(서울시 지정보호수 제60호 노송)'을 지나 숲길로 들어서면 '유수성중관풍루(流水聲中觀楓樓 :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단풍을 바라보는 누각)'라는 정자와 만난다. 석파정을 상징하는 정자로 사랑채 마당에서 한참 떨어진 깊숙한 계곡 속에 있다.


목재로 마감한 한국 전통 정자와 달리 바닥을 화강암으로 처리했다. 문살 문양으로 세운 기둥과 4모지붕으로 건축한 이국적인 양식이 특이하다. 세 사람 정도 들어서니 꽉 차는 느낌이었다. 음풍농월이 웬걸, 이곳은 당구대에 그어지는 선처럼 수많은 밀화가 오갔을 것으로 보이는 공간이다.

▲'유수성중관풍루'란 흐르는 물소리 속에서 단풍을 바라볼 수 있도록 지은 누각으로 계곡 속에 자리하고 있다.
▲'너럭바위'를 보고 내려오는 길에 본 '유수성중관풍루'의 뒤태. 단풍이 붉게 물들면 신비로운 공간이 될 듯싶다.

별서 중에 석파정처럼 안채 외에 별채, 사랑채까지 두는 경우는 드물다는데 빼어난 산수와 운치 있는 계곡을 충분히 활용하려던 조선 건축가의 기획이 느껴지는 지점이다. 사계절 내내 각 계절과 어울리는 수려한 자태를 만날 수 있을 듯하다.


석파정에서 가장 높다는 '너럭바위'로 올라갔더니 그 웅장함이 인왕산을 닮아 크기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 기세에 압도당한 채 '통일신라 삼층석탑'까지 관람을 마치니 사랑채 앞 '소수운렴암(巢水雲簾菴-물속에 깃들어 구름을 발簾로 삼는다)'이란 암반으로 도착했다. 암반에 서서 바라본 사랑채는 한층 더 깊고 그윽했다.

▲인왕산 '너럭바위'는 비범한 생김새와 영험한 기운 덕에 소원 바위, 행운 바위로도 불린다. 노부부가 득남을 빌어 소원을 이뤘다는 전설이 얽혀있다.

계곡과 숲, 기암괴석을 그대로 둔 채 적소에 배치한 사랑채와 안채 그리고 정자는 그 자체로 풍경이었다. 세상과 거리를 두었으나 결코 등지지 않은 석파정에선 마음에 쌓인 먼지가 차분히 가라앉는 듯했다. 단풍은 미약했으나 서울 한복판에서 품위 있는 가을을 온전히 누린 시간이었다. 게다가 천경자 화백의 몽환적인 예술혼까지 향유하게 되어 격조 있는 석파정이 한층 더 두드러졌다.


예술과 사람, 자연과 건축, 계절과 공간, 북악과 인왕이 어우러진 가을에 기대어 본래의 속도를 되찾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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