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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미 Jul 29. 2022

호위무사의 붉은 장미

사내 연애 2

모임 후 귀가 시간이 선배 언니와 방향이 같은 직원이 먼저 출발했다. 나도 방향이 같은 직원이랑 같이 귀가하면 그만인 것을 굳이 그가 바래다 준다고 따라나섰다. 나는 중랑구 그는 마포구, 방향이 반대라 누가봐도 비효율적인 에스코트여부담이었다.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니어서 혼자 가는 게 별문제 아닌 날도 바래다 준다 할 땐 솔직히 불편했다. 날 데려다 주고 돌아가는 길이 너무 멀어 때론 염치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처음엔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지만 큰형님 댁에 살고 있어 되도록이면 민폐덜 끼치려는 궁리로 이해하고 넘겼다. 얹혀 사는 사람의 생활 방식. 이른 출근 늦은 퇴근을 실행하는 독립 전의 사회 생활자. 불손하지도 않아 다른 뜻은 없을 거라고 내 방식을 반영한 결론을 내리고 부담을 덜었다. 괜찮다고 만류해도 본인이 원해서 하는 일이니 그냥 두기로 했다.


그 후로도 모임은 지속되었고 집으로 가는 길엔 늘 그가 옆자리를 지켰다. 일상적인 절차라고나 할까? 어느 순간부터 그의 호위는 그대로 굳어 철칙이 되었다. 요즘 흔히 사용하는 말로 '루틴' 그 어드메쯤...


그러던 어느 날인가, 불쑥  말이 있다며 만나자다.


둘이?

이 무슨 해괴망측? 

모임에서 보면 되지 구태여 따로?


의문스러운 파문이 자발스럽게 퍼져나가 생각의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직장 동료로 마음의 경계를 푼 지 오랜데 재조정해야 하는 시점이 온 것 같아 불안했다. 약속 장소 가는 내내 무슨 얘길 꺼낼, 짐작이 맞다면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몹시 혼란스러웠다.


당황스럽게 해서 미안하다며 쑥스러운 듯 붉은 장미를 건넸다. 좋아하게 됐다고 말하는 입술에 잔떨림이 선명했다. 같은 부서라서 고백이 빗나가면 퇴사까지 불사할 일이라 고민이 깊었다고 했다. 거듭 생각했지만 사사로운 것들에 얽매여 말도 못하고 지나간다면 훗날 반드시 후회할 것 같아 용기를 냈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그동안 집까지 호위한다는 핑계로 스캔했다는 건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이런 발칙한)


마음을 열었다가 어긋날 경우 어색해질까 봐 고민한 흔적이 역력히 전달되었다. 생각이 복잡한 나 역시 간단하게 결정할 일은 아니어서 며칠 고민해보겠다고 답을 미뤘다. 모임에서 만난 인연인 데다 집까지 호위해준 그간의 노고를 생각하면 거절하기도 민망했다.


모임을 하면서 수차례 만나본 결과 한결같다는 말을 형상으로 빚으면  사람이겠구나, 알게 되었다. 수트가 잘 어울리는 남자는 아니지만 수트처럼 진중사람으로 보였다. 상대가 힘들 때 마음 한 조각 떼줄 수 있는 넉넉한 사람이겠구나, 생각했다. 그런 사람이 사방으로 러가는 내 마음을 고정하는 남자이고 싶다는데 선뜻 결정하기 어려웠다. 역시나 같은 회사 같은 부서가 망설임으로 작용했다. 며칠을 고민했지만 똑부러지게 답할 수 없었다. 만남 자체에서 파생될 여러 가지가 겁났기 때문이다.  


만약에 헤어지기라도 한다면 기껏 입사한 회사는?

연애사가 들통나 소문 한가운데 갇힌다면?

지금까지 유지된 다섯 명 모임의 즐거움은?


그때나 지금이나 올지 말지 모르는 상황까지 미리 걱정하느라 공적인 공간에 사적인 감정을 내려놓기가 두려웠다. 시간은 공정하게 흘러 갔고 생각은 여전히 제자리를 맴돌았다. 그 사이 모임은 진행되고 귀가 시간 옆자리는 늘 그렇듯 그의 몫이었다.


때때로 퇴근 길 전철역에서 우연히 만나(우연을 가장한 그의 작전일 수도 있으나 우연으로 결론) 밥먹고 가자기에 식사를 했다. 채근하며 묻지 않기에 아무런 대답없이 자연스럽게 만났다. 둘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갈수록 잦아졌고, 머뭇거리사내 연애는 시나브로 물꼬가 트였다. 햇볕이 돋보기를 타고 한 지점으로 모이듯 그와 나는 어느 새 '우리'라는 지점에 집중하게 되었다. 걱정했던 여러 가지들이 해소된 건 아니지만 수면 위로 떠오르지도 않았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라며 안면 근육을 미세하게 떨던 그가 조심스럽게 건넸던 그 옛날 붉은 장미. 붉은 장미와 함께 마음을 내놓았던 그날은 비오는 수요일이었다.

 

수요일에는 빨간 장미를 그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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