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6구 45자 내외로 읊는 우리 민족의 정형시 시조가 발생한 것처럼 5-7-5 운율로 써내려간 17음절의 일본 전통시 하이쿠가 있다.
일본어 이외의 하이쿠에서는 5-7-5 음의 제약이 없고계절을 나타내는 단어도 없는 경우가 많다.[원래 하이쿠는 계절의 특성을 드러내는 계어(季語)를 포함하는 것이 특징]
"열일곱 자에 불과한 한 줄 시에 담긴 의미를 설명하는데 학자들은 몇 시간씩 열을 올리며 강의를 한다."고 류시화 시인은
<한 줄도 너무 길다>는 하이쿠 엮음집에서 밝히고 있다. 계절과 자연을 노래하는 중에도 인간의 참본질이 깊이 서려있기 때문에 수백 년 전부터 시작된 하이쿠가 지금은 전 세계에서 가장 짧은 장르의 문학으로 대접받고 있단다.
한 줄의 시지만 감상하는 이의 경험이나 사색에 따라 그 울림이 다양하게해석되는독특한 문학이다.
자세히 보니
냉이꽃피어있다
울타리 옆
-바쇼-
매일 다니던 길인데도 처음 보는 존재가 낯설게 다가올 때가 있다. 원래부터 있던 건데 왜 내 눈엔 띄지 않았던 건지 갸웃거리게 된다.작은 식물도 보잘것없는 사물도 본분을 다해 그 곳을 지키며 피고 저물었던것이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끊임없이 제 구실 하며 자기 자리를 채웠던 것이다. 조금은 모자란 듯해도 냉이꽃처럼 묵묵히 갈길을 가다보면 자세히 봐주는 이가 나타나는 법.
그리하여 결국엔고지에 가 닿으리라.
병이 들었지만
이 국화는 그래도
꽃망울을 맺었구나
-바쇼-
이따금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때 한없이 초라해진다. 그래도 사랑했고 살아냈고 이겨냈다. 그럼 된 거지.
달에 손잡이를 매달면
얼마나 멋진
부채가 될까?
-소칸-
몽테뉴의 수상록 중에
'우리가무언가를 본다는 사실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도 중요하다.'
는 내용이 있다. 둥그런 달을 보고 부채를 떠올린 시인의 시선이 없었다면 감히 달에 손잡이를 매달겠다고 시치미 떼는 시를 만날 순 없었을 것이다. 시인의 참신한 소망이 애틋하다.
뻐꾸기가 밖에서 부르지만
똥 누느라
나갈 수가 없다
-소세키-
소세키의 시에는 '정치인의 초대를 받고 답장으로 쓴 시'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가느다란 연줄에라도 매달려 출세하려는 시대에권력자가 불러줘도 '똥 누느라'나갈 수가 없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