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순미 Oct 28. 2022

하이쿠, 짧기도 하지

일본 전통시

로또 되게 해주세요
성모마리아님
청년아, 로또부터 사고 기도하렴

-이탈리아 청년의 40일 기도 응답-


이것도

하이쿠라 해주시면 안 될까요?

아이쿠!

된다고요?




3장 6구 45자 내외로 읊는 우리 민족의 정형시 시조가 발생한 것처럼 5-7-5 운율로 써내려간 17음절의 일본 전통하이쿠 있다. 

일본어 이외의 하이쿠에서는 5-7-5 음의 제약이 없고 계절을 나타내는 단어도 없는 경우가 많다.[원래 하이쿠는 계절의 특성을 드러내는 계어(季語)를 포함하는 것이 특징]


"열일곱 자에 불과한 한 줄 시에 담긴 의미를 설명하는데 학자들은 몇 시간씩 열을 올리며 강의를 한다."고 류시화 시인은

<한 줄도 너무 길다>는 하이쿠 엮음집에서 밝히고 있다. 계절과 자연을 노래하는 중에도 인간의 참본질이 깊이 서려있기 때문에 수백 년 전부터 시작된 하이쿠가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짧은 장르의 문학으로 대접받고 있단다. 

시지만 감상하는 이의 경험이나 사색에 따라 그 울림이 다양하게 해석되는 독특한 문학이다.

 



자세히 보니

냉이꽃 피어있다

울타리 옆                                

-바쇼-


매일 다니던 길인데도 처음 보는 존재가 낯설게 다가올 때가 있다. 원래부터 있던 왜 내 눈엔 띄지 않았던 건지 갸웃거리게 된다. 작은 식물보잘것없는 사물도 본분을 다해 그 곳을 지키며 피고 저물었던 것이다. 가 알아주지 않아도 끊임없이 제 구실 하며 자기 자리를 채웠던 것이다. 조금은 모자란 듯해도 냉이꽃처럼 묵묵히  길을 가다보면 자세히 봐주는 이가 나타나는 법. 

그리하여 결국엔 고지에 가 닿으리라. 


병이 들었지만

이 국화는 그래도

꽃망울을 맺었구나                 

-바쇼-


이따금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때 한없이 초라해진다. 그래도 사랑했고 살아냈고 이겨냈다. 그럼 된 거지.


달에 손잡이를 매달면

얼마나 멋진

부채가 될까?                         

-소칸-


몽테뉴의 수상록 중에

'리가 무언가를 본다는 사실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도 중요하다.'

는 내용이 있다. 둥그런 달을 보고 부채를 떠올린 시인의 시선이 없었다면 감히 달에 손잡이를 매달겠다고 시치미 떼시를 만날 없었을 것이다. 시인의 참신한 소망이 애틋하다.


뻐꾸기가 밖에서 부르지만

똥 누느라

나갈 수가 없다

-소세키-


소세키의 시에는 '정치인의 초대를 받고 답장으로 쓴 시'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가느다란 연줄에라도 매달려 출세하려는 시대에 권력자가 불러줘도 '똥 누느라' 나갈 수가 없다니! 

한국 정치계의 풍자가 노회찬 의원이 부당한 권력에 날린 촌철살인이 떠오르는 점이다.


“청소할 땐 청소해야지,

청소하는 게 ‘먼지에 대한 보복이다’

그렇게 얘기하면 됩니까?”

했던 각진 한 마디 같은...



부족하지만 살아냈으니 하이쿠, 한  도전해 볼까요?


여의나루역

우짖는 매미 따라

여름이 녹네


수크령이여

넌 무엇에 대하여

고갤 숙이니?


눈 덮인 산중, 

불거진 핏줄에도

봄날은 온다


노란 고무신

코에, 고추잠자리

어! 흔들리

매거진의 이전글 보내지 못한 사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