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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함의 뿌리를 들여다보다

나와의 내면 소통

by 스마일 엘린

나는 왜 늘 긴장하며 살아왔을까.
왜 어린 시절부터 두통에 시달렸을까.


한 번도 깊이 탐구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체질적으로 약한 사람이라 여겼다.


그런데 김주환 교수님의 『내면소통』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내 예민함에는 뿌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사랑을 갈구하던 아이였다.
엄마의 빈자리를 크게 느끼며 자랐고, 온전히 사랑받는다는 확신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공감이나 지지를 받아본 기억도 없다.
그 결핍은 쌓이고 쌓여, 어른이 되어서도 나를 따라왔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지 못한 나는 온전한 어른으로 성장하지 못했다. 인정과 칭찬을 갈구하며 살았고, 자존감은 낮은데 자존심만 강했다.


도전은 두려웠고, 실패는 견딜 수 없을 것 같아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능동적으로 살기보다는 그저 주어진 대로 수동적으로 버텼다.


마흔이 넘어서야 나는 나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볼 용기를 가졌다. 시간을 들여 돌아보며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고, 받아들이고 용서하는 법을 배웠다.






청소년 시절 나는 반항심으로 크고 작은 일탈을 저질렀다. 주택에 살던 때, 부모님 몰래 창문을 넘어 나가 친구들과 어울리곤 했다.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아빠가 놓아둔 현금을 몰래 가져다 쓴 적도 있었다. 구속받는 게 싫었고, 친구들과의 시간이 유일한 도피처이자 위안이었다.


아빠는 늘 무서웠고 강압적이었다. 엄마는 부정적이고 걱정이 많았다. 둘 중 한 분도 나에게 그늘이 되어주지 않았다.


흔들리는 나는 겉돌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게 없었고, 무언가 잘하고자 하는 의욕도 사라졌다.


아빠의 훈육은 잘되라는 뜻이었겠지만, 내겐 공포로 다가왔다.


인정받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오빠는 늘 나보다 학교 성적이 좋았고, 나는 늘 열등감을 가진 채 존재감 없는 아이처럼 느껴졌다.


예민했던 나는 모든 걸 스트레스로 흡수하며 늘 긴장 속에서 살았다. 부모도 친구들도 눈치를 보며 지냈다. 체력은 약했고 운동 습관도 없었다. 사소한 활동에도 쉽게 지쳤고, 그런 습관이 몸에 배어서인지 과민성 대장 증후군과 두통은 늘 나를 따라다녔다.


초등학교 3학년, 두통이 심해 병원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정상. 의사는 말했다.

“스트레스가 원인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때 엄마가 한 말은 아직도 생생하다.
“네가 무슨 스트레스가 있니? 초등학생이 무슨 스트레스야?”


별것 아닌 말이었지만, 내겐 비난처럼 꽂혔다.
공감 대신 상처가 되었다.


바쁜 맞벌이 부모님은 표현에 인색했다. 칭찬보다 꾸중이 많았다. 오빠가 야구 방망이로 맞던 장면은 공포로 남아 있다. 작은 잘못에도 호통과 체벌이 이어졌다. 그렇기에 혼날까 봐 솔직하게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 채 늘 숨기게 되었다.


무엇 때문에 혼났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에 오롯이 남아 있는 건 혼나고 집 밖으로 홀딱 벗겨져 쫓겨난 내 모습뿐이다. 그때의 공포와 수치심, 억울함이 여전히 선명하다.


마당에서 강아지를 끌어안고 울며 그 감정을 삼키곤 했다. 참 많이도 울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에 뾰족한 돌멩이로 손목을 긋기도 했다.
수면제를 사 모으려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두려움과 용기 없음이 그조차 막았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죽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지만, 부모가 되고 나니 그 마음은 조금씩 바뀌었다. 아이를 키우며 부모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했기 때문이다.


부모님도 서툴렀을 뿐, 나름의 최선을 다했음을 이제는 이해하게 되었다. 부모님도 부모는 처음이었으니까.


그제야 나는 부모님을 향한 부정적인 마음을 수용할 수 있었다. 직접 전할 용기는 아직 없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화해가 시작되었다.


이 모든 변화는 책 『내면소통』을 만나면서부터였다. 이 책은 내게 선물 같은 책이었다.


읽는 순간마다 “이건 내 얘기잖아!”라는 생각이 들며 깊이 몰입했다. 그리고 이 책을 만난 2023년을 기점으로 내 인생은 전과 후로 나뉘었다.


니체의 말처럼 “그 하룻밤, 그 책 한 권, 그 한 줄이 인생을 바꿀지도 모른다”는 문장이 꼭 맞았다.


내 몸은 늘 ‘스트레스 반응 스위치’가 켜진 상태였다. 뇌와 몸은 도망자처럼 늘 투쟁·도피 모드에 있었다. 작은 자극에도 편도체는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았고, 그 결과 나는 만성피로 속에 살아야 했다.


책을 읽은 후 나는 마음 근력을 키우기 위한 훈련을 하나씩 실천하기 시작했다.


호흡, 명상, 감사일기, 운동, 그리고 나와의 내면 소통.


작은 실천이 쌓이며 마음 근력의 중요성을 온몸으로 느꼈다. 몸에 근력이 있어야 나이가 들어도 두 발로 설 수 있듯, 마음에도 근력이 있어야 삶의 무게에 흔들리지 않는다.


나는 가장 쉬운 방법, 호흡부터 시작했다.
몸이 굳을 때마다 천천히 들숨과 날숨에 집중했다.
내 상태를 알아차리며 차분히 호흡하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조금씩 풀렸다. 밤에는 명상 영상을 들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마음을 고요하게 다스리려 애썼다.


늘 저변에 깔린 우울감과 무기력 속에 행복을 잃고 살아왔던 내가, 아니 행복이 뭔지도 모르고 살아왔던 내가, 몸이 편안해지자 마음에도 평온이 찾아왔다.

덕분에 수십 년 괴롭히던 만성 두통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두통만 사라져도 삶의 질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그제야 깨달았다.

무탈함이 곧 행복이라는 것을.
몸이 편안해야 행복을 느낄 여유가 생긴다는 것을.
몸과 마음은 따로가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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