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관절염이 가르쳐준 필수 루틴
맘모톰 시술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몸은 또다시 이상 신호를 보냈다.
갑자기 고관절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다리가 뻣뻣하게 굳었다. 하루, 이틀이 지나자 걷는 것조차 힘들어졌고, 양반다리나 쪼그려 앉는 자세는 도저히 할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미국에서 코로나로 운동을 멈췄던 습관이 한국에 와서도 이어졌다. 바로 운동을 시작하지 않고, 책을 읽고 영어 낭독하고 글을 쓰느라 하루 종일 앉아만 있었다.
스트레칭 한 번 없이 잘못된 자세로 오래 앉아 있다 보니 고관절은 점점 경직되어 갔다. 다리가 늘 붓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불편함을 감수하기 싫어 그냥 모른 척했다.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싶었으니까.
결국 ‘천장관절염’이라는 이름으로 몸은 나에게 신호를 보냈다.
통증을 줄여보려고 이곳저곳 병원을 다녔다. 그러나 한 번 탈이 난 몸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천장관절염 진단에 더해 초기 강직성 척추염 가능성까지 언급되며 류머티즘내과 진료까지 권유받았다.
“또 염증이라니… 이제는 골반까지 번진 건가?”
몸에 화가 났다. 하지만 화를 낸다고 달라질 건 없었다. 결국 이 몸을 받아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예민한 내 몸이 늘 불만스러웠다. 사소한 자극에도 금세 반응하고, 쉽게 피로해지고, 자주 아프며, 자꾸 신호를 보내는 몸이 싫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바로 그 예민함 덕분에 큰 병으로 번지기 전에 이상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이 예민한 몸은 나를 지켜주는 장치이자 주어진 선물인지도 모른다.
CT와 MRI를 찍고 약을 먹고, 물리치료도 받고, 한의원에서는 악소리 나게 아픈 두꺼운 침을 맞았다. 신경통증의학과에서는 신경 주사를 맞았는데, 순간 머리가 핑 돌면서 쓰러질 것 같았다. 아찔한 느낌이 드는 순간이었다. 불현듯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이후 다시 그 병원을 찾지 않았다.
그때 깨달았다. 이런 치료들은 모두 일시적일 뿐이라는 사실을. 순간의 완화는 있을지 몰라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는 것을.
그래서 결심했다.
“이제는 근본적인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한다.”
마침 수년째 디스크로 고생하던 지인이 재활운동 선생님을 권해 주었다. 약물로는 통증만 완화할 뿐이었는데, 놀랍게도 꾸준히 재활운동을 하자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천장관절염으로 큰 고생을 했고 지금도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다만 그 경험은 운동의 필요성을 절실히 깨닫게 해 주었다.
더 이상 운동을 미루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지금은 운동이 나의 최우선순위가 되었다.
만약 그 몸의 신호가 아니었다면, 나는 여전히 ‘숨쉬기 운동’만 하며 시한폭탄을 몸속에 안고 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깨달음은 단순했다.
염증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피곤하거나 무리하면 언제든 다시 찾아온다.
질염, 외이도염, 피부염, 방광염, 후두염… 피로가 쌓일 때마다 온몸에서 신호가 울렸다. 골반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자기 계발을 위해 해 오던 영어 낭독, 독서, 글쓰기조차 과하면 탈이 났다.
몸은 언제나 신호를 보낸다.
그것은 내 몸이 보내는 위험 신호다.
그 신호들은 언제나 한 가지를 향해 있었다.
내 몸의 소리를 알아차리고, 나를 돌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