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란.
2023년 9월, 30년 지기 베프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냈다.
그녀는 30대 초반 유방암을 앓았지만 수술과 치료 후 완치 판정을 받았다. 그 후 8년 동안 그녀는 건강을 챙기며 잘 살았다.
그러나 2021년, 암이 전이됐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감당하기 힘든 스트레스를 겪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몹쓸 암 덩어리가 다시 퍼진 것이다.
그 후 1년 반 동안, 그녀의 남편이 주재원으로 해외에 나가 있던 탓에 그녀와 함께 나는 병원을 다녔다. 가까이에서 그녀의 아픔을 지켜보는 시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연속이었다.
처음 항암을 시작할 무렵, 병원 지하 이발소로 그녀와 함께 내려갔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기에 스스로 삭발을 결심한 것이다. 의자에 앉아 바리캉이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애써 담담하려 했던 그녀, 그리고 바닥에 수북이 떨어지는 긴 머리카락을 바라보며 울음이 목 끝까지 차올랐던 나.
그러나 내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면 그녀가 더 힘들어질까 봐 꾹 참았다. 그날의 공기, 바닥에 흩어진 머리카락까지 아직도 생생하다.
수차례 이어진 독한 항암은 암세포는 죽였을지 몰라도 그녀의 면역은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수혈 직후 받은 항암은 결국 간을 공격했고, 야위어 가는 그녀의 얼굴과 노래지는 눈빛을 보는 것은 너무도 힘들었다.
죽기 전날, 앙상하게 마른 몸으로 나를 바라보며 힘겹게 내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들리지도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그냥 가고 싶어. 너무 힘들어…”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말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 장면을 잊을 수 없다.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선명하게 남아 있어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무너진다.
그녀와의 추억은 동네 곳곳에 남아 있다. 같은 동네에 살며 밥도 수없이 함께 먹었다. 핫플 카페가 생기면 늘 함께 갔다. 그래서일까. 여전히 그녀와 함께 갔던 식당을 지날 때면 그녀가 사무치게도 보고 싶다.
납골당에서 바라본 한 줌의 재는, 결국 삶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다시금 일깨워주었다. 아직도 그녀가 떠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그저 주재원으로 잠시 외국에 나가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며칠 전, 그녀의 2주기를 맞아 납골당에 다녀왔다. 그녀의 웃는 사진을 바라보는데, 가슴 한쪽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올라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그녀를 떠나보내며 수없이 자문했다.
‘결국 죽으면 한 줌의 재로 남을 텐데, 우리는 무엇을 위해 그렇게 욕심내며 스스로를 괴롭히며 살아가는 걸까?’
그날 이후 나는 다짐했다.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을 더 누리고, 하루하루를 감사히 여기며, 작은 행복을 더 깊이 느끼며 살아가야겠다고.
행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무탈하게 사는 것 자체가 행복임을 새삼 깨달았다. 그것이 그녀가 내게 남긴 마지막 선물이었다.
하지만 무탈함은 저절로 찾아오지 않는다.
잘 자고, 잘 먹고, 꾸준히 운동하며, 마음을 돌보는 것.
그 기본을 지킬 때 비로소 무탈함이 가능하다.
결국 행복은 이 기본에서 비롯된다.
베프를 떠나보낸 무렵, 나는 임재범의 신보를 우연히 접했다.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난 아내를 보내고 7년간 칩거하다, 2021년 다시 무대에 선 그의 노래였다. 아버지까지 떠나보낸 뒤 불러낸 노래라서일까, 가사 하나하나가 내 마음을 후벼 팠다. 그의 노래가 슬픔을 음악으로 승화시킨 것처럼, 나는 그 시기 전자책을 쓰며 글로 슬픔을 흘려보내고자 했다.
베프를 보낸 지 1년 되는 날, 그녀가 좋아하던 성시경의 노래 〈내게 오는 길〉을 들으며 납골당을 찾았다.
“넌 나의 기억 속에 항상 있을 거야.”
가사의 한 줄이 그날따라 더 크게 가슴을 울렸다.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만난 친구, 이제는 사진 속에서만 웃고 있다.
나는 마흔 중반을 넘어 여전히 살아 있고,
살아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더 깊이 느낀다.
공수래공수거.
태어날 때 빈손으로 와서 죽을 때 빈손으로 간다는 말.
결국, 죽으면 한 줌의 재일뿐이다.
그러니 욕심내지 말고, 오늘 하루를 더 감사히 여기며, 소소한 행복을 찾아야 한다.
삶은 영원하지 않다.
내 곁에 늘 있어줄 것 같던 사람도, 언제든 갑자기 떠날 수 있다. 나 역시 그러하다.
오늘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감사와 애정을 표현하며 살아야 한다.
그리고 조용히,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결국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