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운동하는 이유
운동을 시작한 계기는 결국 시련이었다.
몸은 오래전부터 크고 작은 염증으로 경고음을 울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않은 채, 약에만 의존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 결과는 분명했다. 천장관절염이 찾아왔고, 맘모톰 시술대에 누워 있는 순간,
더는 운동을 미룰 수 없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 무렵, 친구와 어머니의 죽음까지 이어졌다. 가까운 사람들의 마지막을 곁에서 지켜보는 경험은 내 안에 깊은 균열을 남겼다.
몸이 무너지면 마음도 함께 무너진다는 사실을, 그때 분명히 알았다. 스트레스와 면역 저하가 여러 염증의 뿌리라는 것도.
‘나는 왜 그렇게 어리석었을까.’
두 번의 장례를 치르며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코로나로 집에 갇혀 있던 시간, 집에서라도 몸을 움직였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땐 몰랐다. 몸이 정신을 지배한다는 것, 건강한 몸이 있어야 마음이 건강해질 수 있다는 것, 의지 하나로는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어릴 적 아빠는 늘 내게 말했다.
“정신력만 있으면 뭐든 다 할 수 있다.”
그 말은 절반만 맞았다. 체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의지도, 정신력도 오래가지 못한다. 나에게 필요한 건 벼락같은 결심 한 번이 아니라, 매일을 지탱해 주는 체력이었다.
팬데믹 동안 나는 확실히 알았다. 혼자 두면 운동을 절대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그래서 결심만 되뇌는 대신, 나를 강제로라도 움직이게 만드는 장치를 만들었다.
가장 확실한 장치는 돈이었다. 운동에 투자하는 비용은 훗날 병원비를 미리 줄이는 셈이라고 받아들였다. 처음엔 가정주부인 내가 매달 재활 PT 비를 쓰는 게 괜찮을까, 사치가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곧 마음을 고쳐먹었다. 내 건강을 지키는 일이 곧 가족의 건강을 지키는 일이니까.
그렇게 선택한 첫 운동은 필라테스였다.
천장관절염의 뿌리를 찾다 보니, 단순한 염증 문제가 아니라 내 자세와 코어의 부족이 문제라는 결론에 닿았다. 재활 선생님이 지도하는 필라테스 수업을 등록하고, 첫날 내 몸을 스캔해 봤을 때는 충격이었다.
사진으로 찍힌 내 자세는 거북목에, 굽은 등, 앞으로 밀려 나온 골반.
“내가 이렇게 서 있었단 말이야?”
믿기 힘들었다. 나는 한 번도 내 몸이 이렇게 기울어져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했다. 하지만 잘못된 습관이 쌓여 발현된 결과였다. 병도 하루아침에 오지 않듯, 나쁜 자세 역시 오랜 시간 조금씩 쌓이며 몸을 무너뜨리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골반을 앞으로 빼는 습관은 아이를 안고 버티던 자세에서 비롯됐다. 힘이 없으니 골반으로 버텼고, 그 자세가 20년 동안 굳어버렸다.
지금 다시 해보면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이렇듯 의식적으로 고치려 하면 바뀐다. 못 하는 게 아니라, 대부분은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것일 뿐이다.
바른 자세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땀이 났다. 중립 골반, 곧게 편 등, 목과 어깨선이 나란히 놓이는 기본자세조차 내겐 낯설고 힘겨웠다.
하지만 그 노력은 무엇보다 값졌다. 필라테스를 하며 나는 알았다. 운동이 단순히 근력을 키우는 게 아니라, 삶의 기반을 ‘리셋’하는 작업이라는 걸.
그때부터 스스로에게 세운 원칙은 단순하다.
운동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운동은 언제나 나의 Top Priority다.
건강한 마음은 건강한 몸에서 비롯된다.
나는 체력에 관한 문장에 늘 꽂힌다. 아마도 늘 부족했던 체력이 한처럼 남아 있어서일까. 의욕에 불타 무언가를 시작하다가도 금세 나태해져 소파에 누워 핸드폰만 스크롤할 때면, 드라마 미생의 한 대사가 어김없이 떠오른다.
“네가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체력을 먼저 길러라.
네가 종종 후반에 무너지는 이유,
회복이 더딘 이유,
다 체력의 한계 때문이다.
정신력은 체력의 보호 없이는 구호밖에 안 된다.”
정말 맞는 얘기다.
실제로 나는 늘 체력이 약했다. 무언가를 시작해도 오래가지 못했고, 곧 아파서 중도에 포기하곤 했다. 그렇게 흐지부지 끝난 경험이 쌓이자 자신감과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결국 새로운 도전조차 두려워졌고, 실패가 두려워 아예 시작조차 미루기도 했다.
아빠는 매번 나를 볼 때마다 운동하라고 했다. 탄천을 걸으라고, 유모차를 밀고라도 나가라고. 하지만 나는 피곤했고, 귀찮았고, 결국 움직이지 않았다. 그 대가는 만성 두통과 염증투성이의 몸이었다.
이제야 안다. 체력이 먼저라는 것을. 체력도 실력이라는 것을.
운동을 꾸준히 하며 알았다. 운동만큼 확실한 처방은 없다는 걸. 땀을 흘리고 나면 스스로를 칭찬하게 되고, 작은 성취가 하루하루 쌓이며 마음의 톤이 달라졌다. 체력과 정신력은 비례한다는 말을 몸으로 이해하게 된 것이다.
아직 나는 ‘헬린이’지만, 저질 체력으로 늘 누워 지내던 예전의 나는 아니다. 수년간 나를 괴롭히던 만성 두통도 사라졌다.
35kg 바벨을 어깨에 올릴 때마다 겁이 나지만,
그 순간마다 속으로 다짐한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그 짧은 독백이 바로 자기 긍정의 확언이다.
운동이 내게 준 가장 큰 가르침은 단순하다.
그냥 되는 건 1도 없다는 진리다.
몸은 야속하게도 정직하다. Reap what you sow. 뿌린 대로 거둔다. 운동은 쌓은 만큼만, 그것도 복리처럼 돌아온다. 이 진리를 이제야 받아들인다.
나는 더 이상 ‘안 돼’라는 말에 머물고 싶지 않다.
직립보행으로, 자립적으로, 엣지 있게 늙어가고 싶다. 누구의 짐이 되지 않고, 내 두 다리로 걷고, 내 손으로 먹고, 내 힘으로 화장실을 갈 수 있는 기본권을 지키는 삶을 살고 싶다.
치매 없이 또렷한 정신으로, 내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나답게 살고 싶다.
그것이 내가 바라는 죽음이고,
그래서 오늘도 운동화를 신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