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각자의 페이스로
여전히 근육량 보통 이하의 헬린이지만 어느덧 4년째 근력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문제는 늘 유산소였다. “해야 하는데, 해야 하는데…” 생각만 가득했지 실행은 미뤄졌다.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이 늘 발목을 잡았다.
나의 가치관과 맞닿아 있는 정희원 교수님을 좋아한다.
30대 우울의 터널에서 나를 꺼내준 이가 서인국이었다면,
건강한 삶의 궤도로 실질적으로 이끌어준 분은 정희원 교수님이었다.
좋은 ‘덕질’의 예다. (웃음)
그분을 덕질하고부터 내 건강은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으니까.
사람은 결국 곁에 두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정희원 교수님은 책과 여러 채널에서 늘 강조하셨다.
“나이 들수록 네 가지 운동이 모두 필요합니다. 근력·유산소·유연성·균형.”
“느리게 나이 들려면 유산소를 반드시 병행해야 합니다.”
“달리기는 마음을 평온하게 해주는, 최고의 자기 돌봄입니다.”
또 이렇게도 말씀하셨다.
“하루 만 보 걸었다고 ‘운동했다’고 생각하면 곤란해요.”
그 말이 내 마음을 제대로 찔렀다.
내 달리기의 점화가 정희원 교수님 덕분이었다면,
굳히기는 김주환 교수님 덕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꼭 더하고 싶은 분들이 있다.
<길 위의 뇌>를 쓰신 정세희 교수님,
<달리기가 필요한 시간>의 권은주 감독님.
그 책들이 내게 “달리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만드는 데 큰 몫을 했다.
나는 정말 럭키하다.
마흔 중반에 이렇게 귀한 분들을, 그것도 딱 ‘필요한 때’에 만나다니.
이 연결고리들이 새삼 고맙다.
작년, 생애 첫 달리기를 시작할 때만 해도 1km조차 못 뛰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5km를 멈추지 않고 달리는 사람이 되었다. 비록 5km일지라도 ‘안 쉬고 끝까지 간다’는 사실은 강력한 자신감을 준다. 이건 자기 효능감이다.
내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나면 자신감이 올라간다. 체력도 실력이다. 체력이 받쳐주는 사람은 움츠러들지 않고 도전을 잘 해낸다. 반대로 체력이 약하면 시작은 해도 끝까지 끌고 갈 지구력이 모자라다.
달리기를 결심하게 만든 직접적인 계기는 건강이었다. 천장관절염으로 엉덩이 통증과 보행의 불편함을 겪으면서 “정말 걷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뼛속까지 스몄다. 내 의지대로 걸을 수 없을지 모른다는 감각이 찾아온 뒤, 비로소 건강의 소중함이 내면 깊숙이 내려앉았다.
내 인생에 ‘달리기’는 계획에 없었다. 걷기조차 잘하지 않던 내가 달리기라니. 고관절이 나빠진 직후엔 일주일에 PT 두 번 + 필라테스 두 번, 총 네 번 운동을 했다. 스스로 “이 정도면 됐지”라고 위안을 삼기도 했다.
그런데 하루 24시간 중 운동 1시간으로는 몸 상태가 확 좋아지지 않는다는 걸 곧 깨달았다. 앉고 서고 걷는 일상의 기본자세와 생활 습관이 더 중요했다.
어떤 날은 천 보도 채우지 못한 날이 많았다. 집에서 식사 차리고 설거지하는 일 외에는 거의 누워 있었다. 당연히 충분하지 않았다.
그 무렵 읽은 『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이 나를 깨웠다. “네 가지 운동을 모두 하십시오.” 그리고 “주 3회 이상 중·고강도 운동을 해야 합니다."
(달리기는 속도에 따라 중강도가 될 수도, 고강도가 될 수도 있다.)
나는 결심만 되뇌는 대신 환경 설정을 했다. 생애 첫 마라톤, 지구런 5km에 신청했다. 짧은 거리라 해도 내겐 역사적인 사건이다. ‘신청 완료’ 버튼을 누르는 순간부터 가슴이 쿵쾅거렸다. 기대 반, 두려움 반이었다. 이게 바로 기분 좋은 도파민이었다.
역시 등록은 강력한 힘이었다. 신청하고 나니 자연스레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게 된다.
첫날, 2분도 못 뛰어 숨이 턱 막혔다.
심박수는 180을 훌쩍 넘어섰다.
'할 수 있을까?' 불안이 밀려왔지만 스스로를 다독였다. '괜찮아. 천천히, 나의 페이스로 달리면 돼.'
선배 러너친구들 조언대로 런데이 앱을 깔아 음성 가이드를 따라 걷고 뛰고를 반복했다. 아주 조금씩 달릴 수 있는 거리가 늘어났다.
그리고 마침내 결전의 날. 떨림 반 설렘 반, 이른바 마라톤 뽕을 제대로 맞으며 첫 5km 완주했다. 연습 때보다 기록은 훨씬 단축되었다.
하지만 속도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해냈다”는 사실이 전부였다. 그 순간,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늘 자신 없던 내가 스스로에게 “할 수 있다”를 증명한 날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았다. 내 두 발로 5km를 뛰었다는 그 사실이, 나를 온전히 행복하게 만들었다. 행복이 별것 아니었다. 그거면 충분했다. 과거 행복을 느끼지 못했던 나에 비하면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 자체가 너무나 감사했다.
더 무엇이 필요할까.
달리기를 막 시작했을 무렵, 내 가슴을 가장 뜨겁게 뛰게 한 프로그램이 있었다. 바로 〈무쇠소녀단〉.
그녀들이 철인 3종 경기를 완주하던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사이클, 달리기, 수영을 모두 끝내고 결승선을 통과하는 얼굴에는 땀과 눈물이 뒤섞여 있었다. 기록도, 순위도 아니었다. 끝까지 완주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녀들은 눈부셨다.
넘어지고 지쳐도 다시 일어나 결승선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에서 큰 울림을 받았다.
‘저런 몸과 마음의 힘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가장 빛나는 사람이구나.’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달리기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끝내 자신을 지켜내는 서사라는 것.
그래서 나도 달리기를 계속하고 싶었다. 작은 걸음부터 내 한계를 넘어가는 경험을 하고 싶었다.
그 후로 몇 개월 뒤 러닝 크루와 함께 달린 날은 또 다른 차원의 행복이었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째는 수월했다. 이번에는 걷뛰가 아닌 ‘뛰기’로 5km를 완주했다. 자신감이 생겼다. '10km도 할 수 있겠는데!'
체력이 늘어난다는 건 곧 자신감이 자라는 일이다. 내 몸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 많아질수록 삶의 가능성은 넓어지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와 설렘으로 다가왔다.
2024년 11월, 더 퍼스트 러닝 크루와 함께한 시즌 오프 레이스는 공식 기록이 없는 5km였지만 내겐 의미가 아주 컸다.
차가운 공기와 햇살에 반짝이는 강변 뷰, 푸른 하늘, 그리고 함께 달리는 사람들. 묘한 동질감과 ‘함께의 힘’이 마치 내 몸을 밀어주는 듯했다. 그래서인지 대회에 나가면 늘 평소보다 페이스가 1분은 빨라진다. 평소처럼 달리는데도 기록이 앞당겨진다. 아, 이게 바로 ‘대회뽕’인가 보다.(웃음)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 하프마라톤 공지가 눈에 들어왔다. 5km 종목은 없고 10km와 하프만 있었다. 마음이 꿈틀거렸다. 이미 5km를 두 번 뛰었으니, '이번엔 10K도 가능하지 않을까?' 혼자 조용히 신청 버튼을 눌렀다.
처음엔 겁이 났다. 단 한 번도 10km를 뛰어본 적이 없으니까. 1시간 30분 커트라인에 못 들어와 실격될까 두려웠다. 꾸준히 4~5km는 뛰었지만, 10km는 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목표를 분명히 했다. '다치지 않고 1시간 30분 내 완주.'
대회 며칠 전, 걷기와 뛰기로 10km를 시험했다. 약 1시간 30분이 걸렸다. “완주할 수 있다”는 사실 확인만으로 충분했다. 불안은 사라졌다. 불안은 결국 준비가 안 되었을 때 찾아온다는 걸, 이번에 확실히 알았다.
대회 당일, 나는 나의 페이스를 지켰다. 타인의 속도에 휘둘리지 않고, 심박수에 집중하며 왼발, 오른발을 내디뎠다. 광화문에서 여의도공원으로 이어지는 길목, 노래를 들으며 달리는데 여러 번 울컥했다. '내가 지금 달리고 있다니.' 믿기지 않는 벅참이 목까지 차올랐다.
존 2 러닝으로 무리하지 않은 덕에 결승선에 도착하고도 에너지가 남아 있었다. '하프도 하겠다'는 자신감이 올라왔다. 저질 체력이라 스스로를 가두던 내가, 내 몸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나는 경험이 이렇게 기쁠 줄이야.
문득 돌아본다. 혹시 나는 ‘저질 체력’이라는 말에 스스로 갇혀, 불편함을 감수할 노력조차 미뤄온 건 아니었을까?
이제는 안다. 체력은 조금씩 바꿀 수 있다는 걸. 당장 체력 만빵인 사람은 아니더라도, 예전보다 ‘덜 저질 체력’이 될 수는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성과이자 성장이다.
조앤 치티스터의 말처럼,
We are not here to win. We are here to grow. 우리는 이기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다. 성장하기 위해 태어났다.
조금이라도 어제의 나보다 나아지면 그만이다. 누구와도 비교할 필요가 없다. 나의 성장에만 집중하면 된다. 그러면 된다.
달리기와 근력운동은 몸의 근육뿐 아니라 마음의 근육도 함께 키운다. 재활 PT를 시작할 땐 20kg도 버겁더니, 어느 순간 40kg을 들 수 있게 되자 정신력이 쓱 끌어올려지는 걸 느꼈다. 달리기도 같았다. 1km도 버겁던 내가 10km를 달리는 사람이 되자, 자기 효능감이 또렷이 올라갔다. 내 몸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 많아질수록 행복감도 커졌다.
예전엔 시작해도 곧 포기하던 나였지만, 이제는 버텨낼 힘이 있다. 불안도, 피로도, 슬럼프도 달리면서 흘려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그 과정에서 나를 조금 더 어여삐 여기는 다정함도 생겼다. 스스로를 사랑한다는 건, 생각보다 더 많은 걸 바꾼다.
그 무렵, 김주환 교수님이 이틀간 진행한 내면소통 명상회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른 건 다 잊어도 괜찮습니다. 단 하나만은 꼭 기억하세요. 존 2 러닝은 반드시 하셔야 합니다.”
그 말 이후 나는 존 2 러닝을 더 의식적으로 실천했다.
존 2로 달리면 숨이 차지 않는다. 달리기가 고통이 아니라 즐거움이 되어, 꾸준함이 훨씬 쉬워졌다. 동시에 명상 같은 효과도 있었다. 몸의 신호를 세심하게 알아차리는 시간, 디지털 디톡스의 시간이 된 것이다.
김주환 교수님의 내면소통 명상 기본 과정 중에서도 ‘달리기 명상’ 회차가 특히 마음에 와닿았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김주환 교수님에 의하면, 존 2 러닝은 최대 심박수의 65~70% 수준에서 달리는 방식이다. 산소 부채가 생기지 않아 힘들지 않고, 미토콘드리아 기능을 강화해 항노화에도 탁월하다.
숨이 가쁘지 않으니 내 몸의 신호가 더 선명히 들려왔다. 몸이 무겁거나 호흡이 거칠어지는 날은 대개 과로, 스트레스, 수면 부족이 겹친 날이었다.
그럴 땐 속도를 낮추고 호흡을 고르며 다시 천천히 달렸다. 그러면 러닝은 단순한 운동을 넘어, 나를 회복시키는 저속노화적 자기 돌봄이 되었다.
존 2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려울 때도 있다. 특히 심폐 기능이 약한 나는 조금만 서둘러도 심박수가 금세 치솟는다. 그럴수록 의식적으로 호흡과 보폭을 다잡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발걸음과 호흡이 고요히 맞아떨어지는 찰나가 찾아온다.
그때 비로소 달리기는 ‘명상’이 된다.
어느 날은 이런 경험도 했다. 벌려만 놓고 제대로 해내지 못한 내 모습이 답답해, 하루 종일 마음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런데 밤에 달리고 돌아오니, 기분이 확 달라졌다.
정희원 교수님 표현처럼, 달리기는 “슴슴한 잡곡밥 같은 도파민”이었다. 즉각적이진 않지만 은근히 삶을 지탱하는 힘.
달리기를 하면서 더 확신하게 된 사실이 있다. 운동은 단순히 몸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태도’도 바꾸는 일이라는 것. 달릴 수 있는 몸은 자립적으로 살아갈 힘을 준다. 그것은 결국 늙어가되 무너지지 않고, 자기답게 살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달린다.
빠르지 않아도 괜찮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나의 페이스대로.
달리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