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래공수거, 삶의 덧없음을 마주하다
울산에 내려가 어머님을 뵈었다.
코에 줄을 꽂고 수액만 맞고 계셨다. 고형 음식은 도저히 소화할 수 없어 액체류만 조금씩 넘기고 계셨다. 늘 식탐이 좋으셨고 체구도 있으셨던 분인데, 70kg이 넘던 몸무게는 어느새 48kg로 줄어 있었다. 앙상한 뼈만 남아 계셨고 혼자서는 화장실 거동도 힘들어 소변줄을 차고 계셨다.
그 앙상한 몸을 보는 순간, 얼마 전 떠나보낸 베프의 모습이 겹쳐졌다. 젊고 활기차던 시절의 어머님 모습은 어디에도 없고, 마른 몸만 남아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어머님은 내게 시어머니 같지 않은 분이었다.
결혼 18년 동안 늘 나를 “새아가”라고 부르며 아껴주셨다. 아이들을 낳고 잘 키워줘서 고맙다고, 사소한 일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나는 친정엄마에게도 잘 들어보지 못했던 그 다정한 말들을, 어머님께는 자주 들었다. 때로는 주책맞은 말씀으로 속을 긁을 때도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덮고도 남을 만큼 사랑을 주신 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눈앞에 누워 계신 어머님의 모습이 너무 낯설고, 가슴이 아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신랑에게 말했다.
“왠지 오늘이 마지막일 것 같아.”
그날따라 유난히 하늘은 파랬다.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니 오히려 더 큰 슬픔이 밀려왔다.
문득 생각했다.
‘이렇게 초라하게 죽고 싶지 않다. 곱게 늙고 싶다. 직립보행하며 살다가 잠깐 아프고, 평온하게 죽음을 맞고 싶다. 욕심내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평온하게 삶을 마무리하는 것. 그것이 축복이고 가장 큰 행복이 아닐까.’
며칠 후, 그 예감은 맞았다.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셨다.
장례식장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젊은 날의 어머님 사진을 보는데, 마음 한편이 아려왔다. 액자 속 웃음과 지금의 부재가 도저히 이어지지 않는 두 장면 같았다.
어머님의 삶은 늘 병과 함께였다.
신랑을 만나기 전부터 유방암으로 고생하셨고, 첫째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궁경부암으로 또 힘든 시간을 보내셨다. 돌 지난 아이를 안고 병원을 오가던 날이 선명히 떠올랐다. 이후 건강을 회복하시며 활기차게 지내셨지만, 세월은 다시 잔인하게 소장을 공격했다. 결국 그 병마는 어머님을 데려갔다.
친구와 어머님의 죽음 앞에서 나는 깨달았다.
암에는 ‘완치’라는 게 없다는 것을. 완치 판정을 받았다 해도 암세포는 어딘가에 숨어 있다가, 스트레스와 면역 저하라는 틈을 타 다시 고개를 든다. 결국 스트레스 관리야말로 무엇보다 중요한 예방법이었다.
베프도 그랬다. 완치 판정을 받은 뒤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은 후 암이 재발했다. 어머님 또한 늘 “참으며 살다 보니 속병이 쌓였다”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젊어서 속 끓이며 살다 보니 병이 된 것 같아. 너는 그렇게 살지 마라. 다 병이 된다.”
그 말씀이 이제 와서는 삶의 유언처럼 다가온다.
어머님의 병세가 나빠진 이후, 남편과 나는 주말마다 울산으로 내려갔다. 4시간이 넘는 길이었지만, 살아계실 때 자주 뵙고 싶었다.
어느 주말,
갈까 말까 망설이다가 왠지 모를 예감이 들었다.
“이번 주는 꼭 가야 할 것 같아. 어쩌면 마지막일 수도 있어.”
그날따라 어머님은 여러 번 전화를 걸어 “언제 오냐”라고 물으셨다.
알고 계셨던 것이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입관식에서 뵌 어머님의 얼굴은 참 평온했다. 고통에서 벗어나 이제는 편안하시기를.
장례식을 치르고 화장터로 향했다.
결국 남는 건 한 줌의 재였다.
그 과정에서 못내 아쉬움이 남는 건, 어머님이 그토록 예뻐하시던 1호가 마지막 배웅을 함께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마 어머님도 서운해하셨을 것이다. 그 생각에 가슴이 또다시 저려왔다.
그리고 49재.
어머님은 생전에 늘 다니시던 절에서 49재를 지내달라고 부탁하셨다. 초재를 올리던 날, 스님이 읽어주시던 글귀가 유난히 마음에 와닿았다.
“빈손으로 오셨다가 빈손으로 가시거늘, 그 무엇을 애착하고, 그 무엇을 슬퍼하랴.
그 무엇에 집착하여 훌훌 털지 못하시며, 그 무엇에 얽매여 극락왕생을 이루지 못하시나.”
공수래공수거.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긴다.
태어날 때 빈손으로 와서 죽을 때 빈손으로 간다.
아무리 재물을 탐하고 권력을 좇아도 결국 모두 부질없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그렇게 아등바등 욕심내며 살고 있을까.
어머님을 떠나보내며 나는 다시 다짐했다.
오늘 하루를 마지막처럼 감사하며 살자.
소소한 행복을 놓치지 말자.
욕심을 비우자.
어머님은 떠나셨지만, 어머님의 사랑은 남는다.
어머님이 평생 내게 건네주신 따뜻한 말, 다정한 시선, 작은 칭찬들.
그 복리 같은 사랑이 지금도 내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 내가 앞으로 살아가는 힘이 되고 있다.
잘 가요, 어머니.
저희 잘 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