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프래질을 읽고
심각하게 어려운 상황에 빠져보라.
나는 필요가 혁신과 발전을 낳는다고 믿는다.
[안티프래질] p68.
올 3월에 번아웃이 왔다. 1인 개발을 한다며 퇴사를 한 지 1년, 나름 도전이랍시고 해커톤도 나가고 사이드 프로젝트도 하고 이런저런 기술들을 배우고 시도했다. 물론 도움이 안 된 건 아니지만 혼자 생계를 벌어야 한다는 목표에는 전혀 효과적이지 않았다. 얼마 남지 않은 런웨이에 그간의 노력이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 걸 보니 언제나 낙관적이었던 내가 일순간 무너져 내리더라.
그때 알았다. 사람은 이렇게나 쉽게 무너지는 존재이구나... 그로부터 몇 주일 동안 정신을 못 차렸다. 언제나 긍정적이었던 내가 하루에도 몇 번씩 흔들렸다. 희망을 다짐했다가도 다시 절망으로 곤두박질치곤 했다. 정신 상태가 이러니 생산성은 자연스럽게 제로에 수렴하게 되었다. 당장은 벌어둔 돈으로 버틸 수 있을지언정 앞으로가 걱정이었다. 매일매일이 불안하고 외로웠다. 기존에 하던 방식이 아닌 다른 행동을 취해야 했다.
나에게는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다.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것. 지인들에게 어찌어찌 추천을 받고 준비를 열심히 하면 할 수 있을 터였다. 다른 선택지는 외주를 받는 것. 외주를 해본 적은 없지만 생계를 유지하려면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내가 가진 시간을 교환하는 아르바이트도 선택지 중에 하나였다. 기존에 하던 1인 앱 개발은 계속하기가 두려웠다. 가장 하고 싶었지만 가장 성과가 불확실한 선택지였기 때문이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내가 선택한 것은 '강의 만들기'였다. 퇴사하고 도전했던 것 중에 무료 강의 만들기가 있었다. 그때의 경험을 되새겨 앱 개발 강의를 만들면 어떨까 싶었다. 강의 만드는 것을 좋아하거나 확신을 가진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인들에게 앱 개발 온라인 세션을 열었던 경험이 있었고 지인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기에 시도해 볼 만한 가치는 있었다.
결과적으로 '강의 만들기'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현재는 손익분기점을 넘기고 기대 이상의 수익을 얻었다. 물론 일시적인 성과지만 덕분에 숨통이 트였다.
나는 심각하게 어려운 상황에 처했고, 그때 내가 가진 가장 효과적인 옵션은 '강의 만들기'였다. 잃는 것은 나의 시간이었지만 얻는 것에는 제한이 없었다.(이론적으로는 그렇다) 번아웃이 오지 않았다면 나는 변화하지 못했을 것이고 아직까지 아무런 성과가 없었을지 모른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확실히 성과가 적었을 것이다.
옵션 = 비대칭성 + 합리성
[안티프래질] p277.
'비대칭성'은 불확실성으로부터 잃는 것은 별로 없으면서 얻는 것이 많은 것을 뜻한다.
'합리성'은 이익을 얻기 위해 좋은 것을 유지하고 나쁜 것은 버린다는 의미다.
강의를 만들고 나서 시간이 조금 흘렀다. 나는 다시 옵션을 선택할 때가 되었고 지인으로부터 취업 제안을 받기도 했다. 나는 진지하게 '취업을 한 나'와 '취업을 하지 않은 나'를 저울질하기 시작했다. 나는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내가 취업을 선택하면 얻는 것은 명확했다.(예측 가능하다) 첫 번째는 안정적 수입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소속감이다. 안정적인 수입과 소속감은 생계는 물론 정서적인 안정감도 줄 것이다. 지금의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들이다.
그렇다면 잃는 것은 무엇인가? 출퇴근의 피로, 업무에 대한 압박감,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무엇보다 하루 9시간(출퇴근을 합하면 10시간은 훌쩍 넘는다)을 지출해야 한다.
취업을 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어떨까? 정해진 수입이 없다 보니 생계에 대한 압박과 불안이 항상 붙을 것이다. 내게 주어진 모든 시간을 내 의지로 통제해야 한다.(이게 의외로 정말 어렵다..) 그리고 무엇보다 외롭다...;;
이제는 선택을 할 때이다.
...
결국 나는 '취업을 하지 않는다'를 선택했다. 나는 '자산'의 관점으로 이 두 선택지를 바라보기로 했다. 내가 말하는 자산은 '스스로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내 소유물'을 뜻한다. 예를 들어 온라인 강의, 앱 서비스, 유튜브 영상, 주식 등이 자산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자산은 안티프래질에서 말하는 비대칭성과 합리성을 모두 갖고 있기에 옵션의 특징을 띤다.
취업을 하면 나는 무슨 자산을 쌓을 수 있을까? 취업을 통해 내가 얻는 자산은 안정적인 수입을 기반으로 하는 주식 같은 재테크가 될 수 있겠다. 그 외에는 퇴근 후나 주말에 시간을 들여 1인 개발을 계속하는 것이 될 수 있겠다. (하지만 이것은 매우 힘들다..)
취업을 하지 않으면 나는 무슨 자산을 쌓을 수 있을까? 추가 강의를 만들 수 있겠다. 한 번 작은 성공을 했으니 그다음은 보다 수월할 것이다. 또한 1인 서비스를 계속해서 만들 수 있다. 글이나 영상 콘텐츠를 만들고 마케팅까지 경험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전과 다른 나를 계속해서 만들어나갈 수 있다.
취업을 하는 것은 결국 예측 가능하며 프래질 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물론 회사마다 차이는 있을 것이다) 내 기준에서 취업은 비대칭성과 합리성 모두 결여되어 있었다. 이를 옵션이라고 부르기 어려웠다. 뿐만 아니라 내가 퇴사를 했던 이유가 '경영악화'였다. 이는 칠면조가 되지 말자는 안티프래질의 목표에 부합하지 않는다. 내가 또 칠면조가 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취업을 하지 않는 것은 예측이 불가능하며 안티프래질 하다. 불안과 실패가 언제나 따라다닌다. 그 빈도가 높기에 오히려 큰 위기를 대비하고 버텨나갈 수 있다. 무엇보다 취업을 했을 때와 비교하여 자산을 훨씬 더 많이, 그리고 다양하게 쌓을 수 있다. 자산은 처음에 성과를 가져오지 못하거나 약간의 손해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산은 복리다. 쌓이면 쌓일수록 정의 블랙스완은 끊임없이 커진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옵션은 더욱 큰 효력을 발휘하고,
당신은 더 나은 성과를 내게 된다.
이 특징은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
[안티프래질] p462.
안티프래질 덕분에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보다 명확히 알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안티프래질이란 '충격을 받으면 더 강해지는 것'이라 생각했다. 내가 알고 있던 것이 맞다. 맞긴 맞는데, 문제는 전혀 내 삶에 적용하지 못하면서도 내가 알고 있다고 여겼다는 점이다. (적용 없는 지식이라니.. 얼마나 프래질 한가...)
지금은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옵션의 특징을 가지는지, 바벨 전략에 부합하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잃을 위험은 최소화하고 얻는 것에는 제한을 두지 않는 것. 무작위성을 받아들이고 실패를 통해 더 강해지는 나, 그런 내 모습이 앞으로 기대가 된다.